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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세계은행이 전 세계 200개국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최하위였다. 도리스 레싱이 쓴 <다섯째 아이>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6.2명이었다. 작품을 읽는 내내 그시절 어머니들은 그 많은 자녀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생각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의 배경인 1960년대의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자유로운 생활과 연애는 기본, 혼전 성관계가 흔했던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답답하고 보수적인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운명적으로 이끌린다. 둘은 서로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똑 닮은 둘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출발은 일단 안정적이다.

둘은 꿈도 비슷하다. 여섯 명 정도의 아이와 그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공간, 1년에 한두 번은 친척이나 손님들을 초대해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넓은 빅토리아풍의 저택. 둘의 능력으로는 다소 과분한 것들이지만, 각자의 부모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해서 다섯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 꿈은 완벽한 듯했다.

폭력적인 '다섯째 아이'가 태어났다
 
책 <다섯째 아이> 표지 이미지
 책 <다섯째 아이> 표지 이미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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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벤은 뱃속에서부터 달랐다. 해리엇은 임신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자신을 혹사한다. 임신 기간 동안 엄마를 힘들게 한 벤은 세상 밖으로 나온 뒤 더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생김새도, 행동도, 눈빛과 목소리도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 난폭한 행동, 아이 같지 않은 힘. 사람들은 그를 괴물 같다며 수군댄다. 엄마인 해리엇조차 밖으로 뛰쳐나간 벤을 쫓아가며 속으로 차에 치여 차라리 죽기를 기도할 정도다. 게다가 다른 네 명의 형제들은 벤에게서 위협을 느낀다.

벤은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폭력적인 행동과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할 뿐이고 급기야 어머니 해리엇마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함께 모여 행복을 꿈꾸던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또한 공포를 느낀다.
 
"사람들은 당혹해하면서 심지어는 걱정스러워하면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벤을 쳐다보았다. 그다음은 모두들 감추려고 애썼지만 두려움이 보였다. 공포심도 있었다."

평화롭던 가족의 일상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존재, 그 존재가 자신이 낳은 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쌀 수 있을까? 모성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사회는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헤리엇과 벤을 위한 사회의 심층적 논의나 존중은 작품에는 없다. 그저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특히 어머니가.

결국 부부는 벤을 시설에 보낸다. 사실상 사지로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족들 모두 알고 있다. 가족과 친지들의 적극적이거나 혹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시설로 보내진 벤은 죽음 직전에서 모성의 힘으로 집에 돌아온다. 더 포악해지고 통제 불가능한 모습으로. 돌아온 벤을 수습하는 몫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어머니다. 

벤을 돌보는 해리엇의 모습에서 '장애아'를 돌보는 우리 주변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어머니는 모두가 포기하고 사회가 외면한 아이를 마지막까지 붙잡고 투쟁한다.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는 벤을 감당하기 위해 해리엇은 벤이 관심을 보이는 존에게 도움을 구한다. 존을 따라간 벤은 거리의 아이가 되고 '멍청이, 난쟁이, 2번 외계인, 호비트, 꼬마 마귀'가 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모습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고 비정상적으로 과민한 아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가 한 일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 '정확히 어디가 어떻다고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다른 애들과 맞지 않다'며 학교에서도 외면하는 아이. 벤은 그런 스스로를 '불쌍한 벤'이라고 부른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겪는 편견들

작품을 읽는 내내 해리엇과 마찬가지로 벤을 규정할 병명이 궁금했다. 최소한 벤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회적 진단이 해리엇에게는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벤의 병명이 벤을 어떻게 키워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녀에게 향하는 비난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는 있었을 것 같다.

벤으로 인해 행복했던 가정은 한꺼번에 흔들리고 가족은 흩어진다. 아빠인 데이비드는 벤을 외면하고 일로 도피하지만, 엄마인 해리엇은 그럴 수 없다. '격세유전'이든, 빙하시대를 거치며 내려온 유전자이든, 돌연변이든, 이상한 아이 벤은 해리엇 자신이 낳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레싱은 <다섯째 아이>의 모티브가 된 두 가지 요소는 빙하 시대 인류가 지니고 있던 유전자가 여전히 현대인의 몸에 존재한다는 인류학자의 글과, 평범한 세 아이를 키우다 넷째 아이가 태어난 뒤 다른 아이들을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어느 어머니의 글이라고 말한다. 작품에서는 소외된 존재에 대한 표현이나 그 존재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더불어 모성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무게에 대해서도.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부모 또한 아이를 선택할 수 없다. 데이비드의 말처럼, 길리 박사의 말처럼 누구나 벤 같은 아이를 만날 수 있다. 한 생명의 탄생은 누구도 선택할 수 없기에 운명처럼 마주하고 다만 지켜볼 뿐이다. 따라서 장애아의 출산이 어머니가 스스로를 비난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일찌감치 선진 문명으로 발돋움한 영국 사회에서도 장애아나 장애아를 낳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 시작은 냉정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문명이 선진화될수록 그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기본 전제는 다름의 인정, 즉 이해다. 해리엇이나 벤처럼 사회의 이해를 받지 못한 모성과 장애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삶을 파괴한다. 

2022년, 야외로 나가면 아이 하나에 어른 넷 혹은 다섯이 매달려 있다. 그도 부족해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에 온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시대가 되었다. 1960년대라고 해서 달랐을까? 더구나 그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면. 모든 책임을 오롯이 홀로 져야 하는 모성의 참담한 모습은 현재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장애인 가족은 경제적 문제, 사회적 문제, 정서적 문제를 갖는다. 작품은 해리엇이 겪는 경제적 문제에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사회적 문제나 정서적 문제에 대해서는 해리엇의 심리를 깊게 파고든다. 안타깝게도 해리엇이 겪는 부정적 정서는 소극적 대인관계, 수치심, 자존감의 저하는 물론 스트레스, 불안, 무기력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무수히 많은 장애 가족의 사례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장애가 있는 아이는 여전히 괴물이고 바라보는 시선은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장애아를 키우는 무수한 여성들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해리엇의 좌절된 꿈과 삶을 통해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지은이), 정덕애 (옮긴이), 민음사(1999)


태그:#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장애아의 가족, #모성, #정서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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