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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 묻는 아이의 질문은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 중 하나였다.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다. 여름은 실외 수영을 할 수 있어 좋고 겨울은 눈이 내려 좋다. 우물쭈물하다 아이에게 질문을 넘기면 아이는 바로 대답한다. 여름엔 겨울이 좋고 겨울엔 여름이 좋단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사이에는 따뜻한 봄과 선선한 가을이 있어 완충 작용을 해준다. 4년 전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할 때, 하루 만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간 적이 있다. 눈보라가 치던 스웨덴에서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몰디브로. 북유럽에서는 10월에도 눈이 온다. 우리나라 한겨울보다 더한 추위에 시달리며 "괜찮아. 다음 일정은 따뜻한 나라야"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몰디브 말레 공항에서 와장창 깨졌다. 뜨거운 햇빛과 습기가 가득한 공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공항 화장실에서 겨우 얇은 옷으로만 갈아입은 우리는 무방비 상태였다. 선크림도 양산도 모기 퇴치제도 심지어 부채도 없다. 공항 대기실에는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덜덜덜 소리를 내며 힘겹게 돌아갔다. 아이는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아, 더운 게 이런 거였지."

우린 더위란 게 어떤 건지 잠시 잊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비빔면과 아이스커피 광고가 나오면, '아. 이제 여름이구나' 하고 느낀다. 또 아파트 위에서 내려다본 놀이터가 놀이터 주변의 풍성한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 여름밤 냄새가 날 때 그리고 학원 간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해가 길어져 밖이 환할 때.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추운 겨울에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듯 여름은 더워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그 행복한 시원함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여름의 대표적인 과일, 수박을 준비해야 한다. 수박을 쓱싹쓱싹 칼로 잘라 반으로 쩍! 가른다. 반짝이며 빛을 내는 빨간 속살이 보인다. 다시 한번 가르고 깍둑썰기해 커다란 락앤락 통에 넣는다.

수박 껍질에 남아있는 속살은 숟가락으로 긁어먹고 빨간 부분을 칼로 말끔하게 잘라낸다. 그 껍질을 잘게 잘라 냉장고에 넣는다. 강한 햇빛으로 얼굴이 벌게졌을 때 이 수박 껍질을 꺼내 얼굴에 슥슥 문지르면 피부가 금세 진정된다. 다른 진정팩이 필요 없다.
 
수박 껍질
 수박 껍질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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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미숫가루다. 더위에 지쳐 온몸에 힘이 없을 때 얼음이 들어간 미숫가루처럼 맛있는 것도 없다. 커다란 물병에 우유 500ml와 미숫가루 다섯 숟가락, 꿀 두 숟가락을 넣은 다음 마구 흔든다. 그다음 유리 컵에 담아 얼음을 넣으면 시원한 미숫가루 음료 완성이다.

언제든 먹을 수 있게 얼음 트레이에 얼음을 꽉꽉 채워 놓고 미숫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한다. 비빔면도 빠질 수 없다. 여러 종류의 비빔면을 구매해 놓고 비빔면에 넣을 양배추를 썰어 통에 넣어 놓으면 한여름 더위도 두렵지 않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내 날개를 닦고 에어컨 청소를 하는 건 필수다. 소파 위, 거실 바닥, 침대 위에 놓을 대자리도 꺼내 깨끗하게 닦는다.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모기약도 챙겨놓아야 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정비하는 일이다.

가만히 있어도 더위로 몸이 축축 늘어질 때, 온몸이 끈적끈적해 조금도 움직이기 싫을 때,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일 힘을 얻는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틀어놓기만 해도 내 어깨는 저절로 들썩이고 입에선 흥얼흥얼 노래가 나온다. 잠시 더위를 잊는다.

여름은 흥겹고 신나는 계절이다. 덥지만 더워서 맛있는 팥빙수와 냉면도 먹을 수 있고 물놀이도 맘껏 할 수 있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예전처럼 마음껏 여름을 즐길 순 없어도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써 본다.

좁은 베란다에 캠핑 의자 두 개와 향초를 세팅해 놓았다. 더운 바람이 느껴지는 밤에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초를 피우고 아이와 수박을 먹는다. 별 것 아닌데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아이는 질리지도 않는지 며칠 전에도 같은 질문을 했다.

"엄만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엄만 여름밤이 좋아. 엄만, 여름 할래!"


간만에 확실한 대답을 했다. 수박, 미숫가루, 비빔면, 대자리, 선풍기, 에어컨, 모기약, 여름 음악을 준비한 지금, 난 두려울 게 없다. 오케이! 이제 시원함을 즐길 일만 남았다.

태그:#여름 준비 , #여름 즐기기 ,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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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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