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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는 드디어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경신했다. 이런 충격적인 '무거움'은 고3 때 이후로 처음이다. 벌써 몇 주째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목이 터져라 외쳐왔건만, 체중계의 숫자는 도무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사이 여름은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옷장을 열고 작년에 입던 여름옷들을 죄다 꺼내놓고 보니 이것 참 보통 큰일이 아니다.
 
이런 충격적인 '무거움'은 고3 때 이후로 처음이다.
 이런 충격적인 "무거움"은 고3 때 이후로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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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절엔 순진하게도 대학만 가면 절로 살이 빠진다던 어른들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삼시 세끼로도 모자라 짬짬이 간식에 야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다 보니 대학 입학 즈음에는 자연스레 동면 직전의 곰처럼 투실투실해졌다. 결국, 뼈를 깎는 혹독한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다신 그와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선 이후로는 늘 과식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하루에 30분씩이나마 규칙적으로 운동하기를 거른 적이 없다. 덕분에 십 년이 훌쩍 넘도록 변함없이 날씬한 체형을 쭉 유지해 온 나이건만, 대체 지금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배달의 세계에 들인 역사적인 첫발

몇 달 전,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나는 다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집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날도 늘었다. 그런데 화상 강의를 마치고 잠깐 쉬는 시간 15분은 뭔가를 사 먹기도, 그렇다고 또 해 먹기도 조금 애매했다. 한동안은 엄마가 보내준 밑반찬 몇 가지에 밥만 따로 해서 후다닥 식사를 마쳤다.

그즈음 바깥 외출을 삼가고 온종일 집에 혼자 있다 보니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다. 마땅히 풀 방법이 없었다. 시뻘건 닭발이나 마라탕처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고 뜨거운 것이 당기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생맥주를 곁들이는 상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배달앱 광고였다. 첫 주문 시 발급된다는 통 큰 할인 쿠폰의 유혹을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배달의 세계에 역사적인 첫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전까지는 배달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 사는 처지다 보니 배달온 직원이 음식을 집안에 들여놓는 동안 그 옆에서 쭈뼛쭈뼛 서 있는 시간이 거북하고 어색한 탓이었다. 그런데 배달 어플을 이용하면서부터 그 불편한 조우를 더는 겪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주문과 계산을 동시에 끝마치고 배달 요청 사항에 '문 앞에 놓고 가세요' 한 문장만 남겨 놓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플을 이용한 첫 주문이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배달의 세계는 마치 정글처럼 광활하고 변화무쌍해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 특히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이 오히려 결정을 앞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신중하게 리뷰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신속하고 명쾌한 자본주의라니
 
저녁마다 어플을 뒤적여서 그날의 야식 메뉴를 고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저녁마다 어플을 뒤적여서 그날의 야식 메뉴를 고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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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맛을 본 자'들이 가게별, 메뉴별 장단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놓은 것을 읽다 보니 조금씩 감이 잡혔다. 맛이 가격을 못 따라가는 집, 가격대비 맛은 있지만 양이 쪼잔한 집, 맛도 가격도 양도 뭐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집 등등. 배달 고수들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조언들 사이에서 마침내 나는 마음을 정했다. 

주문한 지 이십 분쯤 지났을까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과 연결된 카메라로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잠시 후 슬그머니 문을 열자, 요청 사항에 남긴 대로 배달 온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제법 묵직한 비닐봉지 하나가 덜렁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떡볶이가 막 퍼올린 것처럼 뜨끈뜨끈했다. 세상에, 이렇게 신속하고 명쾌한 자본주의라니!

그날 이후, 저녁마다 어플을 뒤적여서 그날의 야식 메뉴를 고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고, 나는 정확하게 오 킬로그램이 늘었다. 원래 좀 말랐던 편이니 살이 찐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 불길한 징후마저 무시하기는 쉽지가 않다. 나는 전과 달리 속이 더부룩할 때가 잦고, 조금만 피곤해도 얼굴에 뾰루지가 올려온다. 아마 맵고 기름진 것들을 지나치게 많이 먹은 탓이리라.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정작 더 중요한 것을 놓쳐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 이후 급작스러운 체중증가로 인한 당뇨병 환자가 늘었다는 뉴스를 보고 난 직후, 나는 당분간 내 핸드폰에서 배달 어플을 삭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문득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었다!"라고 말하던 모 연예인의 웃픈 조언이 떠올랐다. 지금부터라도 배달 음식 대신 조금 더 건강한 식단으로 식탁을 차려 볼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가장 '덜' 늦었을 때니까 말이다.

태그:#배달 음식, #체중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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