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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골목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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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ㅅㅈㅅㅈ는 무엇인가?"

두음(頭音) 낱말풀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며칠 전 광주 '양림 골목 비엔날레(제1회)'를 보러가서 만난 질문이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에 설치된 작품 주제가 '당신의 ㅅㅈㅅㅈ'이다. 설명문을 보니 'ㅅㅈㅅㅈ'는 한 단어가 아니라 '시간, 죽음, 슬픔, 장례식'이란 4개 단어의 두음이었다. 세계적인 경제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78)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 인류의 새로운 문화예술 주제로 꼽은 4개의 키워드란다.

김혜연, 김승택, 구혜영, 김지희 등 8명의 작가는 자크 아탈리가 내놓은 4개의 키워드(타인과 단절된 고독의 시간, 방어막 없이 가까워진 죽음의 그림자, 전보다 커진 좌절과 슬픔, 울어주는 이 없는 장례식)를 주제로 삼아 창작소 1~2층, 8개의 방에 작품을 만들어 놓고 곁에 펜과 노트도 마련해 놓았다. '당신의 ㅅㅈㅅㅈ는 무엇인가, 당신에게 ㅅㅈㅅㅈ는 무슨 의미인가?' 관객에게 묻는다. 관객 참여형 작품인가.

도슨트 해설도 없이 난해한 설치작품을 보며 8명의 아티스트들이 해석한 'ㅅㅈㅅㅈ'를 고심해본다. 작품 속에서 아탈리의 키워드는 '존재, 삶, 정신면역, 생명' 또 '사랑, 주체, 성찰, 자연'으로 변화한다. 8개의 방은 1920년대 광주지역 한센병 환자, 결핵 환자들을 돌보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머물렀던 광주 최초의 양식주택 건물이다. 작가는 백 년 전 선교사들의 피땀이 깃든 이 방이 '우리가 역경을 이기는 키워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썼다.

목숨을 던져 신앙심을 실천한 역사 현장에 예술을 접목했으니 영감이 내릴만하다. 작가가 내건 12개의 단어를 헤아려본다. 무슨 열쇠 단어가 우리에게 절실한가. '성찰'이란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멈추라, 성찰하라'는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 현대문명사회에 준 메시지이자 교훈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상을 잃어버렸다.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찰'없는 돌아감은 '돈의 지배아래 병든 문명사회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된다.

자크 아탈리는 '팬데믹이 변화를 부추기는 매우 과격한 가속장치'라며 '지금이 이기주의와 탐욕을 유일한 규범으로 삼은 생존경제에서 합리적 이타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생명경제로 시급히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탐욕 때문에 '자연과의 균형'을 잃은 인간은 '지구온난화, 생태계 붕괴, 팬데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팬데믹은 '대형화, 대량화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문명에게 '경제규모를 줄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생계를 잃은 수많은 소상공인들, 생존에 시달리는 수많은 젊은이들,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소시민들에게는 '성찰' '자연'이란 단어보다 '생존' '생명'이란 단어가 더 절박하다. 창작소 방을 나온다. 방 밖에는 4백 년 묵은 호랑가시나무, 아름드리 느티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숲, 신록이 둘러싼다.

동네 뒷산 양림산(높이 108m)까지 10분도 안 걸린다. 언덕 바로 밑이 선교사 묘역이다. 양림동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돌아가신 미국인 선교사들과 가족 22분이 묻힌 묘역이다. 멀리 동쪽 하늘 아래 짙푸른 무등산이 두 팔을 벌린다. 마치 작은 양림언덕을 감싸 안은 어머니 같다. 역사문화예술과 주민 삶이 어울려 숨 쉬고 있는 '균형을 이룬 자연'의 모습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영원한 자유인'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라고 선언하는 끝말을 쓰려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라는 첫 문장을 초석으로 놓아야 한다. 역경과 난제가 쌓여있는 세상에는 열쇠단어, 키워드도 넘친다. '나의 ㅅㅈㅅㅈ'를 4개 단어로 추려본다. '생존' '자연' '생명' '자유'.

태그:#팬데믹 , #키워드, #자크 아탈리 , #양림 골목비엔날레,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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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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