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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법안 공포가 가능한 5월 2일까지 매일 한 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국회 앞에서
 국회 앞에서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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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그리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저희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영호 의원께.

안녕하세요. 서울 서대문구에서 살고있는 29세 임병준(다니주누)입니다. 활동명이 아닌 실명을 드러내는 것은 오래간만입니다. 스스로가 저를 지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회에서 가장 경멸당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AID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소수자이며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았었고 비수도권 지역의 출신이기도 합니다.

차별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남성으로 태어나 그 무리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동안 차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고 나도 모르게 차별을 일삼았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누구나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또 평등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지난날의 저는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 역시 잘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일상에서 차별은 너무나 당연하게 벌어집니다. 

2017년 4월, 저는 HIV 감염인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흔히 에이즈라고 불리는 그것은 저의 몸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감염됐다는 이유만으로 두 달간 격리됐습니다. 당시에 저는 세상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습니다. 격리되는 기간동안 저는 식판과 수저가 다른사람과 분리되고 빨간색 의료폐기물 통이 저의 침대 옆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눈빛도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회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감염 이전과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재단하고 스스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더럽고 문란하다고 하니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줄 알았고, 동성애를 해서 지옥불에 떨어졌다고 말을 하니 정말 그런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병이라고 해서 이제 정말 내가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저의 편이 돼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선 오히려 성적권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으며 학교에서 동성애를 가르쳐서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사회는 저희에게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요?

네, 맞아요. 오히려 벼랑 끝에서 제가 절벽 너머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만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날 죽었습니다. 이것은 이 사회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살아났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일
 
다니주누
 다니주누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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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무엇인지 몰랐던 저는 감염 이후에 차별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스스로 감염인들을 혐오하고 차별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혐오 공격을 받고 차별이 무엇인지를 감염된 이후에 느꼈습니다. 이것이 감염된 이후에 오롯이 내것이 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차별을 경험하지 못한다고 해서 차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 차별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어떤 것이 차별인지를 함께 공유하고 환기시켜 나가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감염인이다, 내가 성소수자다, 내가 차별을 받는 존재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왜 굳이 그 얘기를 꺼내냐'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입을 막습니다. 너의 잘못이라며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저와 우리는 이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또 수긍합니다.

왜 사회는 소수자가 받는 차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일까요? 그런데도 왜 우리의 존재를 숨겨야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러한 사회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부정당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지만 이 사회는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치권은 이러한 차별적인 행태를 인정하고 반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잘못된 것도 아니며 미움 받을 일도 아닙니다. 용기내어 말할 존재도 대상도 아닙니다. 당연히 함께 존재하고 살아갈 존재입니다. 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선진국이라며 자화자찬 하는 이 나라에서 아직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공개 편지를 쓰며 용기내 말하는 것 또한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저 말고도 아직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우리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재단하며 억압하고 스스로 낙인을 찍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맞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억압은 사회가 만들어냈고, 그 낙인은 사회가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로서 당연하고 마땅히 말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항상 부정당하고 왜 문란한 존재가 되어야 하며 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것 입니까?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

그래서 요구합니다. 최소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요구합니다. 차별을 차별이라고 이야기 하고, 더 이상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민주주의의 원칙,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 추구권,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내용을 담아 내기를 바랍니다. 왜 이러한 내용들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미뤄져야 하는지, 그렇다면 나의 존재는 여전히 부정당해야 할 존재인지 묻습니다. 정치권은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 묻습니다. 여전히 저희는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부정당해야 마땅한 존재입니까?

차별받고 미움 받고 혐오의 공격이 되는 다양한 소수자가 자신을 말하고 외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잘못으로 질타를 받아야 할 일도 아닙니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든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차별을 구제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평등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권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동료를 잃었습니다. 또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사회의 억압과 차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고, 어디서 누군가가 던지는 돌에 맞아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직장을 가지게 되는 것도, 군대를 가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다치거나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조차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까?

아이들에게 동성애는 위험하다고, 에이즈에 걸린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된 예방법조차 배우지 못하고 그저 운에 맡기는 현실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에이즈에 걸리면 사회에서 매장당한다며 겁박 주는 공교육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워낸 것은 누구입니까? 

뿐만 아닙니다. HIV 감염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하면 법적으로 처벌하는 사회, 성소수자 파트너의 결합조차도 부정하는 사회, HIV/AIDS 감염인이 제대로된 진료와 치료를 거부당하는 사회,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특별하다고 인식되는 사회.

소수자의 시민권은 어디에도 없는 사회는 누구의 잘못입니까? 15년간 외쳐왔던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현실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답변을 기다립니다. 이건 개인의 편지이자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수많은 당사자의 목소리임을 담아낸 편지이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국가가 최소한 개인에 대한 차별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선언입니다. 그 누구도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습니다.

2022. 4. 28.
임병준, 활동명 다니주누 드림.

덧붙이는 글 |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촉구하며 성소수자들이 매일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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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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