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마다 제각기 개성이 다른 것처럼, 여행을 즐기는 방법 또한 가지각색일 것이다. 쾌적하고 세련된 호텔 방 창가에 앉아서 밖으로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산과 바다, 그 그림 같은 풍경을 찬찬히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숙소에 짐을 풀기 무섭게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번지 점프나 패러글라이딩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레포츠를 통해 스릴을 만끽하려는 부류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여행의 목적은 아마 힐링보다는 일탈에 더 가까울 것이다.

메뉴 선택이 곧 여행인 나 
 
부산의 돼지국밥
 부산의 돼지국밥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로 말하자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OO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메뉴'부터 검색하고 보는 사람이다. 사실 15년이 넘는 자취 생활 덕분에 '밥'에 대한 로망이 없어진 지 오래인 나는 아무리 부실한 밥상 앞에서도 여간해서는 반찬 투정을 하는 법이 없고, 오히려 뭐든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그런 내가 여행만 갔다 하면 왜 '고독한 미식가'라도 된 듯 돌변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여행'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설렘이 내 안에 숨어있는, '또다른 나'를 끄집어내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내게 여행의 목적을 묻는다면 '맛있는 것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여정'이라 대답할 수 있겠다.

그래서 몇 해 전 부산 여행을 계획했을 때, 맛있다고 소문난 메뉴들은 모조리 섭렵하고 오겠다고 각오를 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에는 물론 '돼지국밥'도 포함되어 있었다. 뽀얀 국물에 푸짐한 돼지고기 건더기, 거기에 하얀 쌀밥을 말아서 매큼한 겉절이와 함께 먹는 상상만으로 입안에 군침이 가득 돌았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부산에서 끝내 돼지국밥을 먹지 못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 때문이었다.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와 나는 고심 끝에, 국밥이야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테니 일단 산지 특유의 싱싱한 해산물 위주로 공략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합의를 본 것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날 먹지 못한 돼지국밥이 몇 해에 걸쳐 두고두고 한이 될 줄은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놈의 돼지국밥은 잊을 만하면 번뜩, 하고 생각나는 날들이 있었다. 예컨대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즈음 막 시작된 감기 기운으로 골골거리다가 말고 문득, 혹은 과음한 다음 날 속풀이 해장국이 절실할 때 무심코, '아, 그때 그 돼지국밥을 먹었어야 했어!'라는 자조 섞인 후회의 마음이 울컥 치미는 것이다.

배달 어플을 켜고 몇 번 클릭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부산식으로 담백하게 끓여낸 돼지국밥이 삼십 분 내로 집 앞에 도착하는, 요즘 같은 '전국구 미식' 시대에 뭐가 문제랴 싶겠지만 나는 어쩐지 부산이 아닌 곳에서 먹는 돼지국밥은 진짜 돼지국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의 선택은 늘 선짓국이나 순댓국 같은 돼지국밥의 사촌쯤 되는 메뉴로 향하곤 했다. 그때마다 '올여름 휴가엔 꼭 다시 부산에 가야지' 다짐을 했었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작년 휴가 땐 나흘 내내 집에 있었다. 혼자 캔맥주를 마시고, 그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얼마 전,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나는 이번 휴가 땐 혹시 마스크를 벗고, 한결 홀가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진짜' 돼지국밥을 먹으러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올여름 휴가도 여행은 물 건너간 듯하다. 이제 칠순이 다 되어가는 엄마와 칠순을 조금 넘긴 아버지는 며칠 전 나란히 백신을 맞으셨다. 혹시 후유증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해댔더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너도 맞을 때 되거든 얼른 가서 줄부터 서라는 소리만 하신다.

기약 없는 40대의 백신 접종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수도권에 대한 '새로운 거리두기' 시행이 1주일간 연기된 가운데 1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거리가 비교적 한산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신규확진자 수는 762명으로 지역발생이 712명 해외유입이 50명으로 집계됐다. 경기 성남·부천·고양·의정부와 인천 등 5개 지역 영어학원 6곳 및 서울 마포구 음식점과 관련한 누적 확진자는 213명으로 늘었다. 이 중 9명은 델타 변이 감염자로 확인돼 방역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2021.7.1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수도권에 대한 "새로운 거리두기" 시행이 1주일간 연기된 가운데 1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거리가 비교적 한산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신규확진자 수는 762명으로 지역발생이 712명 해외유입이 50명으로 집계됐다. 경기 성남·부천·고양·의정부와 인천 등 5개 지역 영어학원 6곳 및 서울 마포구 음식점과 관련한 누적 확진자는 213명으로 늘었다. 이 중 9명은 델타 변이 감염자로 확인돼 방역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2021.7.1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병원 근무 경력이 있는 오십 대의 친한 언니도, 얼마 전 백신을 맞고 좀 뻐근했지만 금방 괜찮아졌다는 후기를 전했다. 유치부 수학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삼십 대의 아는 동생도 일찌감치 접종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막 마흔에 접어든, 군대 미필자인, 평범한 직장 여성인 나는 어째 깜깜무소식이다.

언제쯤 접종 대상자가 될 수 있을는지 기약조차 없다. 이쯤 되면 혹시 나라에서 나를 까먹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보챈다고 될 일도 아니고, 접종 순서를 정하는 데 있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충분히 고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인지라 서운한 마음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여행다운 여행을 가 본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매일 집과 회사만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지치고 무료하다. 게다가 이 와중에 서울에서 누적 확진자가 242명으로 불어났다는 소식이다(1일 기준). '서울 마포구 음식점-수도권 영어학원 7곳과 관련해서 29명이 추가'된 숫자다. 맥이 탁 풀린다. 누군가의 방심이 누군가의 상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때다.

속이 뻥 뚫릴 만큼 청량한 부산 바다를 내다보면서 싱싱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을 걸치고, 그 다음 날은 몇 해를 벼르고 벼르던 그놈의 돼지국밥으로 시원하게 속을 풀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를 비롯한 사십 대 평범한 직장인들의 백신 접종 차례가 얼른 돌아오기를 염원해본다.

태그:#여행, #백신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