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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4회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과 김부경 총리 등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4회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과 김부경 총리 등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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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주 4.3사건이 벌어진 지 4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미 인터넷 상에는 해당 사건을 다루는 글들이 올라와 있기에, 이 글에선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와 연관된 국가폭력에 대해 말하려 한다.

많은 이들이 흔이 이 사건을 '비극'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그러나 4.3은 단순히 어떤 참극이나 비극이 아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 사람들에게 절절하게 다가온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가 꽤 오랜 시간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랐던 것도 모자라 무디게 반응한 이유는 한국사에서 그러한 국가폭력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는 그야말로 국가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유구했던 국가에 의한 폭력은 한국인만의 국가가 생겼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삼청교육대, 5.18 광주민주항쟁, 제주 4.3사건 등등. 각각의 사건들은 모두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버렸을 때 한국인들은 그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사건인지 잘 깨닫지 못한다.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교실 한 벽에 걸려있는 대통령 사진을 보고 충성을 맹세하며, 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영화관에서는 대한뉴스를 봐야했던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민감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신기한 일 아닐까? 그래서 어찌보면 한국인들이 이를 인지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확고하지 못한 국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디지만 끊임없이 국가에 의한 폭력을 제거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왔다. 덕분에 많은 죽음들에게 비로소 이제 편히 가시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때는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이 많다.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도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시대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니 양자가 모두 밝혀졌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피해자를 여전히 빨갱이로 몬다. 이들은 사회의 한 쪽에서 피해자들을 불순한 사람들로 몰아가려 한다. 이 악의적인 구도 속에서 우리 눈에는 양자의 대립만 보인다. 그러니 답은 명확해 보인다. 불순한 사람들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을 불순하다고 하고 사회에서 몰아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설사 그런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한 국가폭력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국가라는 주체가 정권이 바뀌거나 바뀌려 할 때 사과의 정도를 다르게 하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가해자인 국가가 '내가 다 잘못했다'라는 자세로 진정한 사죄를 이어가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러지 않으니 '거봐라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냐'라는 사람들도 등장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국가는 그 자체로 이미 폭력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직접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고통을 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둠으로써 폭력을 행사한다. 겉으로는 사과도 하고 배상도 하며 교육도 시킨다. 그러나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도록, 그래서 피해자들이 사회에서 피해사실을 말해도 당당해질 수 있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어느 정권이 생기더라도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계속해서 인정하라고, 그리고 국가에 의한 폭력을 부정하지 않도록 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라고. 그것이 자신의 폭력에 대한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자 수습책이다. 

제주 4.3 사건은 현재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 바뀌는 게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국가에 의한 폭력은 자꾸 생기고 이에 대해 분노하는 일도 빈번하다.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지원하겠다고 출국한 해병대 병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군대 부조리를 이야기했다. 그의 행위가 정당하냐 그렇지 않냐를 떠나 국가 내부의 폭력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차라리 정말 사지로 가서 죽고야 말겠다는 결의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특검법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해병대 병사는 사지가 훨씬 낫다고 했다. 그리고 여전히 광장에는 제주 4.3 사건 피해자들을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누군가는 보수 성향 대통령 당선자가 제주 4.3 사건 피해자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을 대단하다고 치켜 세운다. 당연한 일을 해도 칭찬 받고, 남아있는 폭력은 해결되지 못한 채 쌓인다.

이런 면에서 제주 4.3 사건은 현재다. 국가 폭력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여전히 진행되는 현재. 이 현재를 어떻게 수습하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현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만 만족하고야 만다. 갈 길이 멀다.

태그:#제주 4.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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