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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에도 변함없이 옆지기는 자가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의 출퇴근 시간은 매년 길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그만큼 우리 동네 수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수지는 신도시지만 난개발된 곳이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게다가 손바닥만 한 땅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형국이라 인구 유입이 끊이지 않는 듯하다. 

새벽 출근으로 맞이하는 미라클 모닝
 
고덕천을 따라 한강의 미러클 모닝을 맞는 옆지기
 고덕천을 따라 한강의 미러클 모닝을 맞는 옆지기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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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는 나름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약하고자 자기 방식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는 사계절 내내 아침 5시 20분쯤 집을 나선다. 도로가 텅텅 비어있어 40분 정도면 서울 근무지에 도착한다. 8시 업무시작 전, 2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갖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사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후, 구내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여유롭게 보냈다. 하지만 헬스장이 폐쇄된 지금, 그는 고덕천을 따라 한강까지 왕복 1시간가량 걷는다. 7~8km 걸으면 만보 가까이 된다.

고덕천에서 수영하는 물오리, 갈대, 두둥실 떠 있는 구름, 파란 하늘... 도심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특별한 시간이다. 서울시 환경 미화 사업으로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머지 1시간은 책을 읽거나 영어 공부를 한다. 교통 체증을 피해 출근하다 보니, 저절로 미라클 모닝이다.

반면 퇴근은 출근 때처럼 시간 단축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도로가 텅텅 빌 때를 기다려 한밤중에 집에 올 수는 없지 않은가. 퇴근하고 바로 5시에 출발하면 빨라야 6시 30분, 제일 상황이 나쁠 때는 7시를 넘겨 집에 도착한다. 

어떤 날은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구내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주변을 산책한다. 도로 상황이 조금 나아지는 6시 30분쯤 출발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1시간 정도면 집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건 출퇴근 길

그런데 이런 일상적 출퇴근에 빨간 불이 확! 켜지는 일이 일어났다. 얼마 전의 일이다. 옆지기는 퇴근길에 사고가 났다. 간신히 사고 수습을 하고 전화 연결이 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휴! 죽을 뻔했다"

평소와는 달리 격양된 목소리다. 고속도로에서 3중 충돌이었는데, 다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일단은 안도했다. 알고 보니, 그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고 2시간 후, 집에 돌아온 그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귀환한 듯 얼빠진 얼굴이다.

어떤 상황이었냐 하면, 고속도로 갈림길에서 미처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한 8.5톤 트럭이 급하게 차선 변경을 하려다 그의 차량 왼쪽 꼬리를 박았다. 그 충격에 그의 차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3개의 차선을 가로질러 빙그르르 180도 회전했다. 

옆지기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서 또 다른 트럭이 달려오고 있다. '부딪히면 안되는데' 생각한 순간, 쾅! 그의 앞범퍼를 들이받고 말았다. 다행히 사고를 인지한 운전자가 속도를 줄였으니 망정이지...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만약 그의 차가 조금만 더 회전해서 차량이 도로와 십자 모양으로 있었다면... 트럭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옆지기는 맨몸, 맨정신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옆지기의 운전 경력은 20년 이상, 접촉 사고 한번 없는 모범 운전자다. 이번에도 규정 차선과 속도를 준수하며 평화롭게 운전하고 있었는데. 타인의 실수로 그가 죽을 뻔 했던 것이다.

운전은 나만 잘한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살 떨리게 간접 경험한 사건이었다. 서울로의 출퇴근이 단지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삐끗하는 순간에 자동차가 무기가 되어 생명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경악스러웠다. 그 교통 사고로 나는 처음으로 옆지기의 재택근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재택근무가 출퇴근 지옥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유연 근무제를 도입, 확대한 국내 대기업의 56.7%가 업무 효율 및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단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트랜스모니터의 2020년 조사에 의하면,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의 84.4%가 만족스러웠다는 답변이었다. 그들이 재택근무에 만족하는 이유 중 출퇴근 시간의 절약이 78.3%로 가장 높았다. 이를 볼 때, 코로나가 잠잠해지더라도 유연 근무제가 장기적으로 지속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재택 근무가 확산된다면, 그에 따라 여러가지 부수효과도 일어날 듯 싶다. 굳이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 수도권에 거주할 이유가 없어진다. 인구의 지방 분산도 기대해볼 만하다.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 뿐만 아니라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생명의 위험성도 감소된다. 차량 통행량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대기 오염도도 낮아질 것이다.

여기서 잠깐, 재택근무로 더 힘들어질 사람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실제로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들이 남성보다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도 더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다.

재택근무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지만, 이로 인해 어느 누군가의 삶이 더 고달파지면 되겠는가. 여남 평등을 향한 사회적 인식과 시스템, 제도의 폭넓은 개선을 동반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유연근무제의 확대가 출퇴근 지옥의 대안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출퇴근 이야기, #자동차 사고,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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