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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태 시인의 시집 <슬쩍>
▲ 슬쩍 오인태 시인의 시집 <슬쩍>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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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달에 읽기 좋은 시집 '슬쩍'

오인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시집 <아버지의 집>과 <별을 의심하다>에 실린 시와 달리 5월에 출판된 시집 <슬쩍>에 실린 시들은 대개가 매우 짧다. 심지어 한 줄 시도 있다. 반가운 마음에 지난 20일 오 시인에게 직접 전화해 이번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시집 출판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의 시들이 대개 짧더라고요. 나름대로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이번 시집은 요즈음 시가 산문화 되는 것을 반성하면서 시의 본질인 서정성을 회복자는 의미가 담겨있는 시집이지요. 시는 내가 바라보는 세계(대상)과 자아가 합일되는 그 지점에서 발생하지요. 세계와 자아의 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서정성이 높습니다. 산문은 대상과 나를 멀찍이 떼어놓고 비교를 하고 분석을 합니다. 그리고 설명을 합니다. 산문의 시간은 흐르지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야기가 발생합니다. 그 이야기를 쓰는 게 산문이지요. 그러나 시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습니다. 흘러가는 이야기를 정지된 공간 속에 정서적으로 표현하는 게 시이지요. 그러니까 시는 현재화된 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요즈음의 시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김소월 시나 한용운 선생의 시나 옛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면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 있는 시가 많은데 요즈음의 시는 자꾸 뭘 가르치려 들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은 원래 시적이었습니다. 태생이 그래요. 아이들을 보면 알지요. 저학년 아이들이 동무들과 모여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시예요.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시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5학년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산문화됩니다. 1, 2학년 아이들에게 시를 써봐라 하면 정말로 그들은 시를 써요. 5, 6학년 아이들은 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교육이라는 게 시적인 아이들을 산문화시키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보던 것을 비교하고 분석하게 만드는 것이교육이지요."

- 마지막으로 시란?

"시는 곧 노래지요."
 
회사에 단 한 그루 있는 명자꽃
▲ 명자꽃 회사에 단 한 그루 있는 명자꽃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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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탱자나무 가시가 그 많은 탱자를 상처 하나 내지 않고 품고 있다니'
- 시집 <슬쩍> 15페이지 '품' 전문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 노란 한 송이
네 여린 몸을
움찔움찔 피해갔을
- 시집 <슬쩍> 23페이지 '발자국 꽃' 전문

오인태 시인의 '발자국 꽃'은 "움찔움찔 피해갔을"로 끝을 맺습니다. 뭔가 뒷말이 있을 것 같은데 "갔을…" 하고 끝이지요. 있는 그대로도 좋지만 뭔가 말하려다 우물우물 삼키고만 그 속엣말이 궁금합니다. 온갖 상상을 다 하다가 "갔을…" 뒤를 이어 독자인 내가 마무리를 할 때도 있습니다. 오인태 시인의 시를 감상하는 묘미지요.

이런 식으로 독자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시가 제법 많습니다. 시인과 독자 간에 소통은 이렇게 은연중에 이루어집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오월입니다. 보도블록 틈새의 노란 민들레를 밟지 않고 피해 갔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보았다면 좀 과한가요? 시인의 '발자국 꽃' 시를 읽고 미소를 짓는다면 그대는 부처님의 염화시중에 미소를 짓는 '가섭'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때로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술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술잔을 바라보다가, 불빛 환한 포구에 들어오는 배를 바라보다가, 술 따라주는 사람 얼굴도 바라보다가, 그리고 까닭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술 몇 잔에 취하면 시인 앞에서 숨죽여 울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해해줄 것 같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이해해줄 것 같으니까요.

미조포구, 조선소, 치자꽃 향기, 비릿한 바람… 그리움, 다 그리움이다.

시인 몰래, 슬쩍 미조포구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슬쩍

오인태 (지은이), 서정시학(2021)


태그:#오인태, #슬쩍, #미조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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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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