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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전남 여수시청 대회의실에서 유족들이 기뻐하고 있다.
 29일 오후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전남 여수시청 대회의실에서 유족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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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유월의 하늘이 눈부십니다. 기억해야 할 많은 일들이 담겨있는 달입니다. 6월 29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여순사건특별법)이 사건 발발 73년 만에 제21대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역사의 달력에 또 하나의 사건을 굵게 아로새겨야 할 시간입니다.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된 현대사의 비극은 73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피 흘리며 우리를 향해 울부짖고 있습니다.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진실의 창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1947년부터 시작된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의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제주에서 소위 제주4‧3사건 학살 진압을 지시한 이승만 정부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제주4.3을 진압하라는 군의 명령을 부당하다 여긴 여수 14연대 군인들은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으나 결국 지리산 입산을 택합니다. 젊은 군인들은 '애국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에 '동족상잔 결사반대'와 '미군 즉시 철퇴'라는 내용을 남기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32년 뒤인 1980년 광주학살을 지시한 전두환 정권에 복종한 군대와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이후, 한국 현대사는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승만 정부는 국가와 군대라는 조직을 동원해 여수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라는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로부터 한국사회는 소위 여순체제라는 반공체제를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순사건은 1만 명이 넘는 민간인 피해자(1949. 11. 전라남도)가 발생했고, 피해 범위도 전남, 전북, 경남으로 광범위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공식적 기록이나 조사는 57년이 지난 뒤에야 시작됩니다.
 
201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사건 발발 70년 만에 여순사건 희생자 좌·우 합동추념식이 열렸다.
 201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사건 발발 70년 만에 여순사건 희생자 좌·우 합동추념식이 열렸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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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같은 해 12월에 설치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의 활동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조사였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민간인학살사건 1222개에 파묻혀 구체적인 사건의 진실을 밝힐 시간과 조사인력 및 예산이 부족해 진화위는 부랴부랴 사건을 매듭짓습니다. 사건 발생으로 고통당한 유족들은 제한된 시간 때문에 닫혀버린 진실의 문 앞에서 두 번 통곡했습니다.

제21대 국회에서 유족과 시민‧사회단체의 끈질긴 노력으로 제정된 '여순사건특별법'은 '여순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수단입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맡긴 '여순사건특별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돌이켜보면, 제주4‧3이 없었으면 여순사건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주가 역사의 진실이라면 여순사건 역시 역사의 진실이어야 합니다. 여순사건은 제주4‧3 연장선의 역사이지만 이제야 진실의 창을 여는 것입니다. 여순사건은 남북분단사의 마지막 남은 민족사의 금기요 과제입니다.

1998년 10월, 여순사건 50주년에 여수시 호명동에서 관련 희생자 암 매장 학살지를 전국 최초로 발굴해 세상에 알리며 강요된 침묵을 깼고, '여순사건'과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해 수년간 노력을 기울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이사장을 만나 특별법 제정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다음은 6월 30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이영일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73년이란 너무 오랜 기간...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
  
지난 6월 21일 국회 앞에서 이자훈 서울유족회장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이사장이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21일 국회 앞에서 이자훈 서울유족회장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영일 이사장이 시위를 하고 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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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대 국회에서 '여순사건특별법'이 제정‧공포됐습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텐데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역사적인 날이라 당연히 기쁩니다만, 73년이란 너무 오랜 기간 기다려오고 20여 년간 법 제정을 추진해와서인지 지쳐있고 힘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또한 원안에서 수정 통과된 법이라 문제점이 있는 법에 대해 이를 시행령으로 보완하고 법 개정 운동을 통해 완성된 법을 만들어야 해서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16대 국회에서 시작된 특별법 제정 활동이 21대 국회에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동안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셨는데 지난 과정을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여순사건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해 1997년부터 여수·순천지역 피해자실태조사와 자료집 발간, 여순사건 50주년에 처음으로 위령제 등의 행사 공론화, 여순사건유족회 조직, 30여 차례 국내외 학술심포지움 개최, 칼마이던스 사진집 등 관련 자료 20여 권 발간, 20여 년간 5차례의 특별법 제정을 위해 법안 마련과 국회 발의 의원 조직 등입니다."

- 몸담고 있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수십 년간 여순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여순사건과 연구소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연구소가 1995년에 설립되어 1997년부터 피해자실태조사를 하고 1998년 여순사건 50주년을 계기로 사건을 공론화하고 2000년도부터 여순사건유족회를 조직하여 16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법 제정을 추진하였으므로 연구소의 주력사업 중의 하나입니다."
 
1948년 10월 여수 시가지가 불타고 있는 모습.
 1948년 10월 여수 시가지가 불타고 있는 모습.
ⓒ 여수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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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대 국회에서 통과된 '여순사건특별법'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되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갖췄는지 궁금합니다.
"아쉽게도 이번에 제정된 법은 원안에서 많이 수정된 법으로 제주4·3법이 제정된 이후 5차례에 걸쳐 개정한 내용보다 후퇴한 법안으로 2000년 1월 12일에 제정된 최초의 제주4·3법에 다름아닙니다. 법을 제정할 때에는 앞선 법안을 참조해 보다 완성되고 선진화된 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여순사건 최초의 특별법은 오히려 최초에 제정된 제주4·3법(2000. 1. 12)으로 회귀한 법입니다.

예를 들어, 제주 4·3사건의 경우, 제주4·3진상규명위원회 당시 김종민 전문위원 확인사항입니만, 실무위원회 조사가 부실하여 이 과정에서 명예회복위원회가 이를 다시 전면적으로 재조사했으며, 심의‧의결을 위한 검증 과정 등에서 인력‧예산‧시간 낭비를 초래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순사건특별법은 진상규명에 대해서 아직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여순사건특별법 제정된 뒤 이어지는 과정들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앞으로 숨 가쁘게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행정안전부 준비기획단이 8~9월경에 출범하고, 12월 말에 시행령 제정 공포 이후 여순사건처리지원단 설치, 전라남도, 여순사건지원사업소 설치, 진상규명명예회복위원회 구성발족, 실무위원회 발족, 실무위원회협의회 구성, 사건 신청 신고 접수, 조사개시 결정,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 발족, 희생자 심의 결정 등 숨 가쁘게 전개될 것입니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당장에는 문제점이 있는 법에 대해 시행령 보완을 위한 토론회와 보다 완성된 법 개정 운동을 통해 진상규명을 하고자 법 개정 토론회도 준비할까 합니다. 또한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인지라, 위원회 구성을 위해서도 나름의 역할을 할까 합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해 20여 년간 함께 투쟁해 온 유족회와 시민사회 모두에게, 특별히 법 제정 사실을 모르고 이미 고인이 되어 유명을 달리하신 유족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법 제정을 위해 그동안 노력한 전남 동부지역 국회의원들께도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여순사건은 남북분단사의 마지막 남은 민족사적 금기이며 과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역사를 위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태그:#여순사건특별법, #여순사건, #제주4.3사건, #대한민국국회, #여수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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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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