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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봄인가 보다 했더니 한낮에는 이마가 따가울 정도로 햇빛이 강렬하다. 이런 날에는 집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온전히 나의 희망 사항이고, 아이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놀이터에 나갈 심산인지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왔다갔다 한다.

"엄마한테 뭐 할 말 있어?"
"심심해. 놀이터 가고 싶어요."


주말이라고 어디 나들이도 가지 못했는데 집 앞 놀이터에서라도 놀게 해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한 시간 가량 뛰어 놀고 나니 금방 머리 감은 것처럼 아이 머리카락이 흠뻑 젖었다. 봄 햇살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다시 새빨갛게 익었다. 집에 가서 아이를 목욕시키고 나자 갈증이 나서 물을 한 잔 마셨다.

"시원~한 아이스라테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
"카페로 드라이브 갈까? 아빠는?"

"좋지. 어디로 갈까?"
"오랜만에 대흘리에 있는 카페 갈까? 애기는 아이스크림 먹고, 나는 크림델라테, 당신은 아포가토. 맛있겠다!"

"그런데 거기 애기는 못들어가지 않아?"
"아 맞다. 노키즈존이지. 어떡하지? 밖에서 먹기는 더울 것 같은데. 그럼 그냥 집 앞에 별다방에 가서 드라이브스루로 주문하자."


별다방의 아이스 카페라테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대흘리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크림델라테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거기 아포가토도 진짜 맛있는데...' 아쉬움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노키즈존의 장벽을 넘을 수는 없다.

넘을 수 없는 노키즈존 장벽
 
야외 데크의 테이블을 이용하면 아이 동반이 가능하다. 다만 테라스 바로 앞이 주차장일 뿐.
▲ 크림델라테가 맛있는 제주의 한 카페  야외 데크의 테이블을 이용하면 아이 동반이 가능하다. 다만 테라스 바로 앞이 주차장일 뿐.
ⓒ 허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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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우아한 세계'가 아닌 '육아의 세계'가 그랬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다양하게 높은 '문턱들'이 존재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자유롭게 걸어다닐 때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번거롭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온 순간, 울퉁불퉁한 길도, 곳곳의 계단도, 인도까지 침범해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까지 넘기 힘든 '문턱'이 되어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는 밖에서 밥 한끼 먹는 일도 간단하지 않았다. 유아 식탁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아이를 안은 채 아슬아슬 밥을 먹기도 했고 부부 중 누구든 먼저 밥을 마시듯이 먹고 난 후 교대해 주면 마찬가지고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킨 후 밖으로 나갔다.

긴 줄을 서야 하는 맛집은 그나마 나았다. 아이들 데리고 줄을 서는 일은 고역이지만 먼저 온 순서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줄은 점점 짧아졌고 어느 새 내 차례가 돌아왔다. 문제는 아이를 동반하고는 입장할 수 없는 가게들, '노키즈존'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줄을 선다고 해도, 혹은 예약 시스템을 통해 예약을 한다고 해도 내 자리, 아니 우리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요즘은 맘카페 등을 통해 정보 공유가 활성화되어 어디를 방문하기 전 노키즈존인지를 확인하고 출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키즈존임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유아 동반은 안 된다는 통보에 풀죽어 돌아서는 상황도 왕왕 생긴다. 이렇다보니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야외와 키즈카페뿐이다. 바깥은 덥거나 춥고, 키즈카페에는 맛있는 커피가 없으니 갈 곳 잃은 발걸음이 집으로 향할 수밖에.

내가 살고 있는 제주는 이국적이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 덕분에 1년 내내 여행의 설렘이 섬을 가득 채운다.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이름 지어진 이 곳에 북적대는 여행객만큼이나 많은 것이 노키즈존이 아닌가 싶다.

구글에 '노키즈존 지도'로 검색어를 입력하자 제주도가 보이지 않을 만큼 노키즈존으로 빼곡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정리해둔 전국 542곳 노키즈존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542곳 중 78곳이 제주도에 있어 서울(65곳)보다도 제주에 노키즈존이 많았다. 
 
제주도가 노키즈 존으로 빽빽하다
▲ 구글 노키즈존 지도 제주도가 노키즈 존으로 빽빽하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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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구성은 바로 가족 단위 여행객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은데 이는 장시간 해외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기가 부담스러운 부모들이 비교적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차선지가 제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제주에 와서 보니 유명하고 이름 난 카페나 레스토랑이 노키즈존이라서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노키즈존으로 운영 중인 서귀포의 한 인기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아이를 동반한 유명인의 예약을 받아주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노키즈존이라는 1차적 차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특정인들에게는 '예스' 키즈존이 되고야 마는 선택적 차별 앞에서 아이들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은 허탈해진다. 더군다나 행복한 추억을 쌓기 위해 비행기 타고 날아 온 제주가 아니던가!

기다려주는 어른이 많아진다면

노키즈존을 표방하는 업주들의 의견도 그럴 듯해 보인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해서 주변에 방해가 된다거나 아이들이 부주의해서 인테리어 소품을 훼손한다거나, 무엇보다 아이 기저귀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고 가거나 아이 소변을 물컵에 받았다거나 하는 듣고도 믿지 못할 행동을 하는 부모들의 몰지각함이 아이들을 향한 업주들의 마음에 이중, 삼중으로 빗장을 채웠을 것이다.

내 가게니까 내 맘대로 운영하겠다는 논리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일방적이면서 폭력적이다. 아이들의 입장을 금지하는 공간을 '노키즈존'이라 칭하며 이를 수긍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노키즈존을 부추긴다.

아이들도 장소와 공간에 따라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아이들이 잘 알지 못한다면 부모들이 이를 인지시켜야 한다. 아이들이 운다면 주변에서 어른들이 조금 기다려주면 된다.

아이라고 해서 미숙한 존재로 여길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사회적 역할을 배제시킬 것이 아니라,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먼저이다. 우리들은 모두 어린아이였다. 어린이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키즈존은 '특별'이 아니라 '차별'일 뿐이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문을 열고 닫을 때, 붐비는 길을 걸을 때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머뭇거릴 때 어린이에게 빨리 하라고 눈치를 주는 어른들을 종종 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일이라 어린이가 사간을 지체하면 일부러 꾸물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 김소영, 책 <어린이라는 세계>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발행되는 글입니다. 브런치by달콤달달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은이), 사계절(2020)


태그:#제주살이 , #노키즈존반대, #아이들은잘못이없다, #어른들의책임, #예스키즈존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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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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