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가 2년 전에 이 책을 구입한 건 오로지 저자에 대한 내 팬심 때문이었다. 만일 작가 은유의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읽은 후의 심란해질 마음을 걱정하며 구입을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겉표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겉표지
ⓒ 돌베게

관련사진보기

 
다행히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다 읽어야겠다는 고집스러움 덕에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최근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이 책의 강연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팬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거슬리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최근 1~2년만 살펴보아도 일하다 죽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택배기사들은 비인간적인 업무량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고, 불과 얼마 전엔 아르바이트하러 온 젊은 청년이 안전장치 하나 없는 곳에서 대체 투입되었다가 지게차 벽체에 깔려 죽었다. 안타깝다고만 하기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너무, 자주, 죽고 있었다. 

일하다 죽는 일은 쉽게 발생할 일이 아니다

다시 이 책을 읽으며 꽂힌 생각이 하나 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김동준군(2014년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이었던 김동준군은 장시간 노동과 작업장 내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혹은 사고로 죽은 이민호군(2017년 제주의 한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이민호군은 생수 적재 프레스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의 죽음을 확률로 계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이다.

내 답은 이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것. 사람 하나 죽는 게 정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왜 죽었을까가 아니라 왜 죽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확률이 얼마나 낮은 것인지 알 수 있다. 그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변수들이 한두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저가의 인력을 쓰고 노후화된 기계는 고치지 않는다. 사고를 원하지는 않겠지만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환경은 방치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방치가 가능한 건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는 구조에 의해 가능해지기도 한다. 산재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존재가 여러 명인 것이다.

사장이기도 하고 부장이기도 하며, 공장장이기도 하고 선임이기도 하다. 책임자가 이렇게 많지만, 오히려 많기 때문에 명확한 사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책임이 분산되는 과정에서 처벌의 수위는 매우 낮아지고 개인에게 부가되는 죄책감은 쪼개져 희석되어 버린다. 

관련 부처의 감독과 사고 수습 능력도 허술하다. 노동청은 노동청대로,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자기네들 소관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척 하다가 사건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주춤해지면 그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학교는 또 어떤가. 이 책에 나오는 여러 학생들의 말처럼,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보니 아이들은 무엇이 부당한지, 무엇을 거부하고 무엇을 문제제기 해도 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학생들이 힘들다고 말했을 때 조금만 더 참고 견디라는 선생님의 말이 어디까지 참으라는 것인지를 그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 어른들도 한몫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죽어나간 그 현장에 몸은 있었지만 어른으로 존재하지 않은 이들만 문제는 아니다. 오토바이로 피자 배달하던 아이가 사고로 죽었을 때  '공부 안 하면 너도 그렇게 된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잔인함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공부란 무슨 뜻일까? 그들이 말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되나? 우리는 뻔히 다 안다. 공부를 해도 힘든 세상이란 것을. 그리고 공부의 정의 자체가 비뚤어져 있다는 것을. 공부를 안 하면 그렇게 된다는 말은 어른들의 잘못을 상대적으로 세상 경험이 적은 아이들에게 원인을 돌리는 일이며 문제의 핵심을 피하는 나쁜 술수다.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듣는 일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에 죽음의 네트워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촘촘해서 빠지면 나올 도리가 없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 말이다. 김동준군도, 이민호군도, 어찌보면 쉽게 죽은 게 아니다. 그 네트워크의 요소들이 착착 잘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그 요소들 중에 하나라도 부실했다면 어땠을까? 기계가 고장났으면 거기에 들어가지 말라고 야단이라도 쳐준 선배가 있었다면, 취업이 아무리 중요해도 폭력적인 상황을 참으면 안 된다고 말해준 선생님이 있었다면, 무책임한 기업에게 강력한 철퇴 한방을 날려 준 판사 한 명이 있었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을 끝까지 탐사 보도해주는 언론이 있었다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이 책은 총 9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동준군의 어머니와 이민호군의 아버지를 비롯해 특성화고 학생들과 선생님, 김동준 사건 담당 노무사 등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언어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인터뷰 내용에 대한 재가공없이 이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실었다. 

나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언론 지면을 잠시 채웠다 사라지는, 심지어 지면의 한 구석조차 할당받지 못하는 목소리들은 여전히 많고, 그 목소리를 낼, 들을 공간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 하나 이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저자가 자신을 겸손한 목격자라 칭하며 이 책에 실은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에 내 귀 한쪽 내어주는 건 세상사에 동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같은 독자를 위한 이 책의 존재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잘 알지 못하는 아이인 특성화고 학생이자 현장실습생을 피가 돌고 영혼이 깃든 온전한 존재로 만나고 그들과 자기 삶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랐다 - p.25 (저자의 글 중)

이 책에 나오는 장윤호 교사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을 착취하는 건 최저임금을 챙겨 주지 않는 업주만이 아니라 치킨을 싼값에 먹으려던 자신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지점을 채워줘야만 다른 사람들이 같이 좋아지겠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깨달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삶의 연결고리라는 생각이 든다.

둘러보면 그 낮은 지점에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나 하나쯤이야'라며 한 발 빼는 일이, 관행을 핑계로 내 역할과 책임을 오늘 하루 방기한 것이 비극적인 일들의 전조를 만든다. 그 전조들에 우리가 더 이상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서, 더 예민하고 섬세히 바라보기 위해서, 나는 이 책을 함께 나누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fullcount99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은이), 임진실 (사진), 돌베개(2019)


태그:#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 #산업재해, #특성화고, #청소년 노동, #산재 사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을 읽고 떠오르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글로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