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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기 고위 성직자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사건 중의 하나는 <지오그라피아 Geographia>(지리학)의 출현이었다. 2세기의 프톨레미Ptolemy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지은 것이다. 일천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피렌체에 나타난 것은 1390년대 말이었다. 하지만 프톨레미의 세계지도가 담긴 <지오그라피아>가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후반에 들어서였다. 그때부터 16세기 초까지 프톨레미 세계지도는 거의 절대적인 권위로 유럽인의 세계관을 지배했다.

오늘날 지도의 역사나 지리학을 주제로 하는 저서들은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아>와 그의 세계지도를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조선초 1402년에 나온 <강리도>를 그런 책에서 다루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으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변화가 생겼다. 강리도를 조명하고 찬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난번에 언급했던 미국의 <지리학 입문 Introduction to Geography>은 프톨레미의 세계도와 강리도를 대조하면서 그 첫 장을 열고, 강리도가 당대 가장 위대한 지도였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대학교 교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이 책은 강리도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첫 장에서 다음 세 개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1482년 인쇄본
▲ 프톨레미 세계도 1482년 인쇄본
ⓒ 공개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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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미 지리영역
▲ 인공위성 지도 프톨레미 지리영역
ⓒ Introduction to Ge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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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를 당대 가장 위대한 지도로 소개
▲ 강리도 강리도를 당대 가장 위대한 지도로 소개
ⓒ Introduction to Ge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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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자료로 만든 세계지도(두 번째 그림)를 기준으로 프톨레미 세계도와 강리도의 지리영역을 대조해 보자. 두 지도가 기본적으로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포괄하고 있지만 강리도의 지리영역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강리도는 아프리카 전체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점이 더 있다. 프톨레미 세계도는 아프리카의 남쪽이 동쪽으로 향하여 아시아와 이어짐으로써 인도양이 뭍에 갇힌 내해로 그린 반면, 강리도는 개방된 인도양을 그리고 있다. 프톨레미의 아프리카 남단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

1402년 시점에서 강리도처럼 넓은 지리공간을 사실적으로 그린 지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 책은 강리도를 당대 가장 위대한 지도라고 규정한다. 물론 당시 유럽이나 이슬람권에 프톨레미 세계도가 아닌 다른 지도들이 존재했지만 모두 강리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서양 학자들은 잘 인지하고 있으므로 강리도의 독보적인 가치를 쉽게 포착하고 자신 있게 평가할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국내 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점에 어둡기 때문에 강리도를 눈앞에 두고도 오랫동안 그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리학 입문 Introduction to Geography>은 1492년 대서양 항해에 나섰던 콜럼버스가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당시 가장 좋은 지도는 조선 왕궁에 걸려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한국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레드야드Ledyard(콜럼비아대학 석좌 교수)는 콜럼버스가 당시에 보았던 지도들을 지금 강리도와 대조해 본다면 누구라도 강리도가 얼마나 우수한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콜럼버스에게 길잡이가 된 지도 

그렇다면 과연 콜럼버스는 어떤 지도를 보면서 항해를 계획했을까? 여러 지도를 보았겠지만 가장 크게 의존했던 것은 역시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아>였고 그 세계도였다 한다. 프톨레미는 지구 둘레의 크기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잡았고 지중해와 아시아 대륙의 크기를 과장했다.

때문에 콜럼버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항해한다면 어렵지 않게 아시아의 동단에 닿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프톨레미의 오류가 큰 일을 낸 셈이다. 물론 프톨레미는 지구를 구체로 인식했고 콜럼버스를 포함한 당시의 지식층에서도 대체로 지구를 구체로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구체설을 믿지 않았고, 콜럼버스만 달랐다는 이야기는 허구라는 뜻이다.

15~16세기 프톨레미 유형의 세계도는 제작 원리와 구도에 있어서는 2세기의 <지오그라피아>에 의존했지만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여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갔다. 콜럼버스 항해 직전에 프톨레미 유형의 역사적인 지도가 하나 출현했다. 먼저 지도 실물을 보자. 
 
Martellus 세계지도 1491년 경
▲ 마르텔루스 지도 Martellus 세계지도 1491년 경
ⓒ 공개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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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1491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톨레미 유형의 지도로 독일인 제작자 Martellus의 이름을 따서 마르텔루스 세계도라 불린다. 현재 미국의 예일대학에 보존되어 있다. 콜럼버스가 이 지도를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라는 데에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이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자료는
Chet Van Duzer의 논문 'Henricus Martellus's World Map at Yale (c. 1491)이다).

*참고 링크 :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보도 예일뉴스의 보도 

심지어 콜럼버스 형제(동생은 지도 제작 명인이었고 콜럼버스도 지도 제작 경력이 있다)가 이 지도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지도는 괴상해 보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다.

첫째, 최초로 아프리카 남단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일천 수백 년 내려온 프톨레미의 세계상을 깼다는 점이다. 그 점을 강조라도 하듯이, 아프리카 남단이 프레임을 뚫었다. 이는 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 디아스 Dias가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한 정보를 반영한 것이다. 이 지도로 인도양은 비로소 개방되었고 대서양과 통하게 되었다. 헌데 얼른 보아도 아프리카가 거대하고 더구나 남단 지역이 동쪽으로 뻗어있다.

둘째, 이 지도는 사상 최초로 유럽에서 일본을 그린 지도이다. 지도의 우 상단에 계란 모양의 상당히 큰 섬이 바로 일본이다. 당시 콜럼버스의 목표는 일본과 중국을 찾는 것이었다. 그가 탐독했던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에 일본과 중국이 금과 향료가 넘치는 나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항해가의 입장에서 이 지도를 본다면, 우선 아프리카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그 남단을 돌아 일본을 찾아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할 것이다. 반면에 이 지도의 좌우를 둥글게 말아 본다면 일본은 이베리아 반도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도로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목적을 위해 콜럼버스 형제가 의도적으로 아프리카 남부를 실제보다 훨씬 아래쪽으로 내려 지도를 제작했다는 유력한 주장도 있다(아서 데이비스 교수가 영국 왕립지리학회 잡지에 기고한 논문 'Behaim, Martellus and Columbus' 참고, Geographical Journal vol 143, No.3(Nov.,1977), pp 451-459).

이 지도의 세계상은 거의 그대로 서양 최초의 지구의에 반영되었다. 현재 독일 뉘른베르그 박물관에 소장된 베하임지구의Behaim Globe가 그것이다. 1490-1492년 사이에 독일인 베하임에 의해 제작된 이 지구의는 독일어로 '지구사과Erdapfel'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래 이미지에서 일본(좌측 중앙의 큰 섬)과 이베리아 반도(우상단)의 상대적 위치와 거리를 볼 수 있다.
 
왼쪽 중앙의 큰 섬이 일본
▲ 베하임 지구의 왼쪽 중앙의 큰 섬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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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배를 타고 출항하면 일본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의 섬에 도착했을 때 그곳을 아시아 해역으로 착각했던 배경이 바로 이러했다. 

이상으로 우리는 콜럼버스 항해 전야를 둘러 보았다. 우리는 이 작은 시공 여행을 통해 지도가 어떻게 세계 역사를 바꾸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콜럼버스가 만일 강리도를 보았더라면 서쪽으로 항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레드야드 박사였다.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된 강리도를 해설하는 논고에서 박사는 그렇게 썼다.

강리도와 마르텔루스 지도를 대조해 보면 비로소 레드야드 박사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강리도를 보았더라면,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 나아가 세게 역사는 달라졌을 터인데...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강리도 , #콜럼버스 , #마르텔루스, #베하임, #레드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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