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탁구클럽 청소부다. 청소 일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저 일주일에 3일, 오전에 2시간 정도만 시간을 내면 되는 일이었다. 남편의 사업장이기도 했고, 내가 프리랜서가 되면서 시간적 여유도 생긴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더러운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 심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더러워진 옷과 걸레를 빨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청소를 반년쯤 했을 때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청소하면서 멍때리는 시간이 나에게 뭔지 모를 힐링이 되기 시작했고, 청소하는 2시간 동안 친구들과 평소보다 긴 통화를 하게 되면서 묵은 스트레스가 많이 날아갔고, 내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어지자 탁구클럽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동안 멀리하던 탁구를 다시 치기 시작한 것이. 나는 일할 때 머리가 늘 복잡한 사람이었는데 탁구클럽을 쓸고 닦을 때만큼은, 그리고 탁구를 칠 때만큼은 머리를 비울 수 있었다. 드디어 인생에 균형을 잡고 사는 비법을 알게 된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꽉 찬 머리로 살아가느라 고단했던 나에겐 꽤 큰 수확이었다.

강연에서 김예지 작가를 만났다
 
강의 중인 김예지 작가님
 강의 중인 김예지 작가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련사진보기


내 집이 아닌 어딘가를 의무감을 갖고 규칙적으로 청소하는 일의 대단한 쓸모를 그렇게 깨닫고 살아가던 와중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반가운 동지를 만났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단체에서 기획하는 강의는 늘 관심을 갖는 편인데, 유독 한 강사의 프로필이 내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의 진로 교육과 관련된 강의였는데 프로필이 '청소일 하며 그림작가로 살아가는 김작가'라니! 그리고 강의 제목도 근사했다.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없다!" 청소일이라면 대단한 쓸모가 있다는 것을 김작가도 아는구나 싶어 바로 강의를 들었다.

김예지 작가는 청소일을 한 덕분에 책도 출간하고 그림작가로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처음 청소일을 권해줬을 정도로 적성에 잘 맞았고, 그림작가로는 한 푼도 벌 수 없었을 때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계속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자기를 보고 수군대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강의를 부탁하러 온다고도 했다. 결국 그 특별함은 책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남들이 쉽게 하지 않은 일에 도전한 덕분이며,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덕분이었으리라. 그에게 듣는 모든 이야기에 진심이 가득했다. 청소일을 하는 사람에겐 그런 진심이 있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전하고픈 청소 이야기

마지막 즈음 그가 한 이야기가 꽤 깊이 마음에 남았다. 아이들에게 진로를 빨리 찾으라는 사회적 압박은 높은데, 아이들이 접하는 건 직업에 대한 정보뿐이지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소일은 직업으로서는 행여 비천해 보일지 모르나, 청소일을 하는 김작가를 만나보면 아마 청소일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탁구클럽 청소일이 내 인생에 숨통을 틔워줬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줄 기회가 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런 바람까지 가득 담아, 김작가가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전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21세기북스(2019)


태그:#우리아이먹고사니즘, #김예지작가, #김선철탁구클럽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세상에쓸모없는일은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