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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 밖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보니 그렇게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저의 시행착오가 회사 밖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기자말]
남편은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사업은 하고 싶지만, 창업 아이템을 정하기 어렵다는. 유행하는 아이템을 따라 하다가 망했다는 소문도 돌고, 선뜻 사업을 벌이자니 생소한 분야에서 뭔가 이루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창업 아이템을 찾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제조업 창업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창업 아이템은 어떻게 정할까?

우리가 하는 사업은 제조업이다. 제조업 분야의 창업은 초기 자본이 없거나 노하우가 없는 경우 진입하기 힘든 분야다. 요즘은 무자본 창업이 유행이다. 온라인 판매가 많아지면서 재고 부담이 없는 위탁판매도 많이 한다. 아마도 좀 더 안전하게 창업을 하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도 초기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무자본 창업을 했다. 초기에 했던 창업 중 하나는 기존에 쓰던 가구를 재활용해서 새 가구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목재가 폐기되어 버리느니 새 가구로 탄생하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남편은 손재주가 좀 있는 편이라 종종 주문이 들어왔지만, 곧 그만두었다. 문의는 많이 왔지만 제작으로 이어지기까지 쉽지 않았다. 비용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활용 가구는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다 보니 제작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

기존에 있던 가구를 재활용하는 것이어서 설계 자체도 힘들었지만, 더욱 힘든 건 사람들이 재활용가구이니 비용이 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수제품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계산하지 않고, 재료가 따로 들지 않으니 제품 가격이 싸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갭이 컸다.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방식은 '필요한가?'에서 출발해서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나?'로 귀결되었다. 보통사람이라면 같은 물건을 두고 더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았다. 비싼 물건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그만한 효용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초기 창업자에게는 그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같은 기능의 물건이 있다면 저렴한 가격을 선호한다.
 사람들은 같은 기능의 물건이 있다면 저렴한 가격을 선호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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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물건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더 싼 가격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방황한다. 재활용 목재로 만든 비싼 수제가구보다 공산품으로 만들어낸 보다 멋지고 싼 침대가 인터넷에는 널려 있었다.

기존에 쓰던 가구를 재활용하다 보니 디자인의 한계도 있었다. 게다가 몸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큰 가구의 경우는 만들면서 진이 다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와 체력 때문에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 일찌감치 접었다.

이 경험으로 배우게 된 것은 가격으로 경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가격으로 경쟁할 수 없는 것은 기능, 디자인, 혹은 브랜드였다.

처음 창업하는 사람에게 브랜드가 있을 리가 없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없었다. 남편은 공학도였다. 결국 남편이 선택한 것은 기능이었다. 기능은 공학도인 남편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분야였다. 탁월한 기능을 만들어 고객이 우리 것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지치지 않고 무한반복 할 수 있는 일
 
무한반복은 무한대가 아니다. 실수를 줄이면서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무한반복은 무한대가 아니다. 실수를 줄이면서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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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제조업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좋아하는 일이면서 잘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뭔가 뚝딱뚝딱 만들거나 고치는 걸 좋아했다. 아이디어도 넘쳐나서 집안 곳곳엔 남편의 작품도 많다. 아이들 어릴 때에는 목재 장난감도 곧잘 만들어주곤 했다. 새로 산 물건도 자신의 용도에 맞게 수리해서 쓰곤 했고, 쓰던 물건도 잘 수리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에는 쓸 만한 물건인데 버렸다며 주워 오기도 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고 했지, 오히려 주워오면 어떻게 하냐며 잔소리 하는 내게 조금 기다려 보라며 새 제품으로 탄생시키곤 했다. 남편의 손을 거친 것들은 제법 내구성도 있어서 오랫동안 사용해도 고장이 나지 않았다. 그런 물건들 중에는 선풍기, 캠핑용 냉장고, 난방기 등이 있다. 지금까지 제법 잘 쓰고 있다.

그런 남편이 지금 제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기존 제품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기존 제품이 성에 차지 않아 이것저것 고민하며 수리하게 된 것이 발명의 계기였다.

창업 아이템을 찾았다고 해서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제품은 지금형태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의 제품이 나오기까지 설계, 제작, 테스트, 설계 변경의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기록된 설계변경의 횟수만 70회가 넘었다.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하면 그 이상이었다. 이렇게 지치지 않고 무한반복하면서 제품을 수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이 뚝딱거리며 만들고 고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제품의 무한반복 수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3D프린터였다. 과거 제조업은 설계하고 제작할 때, 비용부담이 지금보다 컸다. 샘플제작에도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개인이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았다. 최대한 설계단계에서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고, 결함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3D 프린터의 발전으로 요즘 제조업의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남편은 3D프린터의 활용이 제조업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3D프린터 덕분에 소량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직접 실물을 만들어 여러 번 테스트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품양산 전에 좀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품 수요가 있는가?

끝으로 고민해 볼 것은 '제품 수요가 있는가?'이다. 이것은 고객이 지갑을 열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당연한 질문을 초기에 종종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취향에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니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도 수요가 없어 팔리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비슷한 제품군의 다른 걸 왜 먼저 만들지 않았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았고 레드오션이라 자신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어떤 제품군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모델 변경이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고. 그래서 지금의 제품이 나왔다고 했다.

한마디로 돈이 될 것 같은 시장과 자신의 장점이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남편에게 만약 제조업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첫 번째는 기술력이나 경험, 지식이 있으면 좋다고 했다. 과거에는 물건을 잘 파는 영업력이 우선이었지만 요즘엔 대표도 기술력이 있어야 초반에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정부 지원 사업에도 유리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자본이 있으면 좋다고 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다고 해도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도움 받을 분야가 있기 마련인데, 자본의 도움을 받으면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면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무한반복에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요가 있는가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 한 번에 '유레카!' 하며 찾아지면 좋겠지만 보통의 사람은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

우리도 처음부터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려서 제조업 창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선택한 결과였다. 아마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실패의 시간을 조금 줄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전공의가 되기까지 여러 분야의 수련의를 거치듯 여러 분야의 실패를 쌓으며 사업에 대한 근력과 통찰력을 키웠으니까.

누구나 한 가지쯤은 세상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한 제품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제품은 유형이 될 수도 있고, 무형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실패에도 다시 일어서고 싶은 어떤 꿈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창업 아이템의 시작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태그:#슬기로운창업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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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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