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용하시는 시설에서 물리치료사로 이 분들을 돌봐드리며 함께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시대의 굵직한 변곡점을 다 겪으시고 이겨내신 우리 할머니, 할어버지들의 작지만 위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고개는 열두고개 고개를 고개를 넘어간다


요즘은 거의 잊혀진 '꼬부랑 할머니'라는 동요입니다. 지금 다시 흥얼거려 봅니다. 어릴 땐 그저 재미로 불렀는데요. 가만히 음미하니 우리 할머니들의 애환이 느껴집니다. 꼬부랑 허리로 세상 열두 고개를 넘어가야 하다니요!

저희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꼬부랑 허리로 노년기를 보내셨습니다. 어릴 적엔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모두 허리가 저리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할아버지는 꼬부랑 허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할머니만 꼬부랑이 되나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때 우리 할머니들이 밭노동, 가사노동에 참으로 많이도 시달렸구나 싶습니다.

최근, 특히 도시에선 꼬부랑 할머니들을 쉽게 보진 못합니다. 그만큼 밭노동이 많이 줄어들어서겠지요. 그런데 외관상 표 날 정도로 심하진 않는데 허리를 까놓고 보면 아직도 제법 꼬부랑 허리가 많습니다. 제가 돌봐드리는 1순위 통증이 허리통증입니다. 여전히 할아버지들에 비해 할머니들의 꼬부랑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허리통증 때문에 단골로 오시는 비교적 젊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60대 후반이니 할머니계에선 새댁에 속했지요. 어떤 연유에선지 새댁할머니치곤 제법 꼬부랑 정도가 심했습니다. 소싯적 밭일을 심하게 하셨나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밭일은 쭈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척추가 뒤로 볼록해지죠.

그런데 허리의 정상곡선은 앞으로 볼록합니다. 몸의 기능과 구조는 일치한다죠. 사람이 바로 서서 걷는 기능에 딱 맞는 허리의 구조는 앞으로 볼록한 허리입니다. 그래야 똑바로 서면서도 스프링처럼 중력을 분산할 수 있거든요.
 
앞으로 볼록한 허리구조(요추전만)은 직립보행 맞춤형 구조입니다
▲ 직립보행 맞춤형 허리구조 앞으로 볼록한 허리구조(요추전만)은 직립보행 맞춤형 구조입니다
ⓒ 조영재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밭일할 때의 자세는 이 허리구조를 깨뜨립니다. 뒤로 불룩하게 만듭니다. 또 한 번 밭일을 시작하면 허리 한번 펴지 않고도 한두 시간은 우습게 지나갑니다. 쭈그린 자세가 단순히 허리뼈 라인만 변형하는 게 아니라 골절까지도 만들더군요. 허리뼈 앞쪽은 특별한 지지물이 없는 구조입니다. 쭈그린 자세가 허리 앞쪽을 지속적으로 누르게 되면 소위 '압박골절'이 미세하게 일어납니다. 무너져 내리는 거죠.

그러니 나중에는 구조적으로 바로 펴기가 힘들게 됩니다. "할머니~ 허리 좀 바로 펴세요" 잔소리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쭈그린 자세는 허리의 변형 뿐 아니라 무릎에도 심한 압력이 걸립니다. 프로야구에서 늘 쭈그려 앉는 포지션인 포수들이 종아리에 두툼한 패드를 붙이는 이유입니다.

새댁할머니는 자주 허리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중력이 꼬부랑 허리에 그대로 전달되니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원봉사자로 맹활약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니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정성껏 돌봐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걷기 운동을 권했습니다. 당연히 앉아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권유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사실 허리통증에 걷기만한 게 없다는 거 아시죠? 걸으면서 척추 간에 발생하는 출렁이는 떨림과 울림이 사이사이 박혀있는 디스크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은 빼주거든요.
 
걷기운동은 허리에 가장 좋은 운동
▲ 걷기는 힘이 세다 걷기운동은 허리에 가장 좋은 운동
ⓒ 조영재

관련사진보기

 
또 신기하게도 허리는 선자세보다 앉은 자세일 때 훨씬 눌려집니다. 쭈그려 앉은 자세가 눌려짐의 최강이지요. 상대적으로 젊은 패기의 새댁할머니는 정말 열심히 걸으셨습니다. 매일 거르는 법이 없었고 만보는 기본이었습니다.

새댁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의 단골을 끊으셨습니다. 간간이 제 돌봄 손길을 받긴 하십니다. 단 부위가 허리에서 무릎으로 옮겨졌지요. 그래서 요즘은 걷기운동을 좀 자제시킬 정도입니다. 잘 걸으시니 덩달아 앓고 있던 대사증후군도 정말 좋아졌구요. 표정도 더 당차졌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 걷기만 해도 됩니다. 걷기는 나를 살립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 걷기만 해도 됩니다. 걷기는 나를 살립니다
ⓒ 조영재

관련사진보기


저는 꼬부랑 허리를 돌봐드릴 때 좀 더 마음이 갑니다. 특별히 손을 한 번 더 얹어드리곤 합니다. 예수님은 아픈 이들에게 곧잘 안수를 하셨다죠. 병마가 쉬이 물러 났고요. 그런 희망을 품어봅니다. 내 손이 닿았을 때 나의 애틋함이 전해져, 조금이라도 시원한 느낌이 들기를.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들은 제 손이 닿기만 해도 시원하다고 저를 추켜세워 주십니다. 그렇게 저도 돌봄을 받습니다. 할머니들로부터 받는 마음 돌봄의 행복을 누리고자 언제부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손부터 따듯하게 만드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부산환경운동연합 3월 웹진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꼬부랑 할머니, #걸음아 나 살려라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 동물, 식물 모두의 하나의 건강을 구합니다. 글과 그림으로 미력 이나마 지구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식구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