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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이었다. 세탁기를 돌리러 베란다에 나가보니 빈 화분에 메추리알만한 하얀 알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비밀은 금세 풀렸다. 빨래를 말리려고 자주 문을 열어 놓다 보니 비둘기들이 알을 낳으러 여러 번 들어왔더랬다.

빈 화분이 나란히 놓여 있었으니 둥지 틀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베란다에 똥이라도 쌀까 봐 보이는 족족 쫓아냈었는데 그중 한 쌍이 내 눈을 피해 커다란 화분에 덩그러니 알을 낳은 것이었다.
 
세탁기를 돌리러 베란다에 나가보니 빈 화분에 메추리알만 한 하얀 알이 놓여 있었다.
 세탁기를 돌리러 베란다에 나가보니 빈 화분에 메추리알만 한 하얀 알이 놓여 있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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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둘기 새끼가 무사히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돕는 수밖에. 먼저 쌀과 물을 내다놓고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비둘기 부부는 먹이는 본체만체 번갈아 정성껏 알을 품었다. 놀랄까 봐 극도로 조심하며 드나들었다. 인간이 무서울 법도 한데 몸을 피하지도 못하고 눈만 깜박거리며 알을 품고 있었다. 그 부성애와 모성애라니.

한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알을 품는 것은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증이 생겨 검색도 해 보았지만 마땅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관찰한 사실을 토대로 가설을 세워 보았다.

비둘기는 한 번에 알을 두 개씩 낳는다. 먼저 알 하나를 낳고 둥지가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면 다시 알을 하나 더 낳고 품기 시작한다. 알이 두 개라는 데서 단서가 보였다. 비둘기는 일부이처제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한 알은 이쪽 와이프가 낳고 다른 알은 저쪽 와이프가 낳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내 가설이다. 백과사전에는, '비둘기가 알을 낳는 개수는 1~2개이며, 조건이 맞으면 계속해서 번식하는 습성이 있다. 암수 같이 12~17일 동안 알을 품는다'라고 나온다. 내 말이 맞는지 TV 동물농장에 제보해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미 시간이 지나 버렸다.

우리집 베란다에 찾아온 비둘기 가족
 
베란다는 새끼들의 똥으로 뒤범벅되었다. 나는 계속 새끼들이 똥을 눌 만한 곳을 찾아 신문지를 깔고 다녀야 했다.
 베란다는 새끼들의 똥으로 뒤범벅되었다. 나는 계속 새끼들이 똥을 눌 만한 곳을 찾아 신문지를 깔고 다녀야 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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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알을 깐 줄도 몰랐다. 하지만 새끼가 조금씩 커지면서 어미 품에서 노란 털들이 비집고 나왔고 새끼들이 더 자라자 부모 새는 어느 순간부터 새끼들만 남긴 채 먹이를 잡으러 날아가기 시작했다.

요 시간이 새끼들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때였다. 한 놈은 벌써 바지런히 돌아다니기 시작한 반면, 다른 녀석은 몸을 꼭 웅크린 채 잠만 자고 있었다. 부모가 먹이를 잡아 돌아올 때마다 나는 꿈같은 세계를 경험했다. 삐약삐약? 비약비약? 병아리 소리 그 이상의 환상적인 소리로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새끼들의 모습에 뼈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너무 이뻤다. 하지만 사물엔 양면이 있는 법. 곧 베란다는 새끼들의 똥으로 뒤범벅되었다. 나는 계속 새끼들이 똥을 눌 만한 곳을 찾아 신문지를 깔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베란다 문을 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부모 새들이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네 마리가 비좁은 베란다에서 공중부양을 한 채 날갯짓을 하는 모습은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로 다음 날 문을 열자 베란다는 휑 하니 비어 있었다. 새끼들이 이소에 성공한 것이었다.

비둘기를 키워본 사람이라야 그때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똥 때문에 귀찮았던 생각은 멀찍이 사라지고 이제 새끼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웬걸. 다음날이 되자 내가 늘 부어놓는 쌀알을 먹으러 부모와 새끼가 함께 베란다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둘기와의 동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산 넘어 산이라던가? 이번엔 도둑 비둘기가 신경을 쓰게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얀 비둘기 모자가 몰래 쌀알을 먹으러 자주 나타났다. 이미 겨울의 길목으로 들어서 있어서 밖에서는 먹이 찾기가 힘들어져서 그랬을 것이다.

이런 살뜰한 이해심은 나중에야 발현되었고 당장은 도둑 비둘기들을 몰아내는 데만 급급했다. 하얀색 비둘기 새끼는 배가 얼마나 고픈지 계속 쪼아대는 내 새끼들(부화한 비둘기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 알이라도 더 먹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새끼들이나 내 손에 쫓겨나곤 했다.

올 겨울은 포근한 날이 많았다. 그러니 이제 다 자란 새끼들이 새로 알을 낳으려 베란다 곳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조건이 맞으면 계속해서 번식하는 습성이 있다'더니, 그런가 보다. 때로는 소금가마니 위에 자리를 잡고 때로는 책장 옆 오목한 곳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구멍을 막거나 이것저것 올려놓아 알을 낳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말하자면 산아제한을 한 셈이었다.

비둘기 새끼가 다시 알을 낳았다

하지만 마침내 수챗구멍 바로 앞에 나뭇가지를 날라 둥지를 틀고 어느새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난감했다. 바람이 불지 않고 해도 잘 들고 천적으로부터도 안전하며 쌀 먹이도 끊이지 않는 이 베란다가 녀석들에겐 튼튼한 성으로 느껴졌으리라.

3월이 되었다. 더 이상 본능을 막을 수 없었다. 먼저 이 녀석들이 태어나서 자라난 큰 화분을 다시 그 녀석들의 둥지로 만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바닥에 널려 있던 똥들을 치워버리고 새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세숫대야를 덮어 지붕을 만들어 주었다. 며칠 암수가 드나들더니 나뭇가지를 주워다 대궐을 만들어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처럼 알 한 개가 보이고 곧이어 또 알 하나를 낳아 놓았다. 이제 부모새들은 난생 처음 지난한 고생길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사람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까지 적잖이 고생을 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사랑스러워 힘든 줄도 모르고 키우지 않는가. 그렇대도 야생동물을 키울 때는 지나치게 번식을 하지 못하도록 산아제한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비둘기는 해조(사람의 생활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피해를 주는 새)입니다. 먹이를 주지 마세요."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안내판이다. 지금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공공의 이익보다 내 마음이 앞서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1년에 한 번만 새끼를 치도록 산아제한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창문 너머로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를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미소가 얼굴 한가득 피어오른다.

그런데 1년을 가까이 돌봐주어도 나만 보면 요것들이 도망을 간다. 내가 먹이도 내다주고 청소도 해주건만 나만 보면 꽁무니가 빠지도록 바삐 도망을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이 비둘기 집사의 운명이겠거니.
첨부파일
비둘기 집사.hwp

태그:#비둘기, #집사, #이소, #일부이처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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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정체성을 단단하게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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