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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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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이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AP,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각) 탈레반 전투원들이 마침내 아프간 수도 카불에 진입하자 압둘 사타르 미르자크왈 아프간 내무부 장관은 "탈레반의 과도 정부에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며 항복을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이보다 먼저 국외로 도피했다. 지난 5월 미군이 본격적으로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이다.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각국 대사관이 몰려들면서 현지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고, 은행에는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등 탈레반의 귀환에 아프간 주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은 자국 대사관의 탈출을 돕기 위해 5천 명의 미군을 배치했고, 우리 외교부도 "아프간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어 현지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지역 제3국으로 철수시켰다"라고 밝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프간 떠나고 싶었던 미국 

1994년 만들어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기존 정부의 부패와 무능에 지친 아프간 주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결성 2년 만에 정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했고, 그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미국은 전쟁을 개시했고, 그해 11월 탈레반은 정권을 빼앗기고 미국이 지원하는 임시정부가 구성됐다.

파키스탄과의 접경 지역으로 도피한 탈레반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마약 밀매로 벌어들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게릴라전을 이어갔고, 미국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AP통신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2001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20년간 미군 2448명이 목숨을 잃었고, 2조 달러(약 2338조 원)을 쏟아부었다. 

미국인들은 지쳤고,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데 불만이 많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20년 2월 아프간에 있는 미군을 올해 5월까지 철수하기로 탈레반과 합의했다. 미군이 떠나자 탈레반은 기다렸다는 듯 카불을 향해 진격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베트남 전쟁 속편'으로 불리는 이유다. 

여전히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군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 했다. 수적으로 우위였지만 간부들이 급료를 가로채기 위해 상당수가 허위로 등록한 '유령 군인'으로 알려졌다. 또한 탈레반은 미군이 공들여 훈련시킨 특공대원, 공군 조종사 등 핵심 전력을 표적 살해했다. 탈레반의 잔혹성을 잘 알고 있는 일반 병사들은 오히려 탈레반에 투항하기도 했다.

탈레반 잔혹함 앞에 놓인 아프간 여성들 "미국에 배신감"

정권을 넘겨받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레반과 맺은 철군 협정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도 지금이 아니면 미군이 아프간에서 벗어날 기회가 다신 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분석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CNN 방송에 출연해 "만약 철군 결정을 번복했다면 다시 탈레반과 전쟁을 벌였을 것이며, 수만 명의 미군이 또 아프간에 가야 했을 것"이라며 "아프간에 남는 것은 더 이상 미국에 이득이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날 탈레반은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성명을 내고 "기존 정부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어떤 보복도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외국 대사관, 기업, 자선단체를 위해 안전한 환경을 만들겠다"라며 아프간을 떠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겠다며 가혹한 형벌, 여성 인권 억압 등 비상식적이고 패륜적인 율법을 내세우는 탈레반의 통치를 다시 맞이하게 된 아프간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미국을 원망하고 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아프간의 젊은 여성들은 신체를 모두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뛰어갔다.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여대생은 모든 여학교를 폐쇄했던 탈레반의 귀환에 "내가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아프간을 떠나는 미국대사관을 보며 배신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프간 주민들의 잃어버린 삶은 바이든 행정부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으며, 당장 파키스탄과 이란 등 이웃 나라들은 아프간에서 쏟아질 난민을 어떻게 받아낼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태그:#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조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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