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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블로그글을 필자 동의를 얻어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편집자말]
5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KBS·EBS의 주요 재원인 수신료를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에 붙여 고지 징수하는 방식을 금지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시행령은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 재가 절차를 거치면 바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 의결과 관련해 많은 뉴스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확한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문제점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관련 법령을 검토해 정리해봤다.

1. 관련 법령 및 개정의 효과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5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방통위는 텔레비전방송수신료(KBS·EBS 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떼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5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방통위는 텔레비전방송수신료(KBS·EBS 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떼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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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KBS, 곧 한국방송공사는 국가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공영방송국이다. 영리가 목적이 아닌 공정하고 건전한 공영방송을 운영하기 위해선 재원이 공적으로 지원돼야 하는데 현재 KBS의 주요 재원 중 하나는 수신료 수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KBS의 전체 수입은 약 1조5000억 원인데, 그중에서 수신료가 7000억 원 정도(45%)를 차지한다.

KBS는 이 수신료를 지난 30년간 한전을 통해 위탁 징수를 해왔다. 전기요금 고지서에 수신료를 함께 고지함으로써 매우 손쉽게 징수해왔던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의 관련 조항에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방송법 제67조는 KBS가 한전에 수신료 징수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 근거를 규정했고, 시행령 제43조는 한전이 전기요금을 고지할 때 수신료를 함께 부과해 징수할 수 있는 규정을 뒀다.

이번 개정은 한전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고지 징수할 수 없도록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제3항을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없다"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얼마 전 대통령실이 방통위에 권고한 것을 따른 것이다.

시행령을 이렇게 개정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가. KBS와 많은 언론 전문가들은 현재의 결합징수에서 분리징수의 방법으로 가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현재 한전은 KBS로부터 수신료 징수금액의 6.15%를 수수료로 받음, 연간 400억 원 정도인데 앞으로 이 금액이 폭증할 것이다), 무엇보다 수신료 미납 사태로 인해 수신료 수입의 급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별도의 보조금을 주지 않는 한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의 운영은 매우 어렵게 될 것이고 KBS의 정부 종속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참고 법령>
방송법 제67조(수상기 등록 및 징수의 위탁)
②공사는 수상기의 생산자·판매인·수입판매인 또는 공사가 지정하는 자에게 수상기의 등록업무 및 수신료의 징수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43조(수신료의 납부통지)
②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
 
2. 개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모습.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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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이 개정은 중대한 인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단순히 수신료 징수방법과 관련된 정책 변화라고 볼 수 없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방송법 시행령이 바로 시행된다면 KBS의 운영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특단의 재원 조달 방법이 강구되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KBS 운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방송국 운영이 어려워짐으로써 KBS 구성원들이 받게 되는 고통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본질적 문제는 이 개정으로 결국 KBS가 정부에 종속되게 되면 공정한 공영방송을 통해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본질은 분리징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징수 방법은 종국적으로 분리징수로 갈 수도 있다. 다만 30년 동안 한전을 통한 결합징수의 방식을 바꾸려면 KBS의 재원조달 방법을 먼저 논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수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 구조를 취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분리징수 방법으로 시행령을 바꾸는 것은, '더 이상 KBS를 지금과 같이 내버려두지 않겠다, 돈으로 목을 조이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시라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5일 오전 전체회의가 열리는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 항의 방문,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5일 오전 전체회의가 열리는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 항의 방문,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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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 다른 문제론 오늘 의결은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절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차적으로 중대한 흠결이 있다. 행정절차법에 따른 입법예고 문제는 절차적 흠결이긴 하지만 기간 단축에 대한 예외가 있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보다 실질적인 절차 흠결이다.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위원 3인 중 2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방통위법에 의하면 방통위 의결은 재적 위원 과반 찬성으로 가능하므로, 현재 재적 위원이 3명이니 2인의 찬성만 있으면 의결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설립취지에 비춰 볼 때 결코 받아들이기 힘들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방통위원은 법상 5인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 3인은 국회가 추천(여당몫 1명, 야당몫 2명)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바뀌면 불원간 방통위는 대통령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방통위법을 바꾸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다만 방통위는 단순히 대통령의 지휘 감독을 받는 행정기관이 아니다. 정부의 방송 통제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방통위는 독립적 운영을 최고의 가치로 설립됐다. 이를 위해 방통위 구성을 정부(대통령)에 일임하지 않고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야당이 5분의 2를 차지해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방통위가 현재 매우 비정상적 상태에 있다. 한상혁 전임 위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면직 처분돼 위원장 공석 하에서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야당몫으로 국회 추천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 임명장을 받지 못하고 대기 중이다. 이로써 현재 방통위원은 3인이며 이중 야당 추천 위원은 1명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직무대행 체제 하에서는 임시적으로 기관의 현상 유지 기능을 담당하고 중요사안을 다루는 것은 삼가는 게 기관 운영의 보편적 관행이자 원칙이다. 이것은 독임제 행정기관은 물론이거니와 합의제 기구에선 더욱 중요한 원칙이다. 사실상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가 아직 위원 구성도 다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만으로 중요사안을 독단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콘센서스를 중시하는 합의제 기구의 속성상 맞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방통위법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말하면, 현재 재임 중인 방통위원 3인 중 2인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의 입법 취지상 받아들이기 힘들다. 방통위법상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것은 입법 취지상 5인 재적 위원을 상정하고 3인 이상의 찬성을 말하는 것이지(즉 5인 중 3인 이상, 곧 60% 이상의 찬성) 지금과 같이 구성원 중 40%가 결원된 상태에서 과반인 2명 이상의 찬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극단적인 상황(현재 3인 중 1명 혹은 2인이 사퇴했다고 가정하자)에선 위원 1명이 마치 독임제식으로 방통위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야권 추천 위원인 김현 위원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고 퇴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결 당시에는 2인 위원만이 참석해 의결했다는 이야기다. 5인으로 구성된 방통위가 2인 출석으로 중요안건을 처리했다고 하는 것은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운영상 결코 용인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 헌법이 합의제 국가기관에 요구하는 적법절차 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인권위의 경우,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인권위법도 방통위법과 같이 의결은 과반의 찬성으로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인권위 전원위에서 안건을 의결하려면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설혹 1명이 결원이 돼 재적위원이 10명이라도 마찬가지).

내가 아는 한 지난 21년간 인권위 전원위 의결 과정에서 의결정족수가 단 한 번도 6명 아래로 내려가 의결된 적은 없다. 그런 이유로 인권위 전원위는 6명 이상 참석하지 않으면 회의를 열지도 못하며 안건 토론 후 6명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어떤 안건도 통과되지 못한다. 위원장과 상임위원 3인으로 구성된 상임위는 아예 의결을 하기 위해선 4인 중 3인이 찬성해야 한다는 내부 규칙을 두고 있다. 더 나아가 상임위원 1인과 비상임위원 2인으로 구성되는 소위원회는 3인 전원 합의가 안 되면 의결 할 수 없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 무릇 독립적인 위원회 운영은 바로 이런 것이고, 그 운영방식은 방통위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3. 마지막 한마디
 
대통령실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복도에 윤석열 대통령의 글로벌 외교 활동과 일상의 모습을 담은 총 8장의 사진을 게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대기 비서실장이 사진이 게시된 집무실 복도를 걷는 모습.
 대통령실은 6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복도에 윤석열 대통령의 글로벌 외교 활동과 일상의 모습을 담은 총 8장의 사진을 게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대기 비서실장이 사진이 게시된 집무실 복도를 걷는 모습.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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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이 바뀌면 어쩔 수 없이 방통위도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쉽지만 정권이 바뀌어지기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방식은 주권자인 국민이 보기에 너무나 거친 방식이다.

현재의 방통위의 비정상적 위원 구성은 대통령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상적으로 위원장과 야당 추천 위원을 임명한 뒤에 해도 되는 일을 왜 이렇게 서둘러 평지풍파를 만드는가.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대거 차관으로 임명하자 야권 등으로부터 '정부 부처를 용산 직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부처에 문제가 있으면 장관을 갈아야지 어떻게 차관을 바꾸는지 발상이 기이하다. 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말대로 이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정부 운영이다.

이번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KBS를 바꾸겠다는 시도도 똑같은 비판을 받을 것이다. 누가 쫓아 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해서 이리 무리한 방법으로 방통위를 운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태그:#KBS, #방송통신위원회, #수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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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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