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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품고 시작한 직장 생활, 그리고 그 '꿈'을 이루고자 선택한 자영업, 그러나 현실은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사오정(4050)'. 그러나 아직도 그 '꿈'을 못 버리고 경영자와 시급제 근로자를 병행하며 체험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몇 년 전, 어느 시사주간지와 프랜차이즈 창업을 주제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만남의 자리에서 난 "차고 넘치는 것이 프랜차이즈 전문가인데 왜 하필 저를?"이라는 인사말을 건넸고, 기자는 "'회사원에서 자영업자로 자영업자에서 시급제 노동자로'라는 이력이 독특해서요"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그 대답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난 이 나라 직장인들의 평균적 인생행로를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조선'이 유행어로 맹위를 떨치던 시절, 그 단어와 함께 직장인들과 취업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선 자조 섞인 농담으로 '뭘 해도 어차피 치킨집'이란 말이 회자되었다. 즉 전공이 무엇이든, 어떤 직장을 다니든지 결국 마지막은 '치킨집 사장'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난 그 '치킨집 수렴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냉소적 유머로 유행했던 치킨 수렴공식이다.
 한때 냉소적 유머로 유행했던 치킨 수렴공식이다.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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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 기자는 내게 재창업을 시도하지 않고 시급제 노동자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자영업자에 대해 편견이 있더군요. 고생은 하기 싫고 사장 소리는 듣고 싶어 자영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든 거 아니냐? 라는, 그래서 버티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만이 재창업을 하지 않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은 운이 좋아 수익이 났지만, 5년의 경륜을 쌓은 뒤 시도한 두 번째 사업에선 오히려 호주머니 속 잔돈까지 탈탈 털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과열된 자영업 시장의 피 말리는 '경쟁'과 여기에 더해지는 가족의 '희생'을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창업을 포기하고 조금은 막연히 재취업을 알아보던 중, 영화 <인턴>의 주인공처럼 중년의 나이에 인턴으로 재취업할 기회를 잡았다.

사오정의 재취업, 베테랑에서 인턴으로
 
창업을 포기하고 조금은 막연히 재취업을 알아보던 중, 영화 <인턴>의 주인공처럼 중년의 나이에 인턴으로 재취업할 기회를 잡았다.
 창업을 포기하고 조금은 막연히 재취업을 알아보던 중, 영화 <인턴>의 주인공처럼 중년의 나이에 인턴으로 재취업할 기회를 잡았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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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재취업의 기회를 준 사람은 전 직장 선배였다. 현재는 전기 관련 작은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하는 그가 기술은 물론, 체력도 머리 회전도 심지어 회사원의 기본 덕목인 워드나 엑셀 사용법도 거의 잊어버린 내게 기회를 준 것은 이런 이유였다.

"소기업이다 보니 어리바리 신입을 밥 값하는 기술자로 키울 여력도 없고, 기껏 키워놔 봐야 금방 이직해 버리니 다 헛수고더라. 우리 속담에 '썩어도 준치'라고 하잖아, 이 바닥 생리도 알고 현장 경험도 있고, 뭐 기술은 다시 익혀야 하겠지만 몸이 기억하지 않겠어?"

10여 년 만에 복귀를 한 것이라 나름의 배려도 받았지만, 현장 작업을 지시 받으면서 슬슬 불안감이 일었다. 십수년 전만 해도 현장 작업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20~30대였다. 그러니 내 머릿속에 '아들뻘 기술자들과 부대끼고 때로는 그들에게 배우면서 일해야 하나'란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재취업 후, 처음 회사에 출근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십수 명이 근무하는 작은 회사였지만 20대가 딱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에게 '왜 젊은 직원들이 보이지 않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원래는 몇 명 있었지, 잔소리하거나 야근이나 출장이 잦아도 금방 그만두는 거야, 저 녀석은 그래도 착한 편인데 언제까지 있을지...."

난 그 유일한 20대 직원 A를 선배(?)로 모시고 십수 년의 시간 동안 바뀐 기술이나 자재 규격을 물어보고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건물 뒤쪽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A를 발견했다. 그의 앞에는 과장 B가 조금은 고압적 자세로 서 있었다.

"너 이거 하루 이틀 알려준 거 아니잖아! 2년 차면 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이걸 또 내가 일일이 다 알려줘야 해?"
 

문득, 예전 회사에서 겪은 신입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십수 년의 세월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산업 기자재 규격까지 바꾸었지만, 과거 종종 목격되던 이런 위계의 풍경은 현재도 여전했다.

노장만이 남은 현장

재취업 후 처음으로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나간 현장의 풍경에 나는 깜짝 놀랐다. 현장 작업자들 중 20대는커녕 30대도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연령대가 대부분 40~50대였다. 이 생경한 광경에 대해 선배에게 묻자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렇게 답했다.

"요즘 애들 이런 일 안 하려 하잖아. 참을성이 없어.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다 나가 버리니까, 늙은이들만 남은 거지…"
 

그렇게 달라진 현장 풍경은 '동병상련'이란 느낌과 적어도 이곳에서는 내 나이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내가 가진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바로 미숙함에 더해진 노쇠한 육체였다. 현장의 그들도 나와 비슷한 연배였지만 그들은 이 바닥의 백전노장이었다. 그러나 난 노안과 굼뜬 손가락으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이런 핸디캡은 '효율을 바탕으로 한 이윤의 극대화'가 덕목인 기업 특성상 서로 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기업과 꼰대 
 
그러다 운 좋게 두 번째 재취업의 기회를 얻게 됐다. 소개받은 회사는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인 '스타트업' 회사였다.
 그러다 운 좋게 두 번째 재취업의 기회를 얻게 됐다. 소개받은 회사는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인 "스타트업" 회사였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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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첫 번째 재취업은 내 개인 사정과 육체적 한계로 그만둬야 했다. 그러다 운 좋게 두 번째 재취업의 기회를 얻게 됐다. 소개받은 회사는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인 '스타트업' 회사였다. 그러다보니 직원은 물론 사장의 나이도 나보다 십수 년 아래인 젊은 회사였다.

스타트업답게 사장은 의욕과 열정이 넘쳤다. 그는 나에게 회사원과 자영업자를 거치며 얻은 '경험'을 원했고 난 그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내 경험을 더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젊은이들 특장점이 창의력과 열정이라면 중장년의 특장점은 경험과 신중일 것이다. 그러니 이 둘이 만나면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팀장님은 너무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남들이 안 가 본 곳을 가는 겁니다."

"문제가 있으니 '하지 말자'가 아니고 예측 가능한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모아 보자는 겁니다."


젊은 사장이 긍정과 신념으로 만든 자신의 기획안에 딴죽을 거는 50대가 '꼰대'처럼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였다. 그렇게 '젊은 사장'과 '꼰대 팀장'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하고 깨졌다. 

언젠가 이때 일화를 설계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는 후배에게 푸념처럼 늘어놓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프로젝트로 파견 간 사무실에 정년 퇴임하고 다시 계약직으로 일하는 60대 엔지니어가 있는데, 참 불평불만이 많더라고, '내가 하면 이렇게 할 텐데… 저런 방법은 잘못된 건데…', 그때 그 사장도 형이 참 부담스러웠을 거야."
 

'사오정', 그러니까 40~50대 명퇴자들이 자영업으로 몰려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저 '사장' 소리가 듣고 싶어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년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요즘, 더욱이 70세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사오정'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로 퇴출된 자영업자들까지...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태그:#사오정, #재취업, #명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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