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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펜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일자리의 지속성, 소득, 노동조건, 사회 보장이 모두 취약한 불안정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불안정 노동자는 법적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서남권 서울특별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는 불안정 노동자의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한다.[편집자말]
가사노동자 이청소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가입비를 내고 등록을 하면 해당 소개소 실장이 가사노동자를 원하는 가정으로 연결해 주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개소를 통한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50대 여성 노동자가 소개소를 통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는 주로 식당일과 제조업 사업장의 생산보조 등의 일입니다.

그동안 가사 노동일을 해온 청소씨에게는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일이어서 이제는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 가사도우미 소개 플랫폼에 접속하여 일자리를 구합니다. 청소씨가 이용하는 플랫폼은 가입자 수가 수백 만에 달하는 유명 일자리 구직 앱부터 시작해 50~60대 여성 노동자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만든 앱까지 다양합니다.

청소씨는 이용자가 많은 국내 유명 가사노동 소개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찾습니다. 이용자는 집안 청소나 음식 만들기, 설거지, 아이 돌봄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시간당 약 2만 원에서 2만 3천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이 고스란히 청소씨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청소씨의 보수는 시간당 1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보통 3시간 단위로 하루 두 가구 정도를 방문하여 청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용자는 플랫폼 앱을 통해 청소나 아이 돌봄 서비스에 대해 요구사항을 기재하고 플랫폼에서는 이를 청소씨에게 주지시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합니다.

청소씨는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합니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독립된 특수고용노동자로 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주휴수당이나 연차휴가, 퇴직금 등 기본 혜택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용자와 별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라 업무 내용도 모호합니다.

청소 외 부수 업무를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이 돌봄 서비스를 요구한 이용자가 집에서 요양 중인 시아버지의 식사 마련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거절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용자의 평점이 좋지 않을 경우, 청소씨가 원하는 지역에서 일을 찾기 어려워지고 먼 지역의 경우 추가적인 이동비용이 소요되어 보수가 실질적으로 감액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산재보험 사각지대

일을 하다가 다쳐도 자비로 치료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산업재해 보상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보험설계사나 방문판매원 등 일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 산재보상을 하기도 하지만 가사노동자인 청소씨는 해당이 안 됩니다.

지난 여름에 화장실을 청소하던 청소씨는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물리치료 비용 부담도 컸지만 일을 하지 못하니까 경제적 부담이 더 컸습니다. 그렇지만 청소씨는 이용자가 치료비에 보태라고 준 10만 원을 제외하면 치료비와 휴업에 따른 소득 감소에 대해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되어온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한 채 드러나지 않는 몸들로 살아왔다. 이들의 건강과 인권은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되어온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한 채 드러나지 않는 몸들로 살아왔다. 이들의 건강과 인권은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 국제가사노동자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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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씨와 같은 플랫폼 가사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 해당하는 이용자와 명확하게 보수와 업무에 대한 범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 노동자 사이에 업무 내용을 명확하게 하고 보수의 지급 방법과 시기 그리고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기준을 정해 합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일하다 다치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가사노동자에 대한 산재보상도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근로제공 시간 중 적절한 휴식이나 사용자의 성희롱이나 갑질 행위에 대한 대처, 부당하게 고용계약을 파기할 경우 구제 등 기본적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로기준법 규정을 가사노동자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나마 희소식 

다행히 2021년 5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가사노동자들에게도 유급휴일과 연차휴가, 최저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관련법에 따라 정부의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이용요금 산정 기준 등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또한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은 가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임금의 구성항목과 계산 방법, 지급 방법 및 최소 근로시간, 휴일과 휴가 서비스의 종류와 내용 등을 명확하게 서면에 표시해 가사노동자에게 줘야 합니다.

또한 최소 근로시간으로 1주일에 15시간 이상이 보장되면서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와 퇴직금 지급, 주휴수당 지급의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법에는 사회보험료 지원 조항이 마련되어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도 4대 보험을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남은 문제도 있습니다. 가사노동자법이 적용되려면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기관과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인증을 받지 못한 기관과 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인증 기관에 대한 안정적 공급시장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불안정 노동자 사례는 서남권 서울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발간한 <노동이 우리에게 와서: 불안정 노동 이야기>에도 실려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노총 부천상담소에서 제공한 사례와 민주노총법률원의 감수로 작성되었습니다.


태그:#불안정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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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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