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구 중앙로역 대중교통전용지구에 게시된 현수막에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대구 중앙로역 대중교통전용지구에 게시된 현수막에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폭염특보가 내렸던 지난 17일 대구로 가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포털과 소셜미디어를 바쁘게 오가며 언론보도를 확인하기 바빴다.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이 축제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나선 탓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이동 시간을 앞당길 수 없었던 터라 마음을 기울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같은 마음으로 대구를 찾은 사람이 무척 많았다. 전날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기찻길에 오른 사람도 있었고 당일 새벽 부지런히 차를 몰아 아침 일찍 대구에 도착한 사람도 있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이 축제를 즐기지 못하게 되진 않을까 길을 나선 대구 시민과 활동가도 있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중앙로역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모였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로 현장 상황을 공유하며 대구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줬다. 

전해들은 소식은 여러모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대구광역시는 예고한 대로 소속 공무원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을 시도했다. 축제 무대와 부스를 설치할 수 없도록 행사 장소로 향하는 도로를 가로막는 장면이 연출됐다. 경찰은 '적법한 집회의 진행을 보장하겠다'며 도로를 막은 공무원을 인도로 밀어냈다. 결국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사이 작은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제 참가자가 경찰을 응원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좀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17일 오전 행사 차량을 막기 위해 공무원들이 대중교통전용지구 도로 위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17일 오전 행사 차량을 막기 위해 공무원들이 대중교통전용지구 도로 위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경찰의 도움을 받아 축제 무대와 부스는 예정대로 설치됐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식을 전하는 현장의 기쁨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행정대집행이 무산된 시점에야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 도로 점거를 허용한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는 행정대집행에 참여한 공무원을 격려하고 현장을 떠났다.

소셜미디어에선 홍준표 시장에게 '대한민국 최초 퀴어문화축제 방문 지자체장'이라는 역사적 칭호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촌평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고집쟁이 시장'에게 '위트 있는 시민'이 날린 한 방 덕분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물론 마음 깊은 한편에는 씁쓸한 감정이 남았다. '대한민국에서 관광객이 긴장까지 하며 가는 축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축제를 마음껏 즐기기에도 부족한 주말이 아닌가. 성소수자가 주축이 되는 축제라는 이유로 참가자가 마음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고맙습니다, 공무원노조와 건설노조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이후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예정대로 설치된 부스에서는 다양한 단체가 준비한 콘텐츠와 캠페인을 선보였으며 오랜만에 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난 친구, 동료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가득했다. 행사장 근처를 지나간 대다수 대구시민 역시 각자 갈 길을 가거나 부스에 들러 구경을 할 뿐이었다. 행사장 주변에 십자가나 피켓을 들고 배회하는 몇몇 있긴 했지만 경찰과 주최 측의 적극적인 대처로 행사에 위협을 주지는 않았다.

행진도 마찬가지였다. 행진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일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담긴 피켓을 든 사람을 만나기는 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행진을 하면서부터 특별한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덕분에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구광역시 도심을 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행진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마땅히 보장받은 시민의 자긍심이 엿보였다.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도 많은 단체와 노동조합의 깃발을 봤지만 "부당한 행정대집행 명령을 거부하고 맞서겠다"고 선언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구지역본부의 무지개색 깃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쑥쓰러움이 많아 쉽사리 말을 건네지는 못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무척 크다.

뒤늦게 지면을 빌려서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보수적인 도시의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도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진행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내준 공무원 노동자들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 덧붙여 양회동 열사 대구 분향소를 지키면서 행진 참가자들에게 호응과 환대를 보내준 대구 건설노조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대구 축제는 끝났다, 다음은 서울이다... 이 와중에 주목해야 할 것은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에 앞서 발언을 듣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에 앞서 발언을 듣고 있다.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2023년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끝났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는 계속된다. 당장 다가오는 7월 1일에는 을지로 일대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언론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에 가닿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껏 그래왔듯 말이다. 그러나 다른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왜 퀴어문화축제를 할 수밖에 없는지, 나아가서는 꼭 해야 하는지 말이다.

권리를 실현하는 일에도 나름의 순서와 단계가 있다고 본다. 성소수자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혹시라도 존재를 드러내면 낙인과 배제, 차별과 혐오를 통해 뭉개버리는 사회에서 권리를 말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권리의 주체로 인식될 때 비로소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권리로서 실현할 수 있다.

여성과 장애인이 그러했다. '여성은 투표권을 가질 수 없다'고 확신했던 시대를 뚫고 나온 정치하는 여성이 없었다면, '장애인은 살 가치가 없다'고 공언했던 시대를 던져버리고 나온 투쟁하는 장애인이 없었다면, 현대 사회가 보편적인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는 상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고 끝내는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투쟁의 장이다.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 위해, 먼지나 투명인간처럼 없는 존재로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어 나서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에 단 한 번의 축제를 위해 조직위원회는 쏟아지는 전방위적 방해와 혐오 공세에 힘을 다해 맞서 싸우는 것이고, 몇날 며칠 릴레이 줄서기를 해서라도 집회 신고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퀴어문화축제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에 주목한다면 보다 나은 논쟁을 할 수 있고 축제에 참가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선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나 동성애를 찬성하니 반대하니 하는 언쟁은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시선이 바로 여기 가닿기를 바라는 이유다. 

공권력과 지자체장에게 당부합니다
 
대구쿠어문화축제가 열리는 17일 오전 대중교통전용지구 버스 우회 통행을 불허한 뒤 공무원들이 막아섰으나 경찰에 의해 뚫리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기자들을 만나 경찰을 비난했다.
 대구쿠어문화축제가 열리는 17일 오전 대중교통전용지구 버스 우회 통행을 불허한 뒤 공무원들이 막아섰으나 경찰에 의해 뚫리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기자들을 만나 경찰을 비난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특히 공권력에 당부하고 싶다.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경찰이 보여준 안전 확보 노력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일관된 입장과 태도로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할 때 경찰은 진정한 의미의 공권력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지자체장들께는 '소탐대실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홍준표 시장처럼 정치적 무리수를 던진다면 얻으려던 성과는 얻지 못하고 망신만 당하게 될 뿐이니 말이다. 특히 서울시청 광장 허용을 불허한 오세훈 서울시장께 힘주어 전하는 이야기다. 부디 새겨 들으실 것을 당부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내년에도 대구퀴어문화축제에 가려고 한다. 축제를 계기로 갔던 대구 관광은 무척 재미 있었다. 식사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쾌활한 대구의 분위기에 취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구에서 만난 시민과 상인은 대다수 친절했고 일부는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느냐'며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기도 했다.

내년에는 홍준표 시장의 방해 없이 더욱 평화롭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축제가 보다 성황리에 치러지기를 바란다. 방해 목적이 아니라 참가 목적으로 온다면 올해 일은 잊고 반갑게 인사하겠노라 다시 약속한다. 1년동안 잘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누가 아는가.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글로벌 페스티벌로 발돋움할지. 그때 가서 후회하면 늦지 않겠는가. 때를 놓치지 말기를 진심으로 충언한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에 앞서 발언을 듣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에 앞서 발언을 듣고 있다.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에 앞서 발언을 듣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에 앞서 발언을 듣고 있다.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오승재

관련사진보기


태그:#대구퀴어문화축제, #홍준표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을 읽습니다. 글을 씁니다. 그 간격의 시간을 애정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