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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5월 30일 오후 대구시청 동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5월 30일 오후 대구시청 동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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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다가오는 토요일(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를 위해 대구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시장님께서 반가워 할 만한 여행객은 아니겠지만 대구에 방문하기에 앞서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편지를 씁니다.

시장님께서는 대구퀴어문화축제 개최가 탐탁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한 시간에 80여 대의 버스가 오가는 대구 번화가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여는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단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집회를 하려면 다른 곳에 가서 하라"는 말씀을 하시니 말입니다(15일 페이스북).

의아했습니다. 과거 같은 장소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기도회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집회는 안 되고,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집회는 괜찮다는 뜻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또한 시장님께서는 대구퀴어문화축제를 가리켜 계속 '불법'을 운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대구퀴어문화축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터잡아 열리는 행사입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15일 축제에 대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 결정문에서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시장님께서 축제를 가리켜 계속 사용하고 계신 '불법'이라는 표현이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매우 부적절하다는 뜻입니다. 

법원의 결정문을 반드시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표현의 자유 제한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문장은 누구보다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시장님께서 무겁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게다가 시장님께서는 유명한 <모래시계> 검사, 법조인 출신 시장이 아니십니까. 법조인 출신 시장께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의미를 곡해하고 훼손한다면 그 모양새가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홍준표 시장님.  
 
대구지역 43개 인권시민단체로 구성된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6월 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제15회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각종 혐오를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지역 43개 인권시민단체로 구성된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6월 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제15회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각종 혐오를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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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지나친 비난을 멈춰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구 지역 다른 축제와 다를 바 없는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만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계신 까닭은 다름 아닌 성소수자가 주축이 되는 축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축제에 대한 시장님의 공개 비난이 성소수자 차별이자 혐오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이고 말입니다.

물론 시장님의 성소수자 인권 인식 수준은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이미 확인한 바 있어 놀랍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직자로서의 언행에 있어서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직자의 한 마디가 성소수자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해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에는 참가 시민을 조롱하고 위협하는 움직임이 계속 있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안전한 축제의 진행을 위해서라도 성소수자 시민의 축제 참여를 불법으로 낙인 찍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시장님께는 모든 시민의 안전을 보호할 직무상 의무가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할 시간이 있으시다면 경찰과 협력해 축제 참가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에 신경써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관련해 버스 노선 조정 협조 요청을 외면하고 오직 경찰에만 안전 확보 의무를 떠넘기신 행보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지금이라도 대구광역시의 대표자로서 적절하고 필요한 안전 확보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직무상 의무를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홍준표 시장님.

비록 시장님으로부터 환영은 받지 못했지만 저는 여행객으로서 대구의 매력을 만끽하고 오려고 합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대구 관광을 결심하게 해준 중요한 계기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여하는 다른 시·도 성소수자 시민 또한 대구 관광을 즐길 여행객입니다. 관광객 유치에 힘을 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나쁘게만 보지 마시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구광역시가 차별 없이 모든 여행객을 환대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라는 시장님의 시정 비전 또한 실현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퀴어문화축제가 아니라더라도 대구에 자주 여행을 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시장님을 축제에서 만나게 된다면 저부터 편견을 가지지 않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겠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좁히겠다는 다짐, 그것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시민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가짐이 꼭 시장님께도 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오는 17일 대구대중교통전용지구(중앙로역 1번출구)에서 열린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오는 17일 대구대중교통전용지구(중앙로역 1번출구)에서 열린다.
ⓒ 대구퀴어문화축제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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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구퀴어문화축제, #홍준표,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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