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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릴 때 앞 동네 살던 친구 이야기이다.

친구는 어느 날,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서 스팩타클한 음악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딱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외제 차에서 쿵쿵 신나는 음악 소리가 신나게 들렸단다. 그는 '외제 차라서 음악 소리가 더 좋나' 생각하면서 옛날 첫차를 갖게 된 때를 떠올리게 된다.

친구는 군대를 제대한 후 변변한 직장도 못 잡고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일하는 분이 낡고 오래된 작은 승합차를 단돈 30만 원에 가져가라고 했단다. 그 시절에 30만 원이 아주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당장 출퇴근 문제도 있었고,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들뜬 기분이 들어 일당이 나오면 주겠다고 하고 그는 냉큼 차를 몰고 왔다. 생애 첫 애마(차)가 생겼다.

고급진 차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그 차 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니, 세상사 힘든 모든 일이 음악과 함께 보들보들해졌단다.

친구는 그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멋진 외제 차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 어떤 차보다도 30만 원짜리 트럭이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다. 첫차와의 만남은 8년을 지속하고 막을 내렸다. 그 차에서 흥을 배우고 노곤함을 풀었다고 한다.

친구는 외제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그때 그 시절 음악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듣고 어깨춤을 추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그때부터였나보다. 친구는 음악이 나오면 어깨춤이 덩실거리고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올랐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주저했다고 한다. '여자들만 있는 에어로빅장에 어떻게 가나?'라는 시선에 자신의 속내를 숨긴 것이다. 스스로도 '사내 녀석이 뭘 여자 틈에 껴서 하려고...'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는 주말마다 남자다운 거친 운동을 하면서도 이상야릇한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5형제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살가운 역할을 하면서 살아서 그런지, 내면에는 춤에 대한 마음이 자꾸 꿈틀거렸다.

친구는 혼자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해볼까?'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볼까?'


'금세 50살이 될 텐데 하고 싶은 것하고 살아야지' 생각했다가도 또다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주저했다. 

'아니야 해보자, 뭐 있겠어. 그래 하자 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에서 운영하는 스포츠클럽 프로그램을 하나 찾았다. 퇴근 시간과도 맞고 금액도 적당해서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본 친구. 그는 친절한 담당자에게 '남자들은 없고, 여태 단 한 명의 남자도 다이어트 댄스를 한 적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 그 처음이 나면 어때, 내가 처음이 되어보는 거야' 하면서 친구는 접수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춤을 춘다.

친구를 바라보는 함께 춤을 추는 여자 회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남자가 들어오니 운동복도 편안하게 입고 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춤추는 여자들을 훔쳐보러온 남자 취급도 당했단다. '여자들 틈에서 혼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렸다. 회원들 간의 내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2주 안에 그만둔다, 한 달도 못 다닌다를 놓고 내기가 오가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는 그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혼자서 내면을 다독이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서 살짝살짝 따라 하면서 여자 회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철 심장을 만들고 있단다. 너무도 행복함을 느끼고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이 행복한데 왜 내가 남의 눈치를 보면서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 산단 말인가. 그렇게 시작한 친구의 다이어트 댄스는 2년을 넘어가고 있다.

친구는 오늘도 춤을 추러 간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하였는데, 좌우 남성회원이 늘었다. 여성회원들틈에서 댄스실력을 뽑내고 있다.
▲ 다이어트 댄스 남자회원들 처음에는 혼자 시작하였는데, 좌우 남성회원이 늘었다. 여성회원들틈에서 댄스실력을 뽑내고 있다.
ⓒ 서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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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친구에게 힘이 되는 말이 아닌 은근 비웃는 투로 말한다.

"너 오늘 춤추러 안 가냐?"
"춤 아니라고 다이어트 댄스라고."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춤추러 간다'고 말한다. 속으로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게 사실이다.

"오래 다니네! 어떻게 그 안에서 버틴다냐, 너 여태 다니냐" 이렇게 말하면서 친구가 춤을 추는 것에 놀라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의 취미 생활을 인정해 준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친구는 이제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그 수업만을 기다리게 된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영화 <짝패>의 대사가 생각난다.

"센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센 거더라."

그 친구는 점점 센 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휴강 시간이 길어졌지만, 그 자리를 다시 찾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단단한 녀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그 친구와 같은 남자들이 있었나 보다. 처음 혼자서 여자 회원 틈에 껴서 춤을 출 때 부끄러웠는데, 이제 좌우 남자 회원이 둘이나 늘었다고 한다. 그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다가 이제야 용기를 내어 찾아와서 함께 힘을 모아 구령을 외친다.

친구는 오늘도 춤을 추러 간다. 그는 오래가는 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편견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편견을 버릴 수 있게 작은 시작을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는 안되는 게 많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편견을 배우고 살았다.

"여자아이가 왜 그래~"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은연중에 그런 말이 나오고 만다. "남자가 왜 이렇게 많이 울어" 왜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할까?

편견은 생각의 차이이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바꾸면 된다.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 우리의 머릿속에 주입식으로 박혀있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

춤추러 간 친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편견을 부순 그의 용기가 부럽다. 그 시간을 행복해하는 친구의 미소가 따뜻하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라갑니다.


태그:#편견을 버려라, #다이어트 댄스, #오래가는 놈, #친구의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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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아서 아이들과 그림책 속에서 살다가 지금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는 영화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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