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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던지는 질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주인공 '혜원'은 아무도 없는 고향 집에 내려와 살다가 어느 날 찾아온 고모를 만나게 됩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고모가 한 마디 툭 던지고 나가자 독백으로 중얼거립니다.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 독자 여러분은 고모와 이모 중 어느 편이 친밀하게 느껴집니까? 큰아버지와 큰외삼촌, 작은아버지와 작은외삼촌은요? 그리고 그냥 할머니(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어떻습니까?

같이 살 결심, 그리고 영영 헤어질 결심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에서 찾아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20만 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혼 건수는 10만여 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20만 쌍이 새로 결혼하고, 10만 쌍이 이혼한 것입니다. 이혼한 건수를 결혼한 건수로 나누어 이혼율을 계산하면 50%이지만, 이렇게 하면 지나치게 과장되어 보이죠? 그래서 1000명당 이혼건수를 의미하는 '조이혼율'을 지표로 쓰게 되는데, 지난해 조이혼율은 2.0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000명 중에서 4명, 달리 말하면 250명 중에서 1명이 매년 이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표는 너무 적어보입니다.

다른 자료들을 결합해 보겠습니다. 처음 결혼한 부부의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남녀 차이도 있지만 대략 30대 초반입니다. 통계에 보면 10대에 결혼하는 커플도 있고,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이혼은 어떨까요? 국가통계포털에서 평균 이혼 연령은 남성이 50세, 여성이 47세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혼도 1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에서 이루어지지만 분포를 보면 40세 전후와 50세 전후의 빈도가 가장 높은 쌍봉 곡선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이혼한 50세 남성과 47세 여성은 결혼적령기가 20대 중후반이었던 2000년 전후에 결혼을 했을 텐데, 2000년 당시의 혼인 건수는 33만 건 정도였으며, 40세 전후의 남녀가 결혼했을 2010년에도 32만 건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5200만 명이 2200만 가구에 모여 살고 있는데, 1인 가구 등을 빼면 기혼 성인이 포함된 가구는 1400만 정도 될 것입니다. 150만 정도 되는 한부모 가구를 일단 빼놓고, 지난 20년 간 35세부터 55세 사이의 부부가 매년 10만쌍 이상 이혼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200만쌍, 400만명 이상이 이혼을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혼 건수는 더 많았고, 별거 등 사실상 이혼과 유사한 상태에 있는 커플들을 포함하면 이혼율은 30%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고려해야 할 변수와 결합해야 할 자료는 훨씬 더 많지만, 너무 머리가 복잡해지면 안 되니까 이 정도로 거칠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요 며칠 새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 사이의 업무보고 사태로 뜨거운 감자가 된 '만 5세' 이하 아동의 부모는 대략 30대 초중반에서 후반 사이 연령일 텐데, 이 연령대도 매년 2천 쌍에서 3천 쌍 사이로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누적 수치로 계산하면 2만5000쌍 정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누적된 이혼 남녀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재혼을 하지 않으면 150만 한부모 가구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여기에서 '재혼'이라는 변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혼한 남녀 중에서 재혼하는 남녀의 비율과 이혼 후 재혼까지 걸리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이에 대한 답을 제공해주는 직접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몇 가지 자료를 결합해 보겠습니다. 첫째, 지난 3년 간 혼인 건수 중에서 재혼 건수는 18%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결혼한 100쌍 중 18쌍은 재혼한 커플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평균 이혼 연령과 평균 재혼 연령 사이에는 1년도 안 되는 시간 차이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작년에는 여성들의 평균 재혼 연령이 평균 이혼 연령보다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남녀 불문하고 이혼하자마자 1년도 안 되어 재혼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혼인이 30세 정도를 정점으로 몰려 있는 반면에, 이혼은 40세와 50세를 정점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30세와 40세 사이에 이혼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수년 간 혼자 생활하다가 재혼을 선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쟁점은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재혼하게 되었을 때 한부모 가정의 가장인 남녀가 자녀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부부가 헤어진 뒤, 아이의 운명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제 관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이혼한 남녀의 자녀는 그 뒤로 어떻게 될까요? 먼 미래를 얘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양육권 이슈입니다. 서울가정법원의 자료를 인용한 기사들을 보니, 영유아기 자녀의 경우 거의 대부분 엄마가 양육권을 갖게 되는데, 자녀의 연령이 올라갈수록 아빠가 양육권을 갖는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절반 이상은 여전히 엄마가 양육권을 갖게 됩니다.

이혼하고 자녀의 양육권을 갖게 된 한부모 가구의 여성은(그리고, 물론 남성도) 자신의 남은 삶과 자녀를 위해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재혼해서 자녀를 새로운 가정에서 양육하거나 자녀가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는 혼자 힘으로 키우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는 한 가지 대안이 더 있습니다. 아직 어린 자녀를 자신이 키우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유아기의 자녀를 집에 내버려두고 도망갈 수는 없으니(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대안을 선택하는 엄마나 아빠도 있지요.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부모나 형제에게 처음에는 몇 주, 그 다음에는 몇 달, 그러다 1-2년 봐 달라고 맡겨놓고 어딘가 떠돌다 오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에 맡겨진 아이들의 흔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브로커>는 이 중에서 베이비박스와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진 사례들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세 번째 대안은 접어두고,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에서 한부모 가정의 가구주인 여성이 자신의 자녀를 몇 달씩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친정 엄마나 동성 형제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혼 남성에게는 그 존재가 자신의 엄마나 누나 또는 형일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이혼한 경우의 절대 다수 사례에서 엄마가 양육권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혼한 뒤 자신의 자녀를 맡기고 떠나버린 자녀나 형제를 대신하여 손자녀나 조카를 양육하는 사람은 아이의 친조(부)모나 고모(+부)/큰아버지(+어머니)보다는 외조(부)모나 이모(+부)일 가능성이 높겠죠?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소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정위탁제도입니다. 이전에 작성한 기사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위와 같은 경우 조부모가 손자녀를 양육하게 되고 가정위탁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공공 지원을 받게 되면 '대리가정위탁'이 되며, 부 또는 모의 형제가 조카를 '자녀처럼' 양육하게 되면 '친인척위탁'이 됩니다. 이러한 가정위탁제도의 지원을 받지 않고 손자녀나 조카를 양육하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되는데, 이 제도에 등록되면 상당히 많은 재정지원과 심리사회 서비스, 그리고 양육을 위한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지원을 받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대부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포함한 각종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양육수당도 추가됩니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아이에게만 온전히 투자한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 앞으로 매달 용돈 삼아 5만원 정도 입금하면 정부가 그만큼을 매칭해서 입금해 주고 성인이 될 때 목돈을 넘겨줄 수 있는 디딤씨앗통장 제도도 있습니다.

손자녀 또는 조카를 자녀로 키울 결심

아무튼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저의 지적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각종 통계자료와 가정위탁과 관련된 연구보고서, 논문들을 뒤적여 봤는데요. 원하는 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선배 연구자와 가정위탁지원센터의 실무자에게 질문을 던졌고 '눈대중', 또는 '어림잡은' 답을 들었습니다.

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대리가정위탁의 경우 위탁부모 중에서 친조(부)모의 비율이 높은가 외조(부)모의 비율이 높은가? 그리고 친인척위탁의 경우 부계, 그러니까 아버지의 형제가 위탁하는 비율이 높은가 아니면 모계, 즉 어머니의 형제가 위탁하는 비율이 높은가?

답이 어떨 것 같습니까? 제가 들은 답은 외조모보다 친조모가 더 많고, 이모보다 고모가 더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혼한 뒤 아이를 양육하는 비율은 엄마가 훨씬 더 높은데, 엄마든 아빠든 아이를 양육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떠나버리면, '아버지'의 부모나 형제가 그 아이를 양육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그 전에 전제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실제' 인구집단과 '드러난' 인구집단의 차이가 꽤 크다는 사실입니다. 즉 실제로 친부모가 오랫동안 또는 영구적으로 부재한 상태에서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나 조카를 양육하는 친인척 가구의 수와 가정위탁제도에 등록하여 지원을 받으면서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와 조카를 양육하는 친인척 가구의 수는 다르며, 그 차이가 꽤 클 수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의 수와 아동보호서비스에 신고 되어 학대 사실이 드러난 부모의 수가 다른 것과 유사합니다. 장애도 그렇죠? 실제로 장애를 겪는 사람과 '등록 장애인'의 수는 우리 사회에서 그 간격이 좁혀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돌아가면 이렇습니다. 이혼을 하고나서 자신이 출산한 자녀를 양육하려고 하는 의지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들에게 더 크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진실이 아니라 가설입니다. 소득과 재산을 포함한 자산,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자리를 양육능력으로 본다면, 양육능력은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높은 경우가 많겠지만, 실제로 자녀를 돌보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고, 일상생활을 관리하는 능력(이게 진짜 양육능력일 것입니다)은 대체로 어머니가 더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살 집이 있고, 생계를 유지할만한 소득이 있다면 어머니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자녀를 양육하려고 할 것입니다. 반면에 다수의 아버지들은 이혼할 때 양육권을 뺏기는 이유와 마찬가지 이유로 소득수준을 제외하고는 양육능력과 양육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결국 자녀를 키우지 않기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할 때, 그 뒤에 벌어질 일을 준비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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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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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고모들이 이모들보다 더 착해서, 친할머니들이 외할머니들보다 더 따뜻한 분이라서 아동을 양육하게 되었다'라기보다는 '엄마들보다 아빠들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가 답이 될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든 아버지든 양육의지를 가지고 애써봤지만 수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재혼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배우자와 협상이 잘 안 되어 자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자녀를 위해 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녀를 아동보호서비스에 의뢰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도 각자의 인생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어른은 어른이고 아동은 아동이며, 아동의 인생이 부모에 의해 좌우되는 만큼 부모가 더 책임감 있는 결정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물러설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혼의 절대적인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인구 감소 추세에 의한 자연스러운 감소에 불과하며, 혼인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이혼율은 계속 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조이혼율의 정점이 되는 연령이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X세대인 45-49세(남), 40-44세(여)의 조이혼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인구 규모의 영향이겠지만, 우려가 되는 것은 이 연령대 부모의 자녀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사이의 질풍노도기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혼은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자녀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부모의 태도에 따라 줄어들 수 있습니다. 재혼도 한부모 가정의 가구주에게 필요한 대안이며, 사례마다 그 상황과 특성은 다르지만, 그것을 초혼보다 더 아름다운 이벤트로 만들어가고,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것은 어른들이 하기 나름입니다.

아동복지 연구자들은 대체로 불행한 상황에 처한 아동들을 만나다 보니, '결혼과 출산에도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진담반 농담반의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더라도, 부모가 될 자격을 얻기 위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하고, 계속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배우자와 영영 헤어질 결심을 했다면, 다음은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헤어지기 전이나 후에나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결심을 할 차례입니다. 

태그:#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이혼, #가정위탁, #아동보호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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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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