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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펜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일자리의 지속성, 소득, 노동조건, 사회 보장이 모두 취약한 불안정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불안정 노동자는 법적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서남권 서울특별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는 불안정 노동자의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한다.[편집자말]
프리랜서 IT 웹개발자인 강게임씨는 웹개발자 구인 플랫폼을 통해 평소 선망하던 유니콘 게임 개발업체의 오픈 개발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같이 일 해보자"는 반가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취업이 아니라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외주용역 계약이었습니다.

게임씨는 잠깐 실망했지만 "수습 개념으로 생각하세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게임씨 정규직 직원 채용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라는 업체 인사담당자 말을 믿고 신제품 게임 개발 프로젝트 업무 일부를 수행하기로 계약했습니다.

형식상으로는 게임씨와 업체 사이에 '외주용역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업체는 게임씨에게 사업자등록을 하도록 요구하고 근무 장소와 근무시간, 별다른 복무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자율성을 보장하기로 약정했습니다. 약속한 기간까지 게임씨가 담당하기로 한 프로젝트를 완성하면 업체는 그에 따른 보수를 게임씨에게 지급한다는 조건도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개인사업자, 실제로는 근로자

그러나 실제 근로조건은 달랐습니다. 업체가 지정한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여 매시간 업무보고를 하고 개발의 진척 정도를 업체 관계자에게 보고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점심시간 무렵에 지인이 공유 오피스 근처로 게임씨를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왔는데, 업체 관리자가 "너무 오랜 시간 사무실을 비웠다"라며 게임씨에게 SNS 메시지로 문제를 제기한 일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업체에서는 수시로 계약 내용 외 해당 업체의 업무 가운데 일부를 게임씨에게 처리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부탁이었지만 게임씨가 정규직에 대한 희망으로 계약 외적인 업무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자 업체는 신제품 게임 개발 프로젝트의 지원금 정산 같은 업무 외 회계 처리까지 게임씨에게 수행하게 했습니다.

약속 기간까지 프로젝트 완성에도 근무시간이 빠듯했는데 매월 프로젝트 지원금 정산을 담당하다 보니 하루 12시간 이상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하는 날이 늘었습니다. 그렇게 게임씨는 5개월 이상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한 달에 2일 정도만 쉴 수 있었습니다.

업체에서는 프로젝트 완성일이 다가오자 더욱 게임씨를 다그쳤습니다. 게임씨는 장시간 근로와 수개월 계속된 야간근무로 인해 두통과 위염 등의 질병도 앓게 되었습니다. 게임씨가 "부수 업무의 부담과 건강 상태로 인해 프로젝트 완성이 어렵다"라고 고충을 토로하자 업체에서는 그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제출하고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실질적으로 게임씨를 해고한 것입니다.
 
게임씨처럼 수많은 프리랜서 IT개발자들은 실질적으로 업체에 소속되어 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지만, 형식상 용역계약 혹은 도급계약자로 되어 있어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임씨처럼 수많은 프리랜서 IT개발자들은 실질적으로 업체에 소속되어 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지만, 형식상 용역계약 혹은 도급계약자로 되어 있어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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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씨는 배신감에 해당 업체를 상대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습니다. 업체가 게임씨와 프로젝트 계약만료 이전에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이기 때문에 원직복직을 할 수 있도록 구제신청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게임씨의 기대와 달리 노동위원회에서는 게임씨가 구제신청의 당사자 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외주용역계약에 따라 업체가 게임씨에게 복무규율을 적용해 출퇴근 등을 관리·감독하지 않았고, 게임씨가 사업자등록을 한 개인사업자로 업체와 대등하게 외주용역계약을 했다는 이유에서 게임씨를 근로자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씨처럼 수많은 프리랜서 IT개발자들은 실질적으로 업체에 소속되어 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지만, 형식상 용역계약 혹은 도급계약자로 되어 있어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IT노동자, 노동자로 인정해야

사업주들은 단기간의 프로젝트를 완성할 때까지 계약을 하고, 이후 하는 걸 봐서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겠다며 희망 고문을 합니다. 단기간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놓인 프리랜서 IT 노동자가 계약 내용 외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프리랜서 IT노동자들의 계약 형태를 명확하게 하고 근로기준법 등을 통해 보호해야 합니다. 게임씨가 노동자라는 점이 인정된다면 사업주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항해 해고될 경우, 해고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과도한 업무시간에 대해서도 제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중한 업무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IT노동자들은 보통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편집 작업을 수행하면서 업무시간 대부분 개별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을 만나더라도 기업을 상대로 혼자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증거를 취합해야 해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서남권 서울특별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는 프리랜서 IT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분양하고 작게나마 간식을 마련하여 프리랜서 IT 노동자들이 서로 만나서 함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고충상담도 지원합니다.

더 이상 프리랜서 노동자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불안정 노동자 사례는 서남권 서울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발간한 <노동이 우리에게 와서: 불안정 노동 이야기>에도 실려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노총 부천상담소에서 제공한 사례와 민주노총법률원의 감수로 작성되었습니다.


태그:#불안정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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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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