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월은 참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마치 여왕의 귀환을 환영하듯 설레는 계절이 5월이다. 성스러운 왕관에 박힌 금은보석, 다시 찾아온 계절은 마침내 신록으로 피어났다. 여왕의 대관식 같은 아침이슬 영롱함이 청신한 얼굴로 마주한 오월이 우리 곁에 있다. 이 계절에 숲이 내뱉는 자연의 숨소리, 산새들 노래하는 천상의 합창을 듣지 않고 어느 누가 오월의 싱그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사계절 늘 푸르른 이색적인 경관을 선사하는 완도수목원. 2021년 방문해야 할 5월의 명품숲으로 전남도가 국내 유일 난대 상록활엽수림으로 선정했다. 완도수목원은 전남도가 운영하는 공립수목원이다. 1991년 개원한 국내 최초 난대수목원으로 지난해 난대숲의 생태적 가치가 인정돼 국립난대수목원 대상지로 선정됐다. 1800여억원의 국비가 투입될 예정이란다.

국토 최서남단에 위치하고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간직하고 있는 국내 유일 최대의 난대림 자생지여서 더 의미가 깊다. 계절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숲의 아우성, 다리품 팔아 하루 종일 이곳을 거닐면 대지의 여신 오월이 상왕의 숲을 깨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완도를 대표하는 나무가 있다면?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완도수목원을 대표하는 수종이 많다. 완도 호랑가시나무와 붉가시나무, 황칠나무, 그리고 동백나무, 모감주나무 등이다. 전국 난대림 면적의 35%로 단일지역 가장 넓은 면적에 가장 많은 난대수종을 보유하고 있으니 대표 나무가 많을 수밖에. 지금까지 밝혀진 자생종이 대략 77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 황칠나무와 둥근 잎 호랑가시로 알려진 완도호랑가시나무가 우리에게 친숙하다.

우리나라 유력일간지 편집국장을 역임한 임준수님과 10년 전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함께 추자도에 다닌 적이 있다. 그는 대단한 여행광이었다. 세계를 주름잡으며 여행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추자도에 반해 섬에 월세를 얻어 경기도 고양시에서 매월 오가면서 전국을 유랑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던 그였다.

여행지에서 만난 선생과 나는 여러 해 교우하면서 그가 천리포수목원 고 민병갈 선생과 친밀한 사이임을 알게 됐다. 민병갈 선생 사후,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들의 증언과 그가 옆에서 지켜보았던 밀러의 밀착 취재기를 엮어 민병갈의 일대기를 책으로 내놓았는데, 그때 책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었다. 그 책속에서 나는 천리포수목원에 대해서 알게 됐고, 밀러 박사가 한국에 귀화해 수목원을 어떻게 일궜는지, 또 나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알게 됐다. 임선생님의 호의로 친구들과 수목원에 초대되어 민병갈 선생 살아생전 생활했던 거처에서 하룻밤을 보낸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완도호랑가시'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

민병갈 선생과 그의 수목원은 이곳 완도와 인연이 깊다. 그가 완도에서 발견한 호랑가시나무가 세계식물학회의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수목원은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에서 수여한 명예훈장과 미국호랑가시학회가 수여한 호랑가시수목원 인증패를 받았다.

미국호랑가시학회는 세계식물학회에서도 제일 인정하는 권위 있는 집단인데, 그 이유로 국내최초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이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가 그의 본명이다. 그는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목을 식재하여 식물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초기 국내 자생종을 중심으로 식재하다가 1973년 이후 외국에서 다양한 묘목과 종자를 수집했다고 한다.

특히, 1978년부터 다국간 종자교환 사업인 인덱스 세미넘(Index Seminum)에 참여하여 세계 각국의 저명한 식물원과 수목원, 자연사박물관, 식물재배농장, 식물애호가, 식물 관련 대학들과 잉여종자들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외국 수종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미기록 품종이었던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한 사람이 되었다.

1978년 남해안 답사여행에서 감탕나무(Ilex)와 호랑가시나무의 자연교잡(交雜)으로 생긴 신종 식물을 발견하였는데, 이 식물이 완도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임을 검증했다. 그리고 국제규약에 따라 발견자와 서식지 이름을 넣은 학명 `Ilex x Wandoensis C. F. Miller'을 국제학회에 등록하고 한국이름을 `완도호랑가시'로 정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으로 조성된 천리포 수목원이 보유한 식물 품종의 다양성이 전 세계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국제수목학회(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는 2000년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Arboritum Distinguished for Merit)'으로 지정했고, 미국 호랑가시학회(HSA, Holly Society of America)는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itum)'으로 선정을 했던 것이다.

금방 찬물로 세수한 청신한 완도의 오월에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그 외 호랑가시나무로는 천연기념물 제122호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군락과 광주기념물 제17호 양림동 오웬선교사 저택의 호랑가시나무 언덕이 관광자원화되었다.

완도에 자생 차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은 내가 완도수목원을 찾은 건 "차나무가 하나 있다"는 제보 때문이었다. 초의선사 탄생일에 맞춰 완도에 그럴싸한 다원이 없다는 게 무척 궁금하던 터였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두 분의 훌륭한 다승이 완도 출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다 장보고의 차(茶) 유통경로를 따라 지난 겨울 지리산 일대 사찰 탐방길에 나섰는데, 장보고의 역사가 서린 이 지역에 제대로 갖춰진 다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움이자 의구심이 들었다.

요즘 목포대학원에는 차문화콘덴츠에 관심 많은 학도들이 조선의 차문화와 남도의 차문화 콘텐츠 연구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을 만나서 장흥 보림사의 청태전과 구례, 하동까지 차의 성지를 답사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알게된 것이 장보고가 청자를 유통하던 것은 우리의 차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월은 차의 싱그러운 기운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 때이기도 하다.  사찰이나 다원은 이 시기에 맞춰 찻잎을 따서 일년 농사를 갈무리 한다. 그나마 완도수목원 동백나무 단지로 난 길옆으로 차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녹차가 아닌 '차나무'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오는데, 구겨진 자존심이 회복되는 느낌이었지만 그 나무 하나를 보고 있는 동안 내 마음이 서글퍼졌다.   <계속>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사진> 완도수목원의 양치류 식물.  이곳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자생종이 대략 77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정지승 다큐사진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지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완도신문은 1990년 9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참 언론을 갈망하는 군민들의 뜻을 모아 창간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사훈을 창간정신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길을 걷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