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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일은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을 패배자로 낙인 찍고 자기만의 감옥에 가둘 것인지, 현재를 빛낼 동력으로 바꾸어 낼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에디트 에바 에거는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안진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1)라는 책에서 이 '선택'을 강조한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마흔이 넘어 심리치료사가 되었고 93세인 지금도 현역 임상 심리치료사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위스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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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는 세 개의 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에디트의 유년 시절과 열여섯에 아우슈비츠에서 경험한 처절한 생존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신을 치유로 이끌었던 삶, 마지막으로 치료사가 되어 사람들을 도우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엮여 있다.

거기엔 치유를 향해 끝없이 선택했던 저자의 경험이 담겨 있다. 충격과 아픔의 기록은 공감과 치유의 에세이로, 그리고 각자의 내면으로 이끄는 안내서로 그 빛을 바꾸어 간다. 에디트 에바 에거의 책은 마음 감옥에서 벗어날 열쇠를 찾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발레리나를 꿈꾸었던 열여섯 살 유대인 소녀 에디트는 전쟁으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엄마를 죽인 적군 요제프 맹겔레 박사 앞에서 춤을 추어야 했고 지독한 굶주림속에서 매일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겨준 말이 희망의 빛처럼 남아 있었다. "이것만 기억해.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p.72) 마그다 언니와 에디트는 서로를 지켜주는 길잡이별이 되어주면서, 고통과 두려움을 유머로 바꾸어 내면서 살아남는다. 삶에 대한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으며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녀를 생존하게 했다.  

소녀는 시체 더미가 쌓인 수용소에서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생존자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주하는 것은 상실뿐이다. 유년기와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잃었고,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왜 내가 살아남았을까?'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과거를 부정하고 고통을 숨긴 채 미국으로 이민해 새 삶을 일구지만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상실감은 지속되었고 일상 곳곳에서 그녀를 위협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용기 내어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불만스럽든 지루하든 제한적이든 고통스럽든 억압적이든 간에, 우리는 항상 어떻게 대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p.280  
 
인생의 '매 순간은 선택'이며, 자신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인생의 행로를 바꾼다. 심리 치료를 통해 감정을 들여다보고 수용하면서 변화를 위한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과거의 기억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음을 배운다. 그리고 왜 살아남았는지 묻기를 멈추고, 희생자 되기를 그만둔다. 오십의 나이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상처 받은 이들을 도우며 그녀는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나는 결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구원할 수 있는 삶은 있다. 바로 나의 삶이다. 내가 바로 지금 이 삶, 이 귀중한 순간이다." p.410
 
책에는 심리치료사로서 그녀가 만난 내담자들이 각자의 문제를 극복해갔던 과정 또한 담겨 있다. 부모와 자식, 결혼과 연인 등 관계에서 비롯되는 결핍과 불균형의 문제부터 어린 시절의 상처나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 성취나 인정에 매달리는 왜곡된 자아상 등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경험하는 심리 문제가 다루어진다.

내게도 실패에 사로잡혀 우울증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 하나의 실패는 삶 전체를 실패가 쌓인 거대한 무덤처럼 보이게 했다. 그때 치유 글쓰기 수업을 통해 숨어 있던 감정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회피했던 감정을 수용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원망하던 마음은 사그러 들었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러한 상태를 에디트는 '자유의 춤'이라고 부른다. 그 첫 단계는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p417)으로, 감정을 억압하거나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길 그만두고, 자신의 감정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인간관계를 결정짓는 역학 관계 속에서 자신이 하는 역할을 인정하고 그 역할에 책임지는 법을 배울 수 있다."(p420)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을 수용하고 진정한 자신이 되는 자유에 다가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치유의 과정과 마음 감옥에서 탈출하는 선택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지난한 시간과 노력,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터의 생존자로서 삶 전체를 치유를 위한 노력과 선택에 몰두했던 이의 솔직한 고백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건넨다. 임상심리치료사인 저자가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치유로 나아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치유의 길로 향하는 마중물이 되어 준다.

에디트 에바 에거는 자신을 찾은 내담자들의 흔한 진단명을 '굶주림'이라고 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정, 관심, 애정'에 늘 굶주려 있다. 이 굶주림이 마음에 감옥을 짓는다. 수용소라 이름 붙지 않았을 뿐, 수용소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삶은 여전히 존재한다.

에디트는 생존의 문제가 사라지면 '하지만'의 문제가 따라온다고 했다. "우리에겐 먹을 빵이 있다. '그래, 하지만 무일푼이지.' (...) 너는 살아남았어. '그래, 하지만 우리 엄마는 죽었지.'"(p.151) '하지만'의 문제는 끝없이 우리 삶에 등장한다.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의 감옥에 갇힐지, 거기서 벗어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고.

상처가 없는 이도 없고, 자신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이도 없을 것이다. 삶이란 상처 없이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강이니까. 그러니 상처 받기를 거부하기보단 상처를 들여다보는데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상처가 언제든 다시 욱신거릴 수 있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언젠가 다시 내 안의 감옥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 책을 펼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내면의 빛을 보는 법에 대하여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은이), 안진희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1)


태그:#마음감옥에서탈출했습니다, #치유라는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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