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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감독의 신작 <프레지던트>는 짐바브웨의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그린다. 짐바브웨의 젊은 야권지도자 넬슨 차미사(Nelson Chamisa). 다큐 스틸컷
 카밀라 감독의 신작 <프레지던트>는 짐바브웨의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그린다. 짐바브웨의 젊은 야권지도자 넬슨 차미사(Nelson Chamisa). 다큐 스틸컷
ⓒ 카밀라 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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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점찍을 수 있는 작품" -Next Best Picture의 Matt Neglia 

"올해 이보다 더 완성도가 높은 다수 다큐영화를 발견하긴 아주 어려울 것" -'Alternate Ending'의 Tim Brayton

"짐바브웨의 2018년 선거를 드라마, 열정, 유머로 담아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First Film Club'의 Hanna Flint 


과거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의 37년 철권통치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던 짐바브웨의 민주주의가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저명한 덴마크 출신 감독 카밀라 닐손(Camilla Nielsson)이 새로 선보인 짐바브웨 정치스릴러 <프레지던트 President>는,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지난 2월 월드프리미어였던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다큐멘터리 스페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2021년 선댄스영화제에 소개되었던 다큐스릴러 <프레지던트> 예고편 


카밀라 감독의 신작 <프레지던트>는 짐바브웨의 첫 민주적 헌법 제정과정을 기록한 데뷔작 <데머크래츠Democrats>(2014년)에 이어지는 후속작품이다. 이 다큐는 무가베 전 대통령이 2017년 군사쿠데타로 권력에서 축출된 후 2018년 첫 대선 과정을 담았다. 전작 <데머크래츠>도 미국 뉴욕의 트라이베카 영화제, 코펜하겐국제다큐영화제 및 노르디스크파노라마영화제에서 최고 다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포스트-무가베 시대를 맞은 짐바브웨는 지난 몇 년간 민주주의를 향한 고통을 겪고 있다. 2018년 짐바브웨의 젊은 야권지도자 넬슨 차미사(Nelson Chamisa)는 장기집권했던 여당(ZANU-PF)의 군부 출신 전직 부통령 에머슨 음난가그와(Emmerson Mnangagwa)에 맞서 살인 위협을 무릅쓰고 선거를 치러 냈다. 

야당, 민주변화 운동 (MDC Alliance)의 젊은 후보 넬슨 차미사는 타고난 카리스마와 언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희망의 상징이 되었지만, 뿌리 깊은 기득권체제와 부정선거라는 벽에 부딪힌다. 닐손 감독은 당시 짐바브웨의 정치적 상황과 휴먼 드라마를 능숙하게 혼합하며 부패한 사회의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민주사회로의 전환을 꿈꾸는 짐바브웨 국민의 열망과 야권의 치열한 저항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 역사적인 선거는 기득권 세력의 불법행위와 군의 살상(6명 사망)이 없었다면, 짐바브웨가 오랜 무가베 독재 끝에 성숙한 민주주의로 첫발을 내딛는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정부는 공식 선거 결과로 음난가그와 50.8%, 차미사 44.3% 득표율을 발표했다. 
 
에머슨 음난가그와(Emmerson Mnangagwa) 짐바브웨 대통령. 사진 출처 wikimedia- www.kremlin.ru
 에머슨 음난가그와(Emmerson Mnangagwa) 짐바브웨 대통령. 사진 출처 wikimedia- www.kremlin.ru
ⓒ www.kremlin.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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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레지던트>는 짐바브웨인들의 변화를 향한 열망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흥분을 너무도 생생하게 전한다. 200년간의 힘겨운 영국 식민지를 벗어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독재자의 잔인한 철권통치를 너무 오래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지 쇼나어(Shona)로 '돌의 집들'이라는 뜻을 지닌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하며 빅토리아 폭포 같은 드라마틱한 풍광과 다채로운 야생동식물, 사파리 등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세계 3위의 금 생산국이었으나 오랜 독재와 부정부패,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한 극심한 기아와 빈곤으로 '세계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2006년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여성의 평균수명은 34세, 남성은 37세에 불과했다).  

"혼자 힘으로 한 나라를 거지로 만들어" 혹평 받은 무가베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2019년 95세의 나이로 싱가포르에서 사망할 당시 야권 청년지도자 시실리아(Cecelia Chimbiri)는 페북을 통해 "무가베는 혼자 힘으로 짐바브웨를 거지 국가로 만들었다"고 혹평할 만큼 그는 오랜 시간 경제를 초토화시켰다. 한때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리던 짐바브웨는 식량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2008년 말경에는 5백만 명 이상의 국민이 유엔 식량지원프로그램에 의존할 지경이었다.

다수 경제 전문가는 무가베가, 1980년 집권 초기엔 건재했던 짐바브웨를 이후 37년 동안 실책과 부패를 거듭하며 실업률, 정체된 임금, 식량부족, 초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하게 했다고 평한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하였으나 무가베와 부인은 호화 생활을 하며 외국으로 수많은 재산을 빼돌려 물의를 빚었다. 짐바브웨는 아직도 무가베 정권이 남긴 심각한 경제위기에서 회복 중이고 대다수 국민은 변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2017년 11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퇴진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37년 간 통치해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19년 9월, 95세 나이로 사망했다.
 2017년 11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퇴진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37년 간 통치해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19년 9월, 95세 나이로 사망했다.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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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간 잔인했던 독재로부터의 해방과 공정한 선거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짐바브웨의 불법선거의 역사는 길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1983년~1987년까지 자행된 구쿠라훈디 대량학살사건으로, 짐바브웨군은 당시 무가베의 정적인 짐바브웨아프리카인민연맹당 (ZAPU)과 지도자 응코모의 지지기반이었던 마타벨레랜드 및 미드란드지역의 은데벨레 부족을 대량학살했다. 생존자들은 무가베의 지시를 받은 5여단특수부대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생매장하거나 불태워 죽이는 등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국제인종학살연구협회'(IAGS)는 최소한 2만여 명이 희생된 이 사건을 인종청소라고 정의했으며, 역사학자 스튜아트 도란 박사는 가디언 기고 글에서 이 학살의 주요동기는 집권여당의 1985년 선거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1987년 12월 22일 ZAPU와 Zanu당의 대표들은 통합협정을 체결해 무력대결을 멈추고 Zanu-PF당(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연맹 - 애국 전선 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 – Patriotic Front)으로 합당을 결정했다. 이날은 현재 국경일이지만, 다수 유족은 현재진행형인 정부의 탄압과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전직 무가베 대통령은 이 사건을 "광란의 순간"이었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유족에게 공식 사과는 거부했다. 현 음난가그와 대통령도 대학살 당시 국가안보부 장관이었지만 아직 공개 사과한 적이 없다.

닐손 감독의 <데머크래츠>(2014년)가 잘 보여주듯, 짐바브웨의 첫 민주적 헌법의 탄생은 이런 무가베정권의 인권탄압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개입의지가 그 배경이었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이었던 2008년 3월 치러진 대선,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 ZANU-PF는 1980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참패했고 모건 창기라이 (Morgan Tsvangirai)가 이끌던 야당, 민주변화운동 (MDC)이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대선에서도 야당 후보 창기라이가 47.8%표를 득표했으나 절대 다수표를 얻지 못해 3개월 후 결승전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무가베와 보안 세력이 야당 정치인, 활동가,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살인, 구타, 고문 등 폭력을 행사하자 창기라이는 자진해서 사퇴하고 무가베는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된다. 국제앰네스티 2009년 보고서에 의하면, 3월 선거 이후 최소 180명 사망, 고문과 구타로 9000명 이상 부상, 약 2만 8000명이 자택에서 강제퇴거를 당했다. 여러 현지 소식통은 사망자 수치를 최소 4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울러 640만 투표등록자 명부 가운데 약 백만 명은 이미 사망했거나 이주했고, 63개 선거구 이상에서 현 거주자보다 투표 등록인 수치가 많았다는 사실 등 여러 불법행위가 밝혀지자 국제사회는 이 선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야권 모건 창기라이 후보와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함께 새로운 민주적 헌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몇 년간의 힘든 협상 끝에 대통령의 연임을 2번까지만 허용하는 헌법이 제정되었고 2013년 3월 국민투표에 의해 헌법으로 채택되었다. 

상대 세력에 고문 행사한 전직 대통령... 독재 극복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짐바브웨 정부는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영화 <데머크래츠>의 배급을 불허했고, 카밀라 닐손 감독은 한동안 짐바브웨에 입국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독은 이에 맞서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수년간의 싸움끝에 배급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신작 <프레지던트>가 설사 짐바브웨에서 배급된다고 해도, 신변의 위협으로 현지 홍보 활동은 꿈도 꾸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는 짐바브웨에서 두 편 모두 무료배급을 추진 중이다.

카밀라 닐손 감독은 뉴욕대에서 '관찰자적 다큐멘터리' 제작방식을 활용해 인류학을 연구하는 비주얼인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유엔 기구인 유니세프및 유네스코에서 미디어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프레지던트>에서는 아카데미 최고 다큐상 후보에도 두 번 올랐던 시느 쇠렌슨(Signe Byrge Sørensen)과 함께 작업했다.
  
카밀라 닐손 감독의 신작 <프레지던트>(2021년)은 짐바브웨의 첫 민주적 헌법 제정과정을 기록한 데뷔작 <데머크래츠 Democrats>(2014년)에 이어지는 후속작품이다. 지난 2월 월드프리미어였던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다큐멘터리 스페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 덴마크 영화감독이자 인류학자인 카밀라 닐손 카밀라 닐손 감독의 신작 <프레지던트>(2021년)은 짐바브웨의 첫 민주적 헌법 제정과정을 기록한 데뷔작 <데머크래츠 Democrats>(2014년)에 이어지는 후속작품이다. 지난 2월 월드프리미어였던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다큐멘터리 스페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 Final Cut For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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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달 폐막한 독일 뮌헨 소재의 국제다큐영화제 (독페스트 DOK.FEST)를 통해 <프레지던트>를 접했다. 다음은 영화감독이자 인류학자인 카밀라 닐손과 짐바브웨인들의 민주주의로의 여정에 대해 화상으로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 학술적인 설명이 없어서인지, 다큐멘터리가 아닌 완성도 높은 할리우드 영화를 본 것 같다. 교육적이지만 재미있게 봤다.  

"저는 '관찰자적 다큐멘터리' 방식만 활용한다. 비주얼 인류학을 공부할 때도 이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저는 짐바브웨인이 아니고 외국인이기 때문에 제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걸 기본전제로 삼고 일한다. 만약 제가 누군가 인터뷰를 하고 질문을 던진다 해도, 그 질문엔 제 지식과 가치관이 담겨있어 답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제가 관찰만 하고 보이는 대로 촬영한다면 귀가한 후 더 많은 정보를 기반으로 상황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전하는 이야기의 진실성을 더 확신할 수 있다. 이게 내 작업방식이다. 

'관찰자적 다큐멘터리' 방식에도 극영화에서 흔한 3부 구조의 극작법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영화를 교육적이고 재미있게 보셨다니 기쁘다. 헌법제정 과정에 대해 전형적인 TV다큐 스타일로 만들었다면 아마 따분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에 집중하고 극영화 스토리텔링 방식을 일부 차용한 '관찰자적 다큐멘터리'를 이용하면, 관객이 영화의 드라마성에 더 빠져들 수 있다. 저는 관객이 짐바브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제국주의 역사를 모르더라도, 영화의 주인공이나 드라마에 흡입될 수 있도록 흥미롭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두 작품 모두 극영화 같은 구조로 만들었다." 

- 특별히 짐바브웨의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궁금하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온전한 민주주의국가는 13.8%에 불과하고, 독재국가는 34.1%, 혼재한 하이브리드국가는 21%이다. 손상된 민주주의 국가가 많지 않은가.  
   
"유럽에서 성장하면 대개 초등학교 때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배운다. 한마디로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이고 이젠 다 괜찮다' 정도다. 하지만 제가 인류학과 제국주의 역사를 연구할 때 깨달은 점은 짐바브웨를 비롯해 과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많은 국가는 아직도 과거 식민지배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철수할 때, 백인이 현지인들을 탄압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든 헌법, 사법제도, 국가기구를 그대로 방치했고, 아프리카인들은 이 억압적인 제도를 그대로 인수했다. 그래서 때때로, 백인 독재 대신 흑인 독재가 들어서서 이 강압적인 시스템을 이어나갔는데 짐바브웨가 이런 대표적인 경우다. 영국 식민지하에 로데시아로 불렸던 짐바브웨는 억압적인 사법시스템을 보유했고 무가베는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자국민을 탄압했다.

국제사회가 일부 피식민국에 가한 이런 문제점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저는 현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짐바브웨는 약 이백 년간 영국 식민지였고 독립한 지 불과 41년밖에 되지 않았다. 200년간 지속되었던 억압적인 시스템을 40년 만에 고칠 수는 없다. 제가 사는 덴마크만 해도 헌법이 수백 년간 존재해왔고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꾸준히 민주주의를 개선해왔다. 우리는 과거 유럽 제국주의로 인한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가끔 유럽 여성이 왜 짐바브웨에서 영화작업을 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짐바브웨 정부는 너무 억압적이기 때문에 현지 영화인들은 반정부 성격의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현지 영화인들이나 언론인들이 제 영화와 같은 성격의 작품을 만들면 신변이 아주 위험해질 것이다. 체포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의 탄압도 가능하기에 정부를 향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내 영화작업은 십 년간 알고 지낸 야권 활동가들에 대한 일종의 '국제연대'다. 

우리는 지구라는 한 행성, 한 시스템에서 함께 살고 있다. 짐바브웨나 아프리카대륙에서 문제가 생기면 유럽이나 다른 대륙에도 언젠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흑인 백인 아시아인 등 굳이 카테고리화하지 말고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 또는 시스템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데 이 영화가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카밀라 닐손 감독과 나눈 인터뷰는 다음([짐바브웨를 보다-하])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카밀라닐손, #데머크래츠 , #프레지던트, #짐바브웨, #넬슨차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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