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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중앙회가 통합콜센터 용역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제안서에 "희망직원 100% 고용 승계"를 명시했던 효성ITX는 정작 계약 때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저축은행중앙회가 통합콜센터 용역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제안서에 "희망직원 100% 고용 승계"를 명시했던 효성ITX는 정작 계약 때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 희망연대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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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생활 10여년 만에 하나씨가 얻은 건 극심한 불면증과 원형탈모증이었다. 근무시간이 계속 바뀌는 3교대 근무로 생체리듬이 완전히 무너진 탓이다. 근무시간이 일정한 일을 구하다가 콜센터 상담일을 하게 됐다. 카드사와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할 때는 여유도 생겨 쉬는 날엔 유기견 봉사활동도 했다. 그러다가 계속 마음이 가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반려동물도 생기고 생활도 안정됐지만 일이 쉽지는 않았다.

"간호사는 체력과 정신 둘 다 힘든데 콜센터는 체력적으로는 덜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이직을 했지요."

일을 잠깐 쉬고 강아지만 돌보던 중 저축은행중앙회가 통합콜센터를 개소하면서 상담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집에서 10분 거리였다. 오후 8시부터 오전 9시까지 근무하는 심야조도 있었다. 유기견이 겁이 많아 낮에 돌볼 수 있는 일을 찾던 터라 반가웠다.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가자 바로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9년 9월, 하나씨는 처음 문을 여는 통합콜센터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고객에게 욕먹으며 쌓은 전우애

통합콜센터 심야조는 급여가 150만원 남짓으로 간호사 때에 비하면 많이 적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근무조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맘 맞는 사람들 만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나씨와 동료 상담노동자들은 일종의 전우애로 끈끈하게 묶인 사이였다. 저축은행중앙회는 통합콜센터를 열면서 SB톡톡플러스라는 은행앱도 만들었다. 전국 69개 저축은행이 함께 쓰기 때문에 메뉴들을 찾기도 복잡한데 앱이 오류가 날 때도 많았다. 변변한 상담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고객들의 문의와 민원을 최전선에서 받아내는 건 상담노동자들이었다.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란 멘트가 입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쩔쩔매며 눈물을 쏟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위로가 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곁에 있는 동료들이었다.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금방 그만두고, 또 새로 왔다가 바로 나가고 그랬어요. 저는 직장을 금방 때려치운다는 생각은 못하고 힘들어도 버텼죠."

혼자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함께 버티기 위해 원청도, 하청업체도 알려주지 않은 고객응대 매뉴얼을 동료들과 머리 맞대고 "맨땅에 헤딩하듯" 만들어냈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성희롱성 발언을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다른 업체 매뉴얼을 찾아가며 '쿠션 멘트'를 짰다. 그렇게 완성한 매뉴얼을 책자로 만들어 인쇄하는 비용까지 모두 상담노동자들이 부담했다. 조금씩 콜센터의 틀이 잡히자 떠나가는 동료들도 줄어들었다.

똘똘 뭉쳐 부당함에 저항도

똘똘 뭉쳐 작당모의도 많이 했다. 초기 월급명세서엔 기본급, 야근수당 등만 찍혔다. 명절수당, 휴일수당 등이 있는지도 몰랐다. 한 직원이 관리자에게 물어봤다가 "업무강도도 높지 않은데 그런 걸 왜 따지느냐?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말만 들었다.

"거기서 7개월을 주는 대로 받고 살았으니까 왜 그런지만 잘 설명해주면 사실 따질 생각도 못할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모욕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근로기준법 찾아보고 법에 어긋난 부분들을 다 찾아서 책자로 만들어 본사를 찾아갔지요."

윽박질로는 노동자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본사에서 조사를 벌인 끝에 관리자는 인사 조치되고 상담노동자들은 그동안 못 받은 수당 일부분을 보전 받았다. 그동안 눈치 보여 제대로 쓰지 못하던 연차나 월차도 조금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도 하나씨와 동료들의 단결력은 종종 빛을 발했다. 한번은 막말을 한 민원인이 오히려 상담노동자에게 사과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매니저는 상담노동자들을 방패막이 세우지 않고 스스로 나섰다.

"고객팀, 상담원들도 감정노동보호법에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상담원이 자기 권리를 이야기한 상황이어서 사과를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자 고객보다 저축은행중앙회 직원이 더 노발대발했다. 매니저에게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며 회사 출입증을 뺏었다. 매니저도 이렇게 쉽게 자르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르는 게 쉬울까?" 용역업체 직원의 현실을 목도한 하나씨와 동료들은 다시 뭉쳤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대자보를 썼다. '현장에 관리자가 없으면 업무가 마비됩니다'라고. 대자보는 붙이자마자 저축은행중앙회에 의해 바로 떼어졌다. 포기하지 않았다. 떼어지면 다시 아침에도 붙이고 밤에도 붙였다. 상담노동자들의 집념이 통했는지 비 오는 날 미처 떼지 못했던 대자보를 출근하던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이 보게 됐다. 회장은 문제 해결을 지시했고 덕분에 매니저는 복직했다.

모든 일이 이처럼 해피엔딩이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냉혹했다. 복직했던 매니저도 결국 몇 달 뒤 일터를 떠나고, 똘똘 뭉쳤던 상담노동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야 말았다. 저축은행중앙회가 통합콜센터 운영을 맡긴 용역업체를 바꾸면서 벌어진 일이다. 

효성ITX, '희망직원 100% 고용 승계' 약속 어겨
 
복직투쟁 중인 상담노동자 이하나씨는 힘을 보태고,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가리지 않고 가면서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복직투쟁 중인 상담노동자 이하나씨는 힘을 보태고,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가리지 않고 가면서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 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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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1일, 하나씨와 일부 동료들은 일터에서 내몰렸다. 통합콜센터 관리업체가 효성ITX로 바뀌면서 상담노동자를 선별 채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효성ITX가 작성한 제안서에 '희망직원 100% 고용 승계'라고 적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계약종료 4,5일 전에 5분 남짓한 면담으로 전체 상담노동자 16명 중 4명에게 불합격 통보가 떨어졌다. 다들 근무 연차도 오래되고 오전, 오후, 심야 등 각 조에서 주축이 되는 고참들이었다. 하나씨는 불합격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5명의 동료와 함께 사측에 문제의식을 전했다. "이들 4명이 없으면 원활한 업무가 힘듭니다"라고.

"세 명이 한 조로 돌아가는데 업체가 바뀌면서 3명은 퇴사를 한다고 했어요. 거기에 해고예정자 4명까지 없으면 근속이 긴 사람이 신입 두 명을 받아 근무하라는 것과 같아요. 게다가 채용공고를 낸 게 12월 28일이에요. 이틀 동안 신입을 교육해서 1월 1일에 투입하겠다는 거잖아요. 보이스피싱 업무가 이틀 교육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초창기 힘든 시기를 함께 버텨온 동료들을 나 몰라라 하며 나 혼자만 밥 벌어 먹겠다고 할 수는 없다는 속마음도 컸다. 불합격자들도 같이 가게 해달라고 얘기하자 효성ITX는 문제제기한 상담노동자들도 스케줄 편성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고선 이들 역시도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결국 16명 중 10명이 해고되고, 하나씨도 그 중 한 명이 되었다. 또, 4명이 자진퇴사를 하면서 기존 직원은 2명만 통합콜센터에 남게 된다. 그 뒤로 채용사이트엔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상담원 채용공고가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반면 하나씨와 동료들은 거리 위 투쟁으로 내몰렸다.

이에 대해 효성ITX 앞서 <매일노동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체결한 계약 내용은 고용승계 조건으로 위탁운영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라 경력직 채용을 조건으로 한 것"이라며 "설명회를 진행하고 면접 절차를 거쳐서 합격이 된 인원만 채용하고, 부족한 인원에 대해서는 신규채용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달랑 셋이서 복직투쟁 시작
 
이하나씨는 3년 넘게 일한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가 되면서 "노동조합 없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 "노조가 있으면 얘기라도 해볼 수 있는데 노조가 없으면 그마저도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하나씨는 3년 넘게 일한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가 되면서 "노동조합 없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 "노조가 있으면 얘기라도 해볼 수 있는데 노조가 없으면 그마저도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 희망연대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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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해고자 10명이 처음으로 피켓이라는 걸 들었다. 살아오면서 '투쟁', '노동조합' 같은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상담노동자들은 피켓에 뭐라고 써야할지도 몰랐다. 포털사이트를 한참 검색해 '생존권을 보장하라!' '근속직원 3일만에 해고 정당한가!' '하청 뒤에 숨지 말고 원청 저축은행중앙회가 해결하라!' 같은 문구를 만들어냈다.

의욕은 넘쳤지만 현실은 한겨울의 추위보다 더 차가웠다. 한 달여 만에 7명이 투쟁을 포기하고 생계를 찾아 떠났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포기하겠다고 해도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렇게까지 하고 아무 성과도 없이 그만두게 된 게 미안하죠."

떠난 이들의 마음은 백분 이해했지만 달랑 셋만 남자 막막하기만 했다. 도와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1월에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다 다녔어요. 알아야 저희도 싸울 수 있으니까요."

'노동' '노동자' 등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곳은 무조건 연락했고, 또 찾아갔다. 여러 곳의 무료노동상담과 노동자지원센터, 법원의 무료법률상담기관 등등. 노동조합도 많이 알아봤다. 하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이미 해고상태라고, 정규직조합원들이 반대한다고. 낙담만 하고 있는데 강북구노동자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희망연대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희망연대본부)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희망연대노조 간부를 만났고, "회의를 해볼 테니 하루이틀만 시간을 달라"는 답을 들었다. '또, 나가리인가보다.' 거절에 익숙해져 으레 완곡한 거절의 표현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정말 이틀 만에 희망연대노조로부터 "함께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무너지는 다리 위에서 동아줄을 잡은 느낌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인정할 수 없어"… 노숙투쟁까지 불사
 
이하나씨를 비롯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자들은 효성ITX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면서 한여름의 무더위와 장맛비를 견디며 투쟁하고 있다.
 이하나씨를 비롯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자들은 효성ITX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면서 한여름의 무더위와 장맛비를 견디며 투쟁하고 있다.
ⓒ 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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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중순, 세 사람은 희망연대노조 조합원이 되어 본격으로 복직투쟁을 이어갔다. 회사 앞 선전전, 촛불문화제, 이사회 전 피켓팅, 집중집회, 천막농성 등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투쟁방법들은 다 찾아서 했다. 연대활동에도 진심이다. 노동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집회, 회의 가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다.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 우리 투쟁에도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법적 투쟁도 함께하고 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난 5월 기각됐다.

"지노위 심문 회의에 온 효성ITX 관계자가 '고용승계 100%라고 쓴 건 다른 기업들도 다 써서 쓴 거지. 누가 그대로 지킵니까? 우리 회사는 고용승계란 없습니다'라고 아예 대놓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노위가 기각을 했잖아요. (효성ITX에서 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인정하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6개월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서로 생계문제가 커지면서 포기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지노위 결정을 보니 더 포기가 안 됐다.

"우리만 이러는 게 아니라 연대하러 가서 마주치는 많은 분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거든요. 또, 3년 일한 회사도 우리를 버렸는데 생면부지였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몇 달을 같이 고생하고 있는 거잖아요. 소속도 없어서 가입도 안 되는 우리들을 조합원으로 받아주고요. 그분들에게 이렇게 끝나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셋이서 하는 데까지는 계속 해보자고 얘기했죠."

세 사람은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하고, 더 힘차게 투쟁 중이다. 투쟁 199일을 맞은 7월 19일부터는 효성ITX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한여름 무더위와 장맛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투쟁하고 있다.

"제가 이렇게 되고부터는 노동조합 없는 콜센터에 다니는 사람들이 제일 걱정돼요. 셀 수도 없이 용역업체가 바뀔 텐데 노조라도 있으면 얘기라도 해볼 수 있는데 노조도 없으면 그마저도 못하는 거잖아요. 희망연대노조 조합원이 된 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걸 보고선 이래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하는구나를 느끼고 있거든요."

일터에서 쫓겨난 뒤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생긴 하나씨는 "은혜를 갚는 건 복직뿐"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효성ITX 본사 앞에서 노숙을 하며 외친다.

"콜센터 상담사는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효성ITX는 부당해고 철회하고 원직복직 시켜라!"


[관련기사]
"일터 잃고 지옥 속에서... 저축은행중앙회, 서민 친구 맞나" https://omn.kr/23l5a

덧붙이는 글 | 싸람(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홈페이지(www.ssaram.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상담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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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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