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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아빠, 일어나. 이제 시작이란 말이야. 정신 차려야지."

눈을 떠보니 TV 화면에서는 잉글랜드 축구팀 토트넘과 이탈리아 축구팀 AS로마와의 친선 경기로 시끌벅적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아들 옆에 앉았다. 그때부터 아들은 축구 해설을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보이는 선수는 누구이며, 이전에 어디에서 뛰었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까지도. 나야 좋아하는 손흥민 선수 때문에 토트넘 정도만 알 뿐인데 아들은 AS로마까지 모두 꿰차고 있었다. 
 
아들과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며 소통의 첫 단추를 잠갔다.
▲ 소통의 첫 시작, 축구 경기 아들과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며 소통의 첫 단추를 잠갔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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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중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아들의 불호령을 듣기도 했지만, 어느새 경기에 몰입되어 함께 고함과 탄성을 오가며 적막이 흐르는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혔다.

이번에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아들과 친선 경기를 보기로 약속했었다. 여행 중에도 이동하는 차 안에서건, 휴양지에서건, 숙소에서건 우리는 끊임없이 축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밖에만 나가면 툴툴거렸던 아이가 어릴 때나 보여주었던 환한 미소로 한껏 여행 분위기를 냈다. 오래간만에 우리 가족 모두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다.

아들이 집을 나갔다

불과 얼마 전 만 해도 큰 위기 상황을 겪었다. 그날도 회사에서 야근하던 중 아내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연락했는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집을 나갔다고 했다.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없었다. 이유인즉슨 학원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잔소리했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들었다고 했다. 둘 사이에 큰소리가 오갔고 아들은 가방을 챙겨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학원에서도 오지 않았다는 연락이 왔다. 

벌써 저녁 9시가 다 되었다. 급하게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몹시 불안했다. 생전 이런 적이 없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평소에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아이였다면 안도하겠지만 집돌이라 마땅히 갈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에게 연락했다. 시곗바늘은 이제 열 시를 지나고 있었다. 입이 바싹 말랐다. 몇 번을 연달아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다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안양천에 있으니 조금만 더 있다가 간다고 했다. 전화를 받으라고 답문을 보낸 후 다시 연락했더니 수화기 너머로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지금 바로 갈 테니 입구 쪽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옷도 갈아입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내달렸다.
 
주말 저녁이면 아들과 안양천에서 산책을 한다. 걸으며 삶의 고민도 함께 나눈다.
▲ 아들과 주말마다 걷는 산책길 주말 저녁이면 아들과 안양천에서 산책을 한다. 걸으며 삶의 고민도 함께 나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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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에서 가방을 메고 땅을 쳐다보고 있는 아들이 보였다. 금방 눈을 마주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안아주었다. 가기 전엔 크게 혼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막상 만나고 하니 안전하게 있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검은색 상의에 하얀 얼룩이 보였다.

밖에 있는 동안 무얼 했냐고 물으니 계속 걸었다고 했다. 오후부터 밤까지 걸었으니 흘린 땀이 말라서 하얀 표식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걸으니 생각이 정리되고 좋았다는 말에 마음이 짠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공부하라고 계속 밀어붙이기만 했던 요즘이 미안했다.

저녁도 먹지 못했다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음료수를 샀다. 집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챙겨주었다. 아내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보였지만, 눈동자에 걱정이 한가득 서려 있었다. 아내와 잠시 안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의 돌발 행동을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내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자녀와의 소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이에 있었다

막상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니 머릿속에 하얀 장막이 드리웠다. 소통할 요량으로 함께 게임도 해보고, 산에도 가보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 바로 '축구'였다. 아들은 요즘 들어 축구 관련 유튜브 영상도 챙겨보고, 부쩍 관심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 불쑥 말을 꺼냈다.

"이번에 토트넘 보니깐 콘테 감독이 신입 선수들을 영입 많이 하던데. 어떤 선수들인지 좀 알아?"
"아빠는 그것도 몰라. 우선 이브 비수마라고 작년에 브라이튼에서 뛴 미드필더인데 수비력이 장난이 아니야. 완전 진공청소기야. 그리고 히샬리송은 에버튼 공격수 출신인데 공격력이 엄청나. 여태껏 40골도 넘게 넣어서. 이뿐인 줄 알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선수 평에 언제 이렇게 알게 되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곤 바로 이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도 인터넷으로 열심히 축구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들이 좋아하는 프리미어리그를 집중하여 공부했다. 축구란 공통점이 생기니 멀어졌던 둘 사이가 금세 가까워졌다. 아들은 내가 있는 안방까지 찾아와 축구 이야기를 꺼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 역시도 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를 덜 주려 노력했다. 학원에도 부탁해서 과제도 줄이고,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는 시간도 조정했다.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전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아내의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 아들이 먼저 지난번 일에 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생각해보니 소통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그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깨닫지 못하고 멀리서만 찾았다. 

아들은 지난번 안양천에서 걸었던 것이 좋았는지, 주말에 꾸준히 걷겠다고 했다. 나도 평소에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함께 걸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그래서 2주 전부터 걷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맑은 날, 흐린 날이 반복되겠지만, 소통으로 이겨내보련다.
▲ 힘든 사춘기, 소통으로 이겨내보자 사춘기에 맑은 날, 흐린 날이 반복되겠지만, 소통으로 이겨내보련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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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벗어나 오롯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축구 이야기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고민도 자연스레 나왔다. 나 역시 지금 아들의 시기를 지나왔기에 경험을 나누었다. 꼬박 한 시간을 걷고 나면 만 보도 훌쩍 넘었다. 건강도 챙기고, 아들과 대화도 하니 일거양득이었다.

요즘 부쩍 짓궂은 아들 모습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춘기에 진입해서는 늘 얼굴이 흐렸는데, 어릴 때처럼 장난도 잘 치고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 살얼음 위를 걷듯 불안했던 집안 분위기도 평지 위에서처럼 평온했다. 

그간의 시행착오를 딛고 이제야 해결책을 찾은 듯하다. 그 시작은 바로 소통이었다. 아내는 축구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 내 모습을 보고 조만간 축구 박사가 되겠다고 농담을 했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왜 이제야 그걸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지금처럼 좋은 날뿐 아니라 흐린 날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전처럼 감정적으로 날을 세우지 않고, 차분히 대화로 풀어 가보려고 한다. 그러면 흐린 하늘이 금세 맑은 하늘로 바뀌어 걷기 좋은 날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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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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