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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정신(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17일 <조선일보> 인터뷰 중)

그야말로 '단독'의 홍수였다. 지난 18일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제41주년을 맞아 윤 전 총장이 내놓은 메시지를 주요 일간지 및 경제지 여러 곳이 앞다퉈 보도했다. '무늬'만 바꾼 대동소이한 메시지가 '단독'이란 이름 하에 쏟아졌다.

<조선일보> 외에도 16일 <머니투데이>가 <윤석열 "5·18은 독재에 대한 강력한 거부 명령...현재도 진행중">린 단독 기사를 냈고, 같은 날 <국민일보>도 <윤석열 "5·18정신은 어떤 형태의 독재든 저항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여권에서 비판이 나오자 <시사저널>은 18일 <윤석열 측근, 與 비판에 "검찰총장 때도 5·18 정신 강조... 진정성 확인">이란 기사에서 측근의 입을 빌려 윤 전 총장 비호에 나섰다. 윤석열 전 총장의 입에 주목한 '단독'들은 그렇게 지난 한 주간 포털 뉴스 메인을 뒤덮었다.

반성이 먼저

'특정 진영'을 운운한 윤 전 총장의 공식 메시지 내용을 '팩트' 체크하는 일은 무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보다는 대선출마를 공식화하기도 전에 그가 광주 5.18과 인권 그리고 헌법 정신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지를 되짚는 일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윤 전 총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대선 도전이 점쳐지는 전직 검찰총장이다. 그런 본인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면, 최소한 광주 영령들과 유족들 앞에 성의 있는 사과를 내놓는 게 먼저였다.

지난 1995년 윤 총장의 초임 검사 시절 서울중앙지검이 내놓았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가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는지, 유족 및 피해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윤석열 띄우기'에 혈안이 된 보수‧경제지들 몇 곳에 내놓은 윤 전 총장의 메시지에 일말의 설득력이라도 부여됐을 터다.

윤 전 총장에게 그런 반성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이미 예견됐던 바다. 윤 전 총장의 알맹이 없는 5.18 메시지가 주요하게 보도되자 도리어 지난해 '광주 5.18 어머니'들의 호소가 회자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광주 5.18 단체 회원들 및 고령의 어머니들은 지난해 2월 20일 광주고검·지검을 방문한 당시 윤석열 총장에게 면담을 시도하며 실랑이를 벌였으나 묵살당했다. <연합뉴스>는 <윤석열 차량 막은 5·18 어머니들 "오월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기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윤 전 총장의) 이동 과정에서 옛 전남도청 지킴이 활동을 했던 오월 어머니 5명이 윤 총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윤석열 총장! 오월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전달하려 하면서 한 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날 현장을 찾은 오월 어머니는)"검찰 수장이자 올바른 법 집행을 강조하는 윤 총장에게 5·18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뭘 나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질문을 담은 종이라도 전달하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못하게 했다. 40년간 억울함을 견딘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광주 5·18 41주년에 "특정 진영의 전유물" 운운한 윤 전 총장에게 정말,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근현대사 수업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41년 동안 누가 광주 어머니들의 호소를 묵살해왔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기념식에 울려 퍼질 수 있게 됐는지, 또 누가 광주 정신을 지키기 위해 연대해왔는지를 윤 총장 스스로가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출현했으며, 또 검찰이 역사적으로 광주 5.18과 관련해 어떤 '부역'을 자행해 왔는지를 자성하는 것은 기본일 테고.
 
14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서적이 판매되고 있다. 2021.4.14
 14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서적이 판매되고 있다. 2021.4.1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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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비판적 시각

윤 전 총장과 관련해 언론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비판적 시각'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특히 지난 한 주간은 그의 입을 쳐다보기 바빴다. 검증은 고사하고 유력 대선주자 띄우기에 '올인'한 언론사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광주 5.18 메시지에 뒤이어 '윤석열 열공' 중 보도가 '윤석열 띄우기'의 정점을 찍었다. 앞서 '특정 진영'을 언급한 윤 전 총장의 진정성(?)이 먹힌 탓일까. '윤석열의 열공'을 환영(?)한 언론사 또한 진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찾아 반도체 연구·개발 현장을 둘러봤다.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후 노동, 외교·안보, 경제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정책 현안을 공부 중인 윤 전 총장이 이번엔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반도체 시설을 방문해 현장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조선일보, 5월 20일 <윤석열, 반도체 열공> 기사 중)

주요 일간지는 물론 경제지 및 통신사 그리고 종편까지. 심지어 <조선일보>는 1보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국립' 서울대가 왜 전직 검찰총장에게 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부여했는지 묻는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의 언론이 '열공'이라 치장해주기 바빴다. 아무리 '윤석열 띄우기'가 언론사들의 '클릭 장사'의 일환이라고 해도 그런 과외에 서울대가 동원되고 일조했다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9수 만에 사법시험을 통과한 윤 전 총장을 '대기만성'이라 포장하기 바쁜 일부 언론들이 그런 비판에 동참할 리 만무해 보인다. 올 초 '이명박=윤석열'을 등치시키는 '윤석열 국밥' 보도가 이를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러는 사이, 전직 검찰총장의 대선 행보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원론적인 비판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또 윤 전 총장 장모와 아내 관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 역시 언론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중이다. 윤 전 총장 재임 당시 문제시 됐던 '선택적 기소'에 버금가는 '선택적 보도'가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열공' 보도의 해악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측근의 입을 통해서든, '과외 선생'의 입을 통해서든 윤 전 총장이 여타 이외의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윤석열 전 총장의 '열공'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와 관련, 20일 <한겨레>는 관련 기사에서 "그동안 윤 전 총장에 대해선, 검찰만 알 뿐이지 외교·안보·경제·복지·교육·노동 및 다른 분야에 대해선 배경 지식과 내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열공'의 배경을 설명했다.

모든 언론이 알면서도 쉬쉬하는 일말의 팩트일 것이다. 그런 언론들이 전직 검찰총장의 '대선 열공'까지 미화하고 독려하며 지지율을 키워준 것 또한 일말의 팩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복기해 보자. 윤 전 총장에 기대는 진영 혹은 지지자들이 당선시킨 전직 대통령들의 화려한 과거를.

'열공'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치인으로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박근혜씨는 '비선실세'에 의존했다. 서울시장까지 역임한 경제인 출신 이명박씨는 나라 곳간을 제 것처럼 빼먹으려 혈안이었다. 과거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고 했던 광주 5.18의 원흉들은 '열공'은커녕 국민들을 총칼로 제압해 버렸다. 특히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만 놓고 봐도,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한없이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반면 '윤석열 열공'이란 작금의 보도 행태는 도가 지나치다는 표현을 넘어 검증 자체를 게을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그 해악의 정도가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윤석열 용비어천가'를 넘어 언론 스스로가 '대권 창출'에 이미 뛰어든 형국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태그:#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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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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