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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이와 관련 최근 들어 잦아지기 했지만 이날 혹은 8월 중반 한국은 이념 전쟁이 극에 달하는 논쟁을 시작한다. 바로 '건국절' 논쟁이다.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됐느냐'가 이 논쟁의 핵심이다. 

보수진영에서는 1948년설을 강조한다. 영토, 주권, 국민 모두 성립된 1948년이야 말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이라는 것. 이에 반해 진보진영에서는 1919년설을 주장한다. 헌법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강조하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의 모체가 임시정부인만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대한민국 건국절이라는 주장이다.

이념적 색채만 빼고보면 둘 다 나름대로의 논리적 타당성은 가지고 있다. 임시정부는 학문적인 국가의 정의에 따르면 '국가'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당대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표성을 거부하는 여론이 좌우 막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임시정부가 통합의 구실로서 대한민국의 모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반면, 정부성립을 주도했던 이승만이 '서기'나 '단기' 연호가 아니라 임시정부 수립 기준인 '민국' 연호를 즐겨 쓴 점이 반론으로 제시된다. 또한 현행 헌법 전문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한 점은 이미 한국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모체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건국절로 보자는 주장도 타당해 보인다.

왜 '언제'가 중요하나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 백범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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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이 정치권에서 가열되는 이유는 이른바 '역사관' 때문이다. 1948년 건국을 강조한 이들은 이승만,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뉴라이트 계열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1919년 건국을 강조한 이들은 이에 반대에 선 사람들이었다. 

1948년 건국절 주창자들이 이긴다면, 좋든 싫든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된다. 즉, 국부의 반열에 오른다. 이승만이 국부에 오른다면 그들의 정당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게 평가 될 것이다. 반면에 1919년 건국절 견해가 승리한다면, 이승만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계보는 국가건설이라는 정당성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단 과거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지금의 승리한 세력이 과거의 역사도 쓰고, 미래의 역사도 만들어 나간다. 그런 면에서 이 이념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단순히 이승만 미화냐 아니냐만 전리품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정치 권력 획득에 있어 상당히 거대한 무기를 같게 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소위 '건국절 논쟁'은 더욱 더 불안한 논쟁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그렇다. 건국절 논쟁에 참여하는 정치 세력들은 이 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 모두 쟁취하려 한다. 그런데 '과거의 내용'은 있는데, '미래의 내용'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즉, 과거는 선명한데 미래에 대한 비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건국절 논쟁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야 이 논쟁이 더 생산적인 논쟁이 될 것이다. 과거의 정치인들은 혼란기 속에서도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잊지 않았다. 이를테면 다음의 글을 보자.
 
六. 건국시기의 헌법상 경제체계는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함과 민족 전체의 발전과 및 국가를 건립 보위함에 깊은 관계를 가지게 하되 아래의 기본 원칙에 의지하여 경제 정책을 시행함

가. 대생산기관의 공구와 수단을 국유로 하고 토지⋅광산⋅어업⋅농림⋅수리⋅소택과 수상⋅유기상⋅공중의 운내수사업과 은행⋅전신⋅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공⋅상 긔업과 성시 공업구역의 공용적 주요 방산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 중등기업은 사영으로 함

나. 적의 침점 혹 시설한 관⋅공⋅사유 토지와 어업⋅광산⋅농림⋅은행⋅회사⋅공장⋅철도⋅학교⋅교회⋅사찰⋅병원⋅공원 등의 방산과 기지와 기타 경제⋅정치⋅군사⋅문화⋅교육⋅종교⋅위생에 관한 일체 사유자본과 부적자(附敵者)의 일체 소유 자본과 부동산을 몰수하여 국유로 함

다. 몰수한 재산은 빈공(貧工) 빈농(貧農)과 일체 무산자의 이익을 위한 국영(國營) 혹 공영(公營)의 집단 생산기관에 제공함을 원칙으로 함 (...) - 대한민국 건국강령 (1941)

위 글은 1941년 발표된 대한민국 건국강령이다. 앞으로 어떤 국가를 건설할 것인지 진지하게 선언하는 문서다. 이 글을 읽어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리고자 했던 국가에 대해서 금방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명확한 선언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과거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를 지키자거나 상응하는 비전을 선보이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질이다. '언제' 대한민국이 세워졌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대한민국이 세워졌는가가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하다. 그런데 건국절 논쟁에서는 그런 것들이 보여지지 않는다. 계속 이런 상황이면 지나간 과거만 명확하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단순히 길일만 정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이사도 길일을 정했다고 해서 이사가 원만히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는 '언제'를 논의하면서도 '무엇'도 같이 논의하는 이념논쟁이 이어졌으면 한다. 그런 논쟁이라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오히려 환영이다.

태그:#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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