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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대해 20대 청년 유권자들은 각기 다른 감상을 내놓고 있다. 전임 시장의 성범죄로 인해 치르는 선거인 만큼 후보자의 젠더 감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도, 코로나19로 박살나다시피 한 취업 시장을 적극적으로 되살리려는 후보를 고를 수도 있다.

서울에서 안정적인 주거지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면 월세 지원 공약을, 전염병과 미세먼지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면 친환경 공약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각자의 '사정'이라 부른다. 유권자의 사정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다. 이는 곧 '역사'다.

31일 기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 뒤지는 모양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 후보가 박 후보에 더블스코어를 기록하는 가운데, 진보 성향이 강할 것으로 예측됐던 20대 응답자들까지 보수 단일 후보인 오세훈 후보를 더 크게 지지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 '싹쓸이'를 선물했던 불과 1년 전의 총선 결과와 비교하자면, 작금의 현상은 확실히 징후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31일 서울 동작구 총신대입구역 인근에서 거리유세 중 한 시민과 셀카를 찍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31일 서울 동작구 총신대입구역 인근에서 거리유세 중 한 시민과 셀카를 찍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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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후보는 26일 오전 유세 중 20대의 지지가 높지 않게 예측되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대의 경우 과거의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는 40대와 50대보다는 경험치가 낮지 않나.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지금 시점에서만 보는 경향도 있다."

박 후보의 말마따나 20대의 '역사적 경험치'는 비교적 짧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역사에 기반을 둔 선택으로 철저히 계산적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유권자로 살아남고 있기 때문에 20대에 대한 박 후보의 논평에 동의할 수 없다. 

두 도시 사이에서 갈등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스무 살, 유권자가 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고민은 이렇게 시작됐다. 흠, 앞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어느 도시로 두어야 할까.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가족의 집이 있는 경기도, 앞으로 오랜 시간을 보낼-학교와 나의 자리가 있는 서울. 초반 1~2년은 큰 고민 없이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지냈지만, 2018년 지방선거로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서 나는 적극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지방정부로부터 혜택을 취해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정말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년 주거] 서울에서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할 수 없다 

혼자 서울에 산 지 벌써 7년 차, 경기도에서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는 것은 행정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친척 집과 학교 기숙사, 월세방을 옮겨 다녀야 했고, 이 때문에 주소지로 등록을 할 만한 안정적이고 애정이 가는 공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장 6개월 후에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활동 반경이 주로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민의 신분을 유지하기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서울주택공사 SH가 요구하는 조건의 주거 혜택을 꿈꿔보지 못한 이유는, 경기도에 사는 가족의 재산과 묶여 나의 소득 분위가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살기 위해 청년 주거 혜택을 받아보고자 하면 소득 기준에 걸렸고, 대학생으로서 큰 소득을 발생시킬 수 없는 나는 서울이라는 생활 반경 안에서 한 번도 안정적인 거주지를 마련할 수 없었다. 

[청년 취업] 경기도의 '청년 기본소득'이라는 이득 

대학 졸업과 사회 진출의 시기가 다가오니 정부와 지자체의 취업 지원 정책을 더 꼼꼼하게 검토하게 됐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혼자 힘'으로는 안정적인 전일제 임금노동의 세계로 진출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능력을 키우는 기회는 중앙 정부가 시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의 혜택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지방정부에 바라게 된 것은, 취업 전까지 무노동 무임금 상태로 보내야 하는 이른바 '공백기'에 받을 수 있는 보호와 혜택이었다.

주소지를 서울로 옮기지 않고 경기도민의 신분을 유지해온 또 다른 이유엔, 만 24세가 되면 받을 수 있는 '청년 기본소득'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나는 만 24세가 되면서 분기별 25만 원, 연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 삶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붕 떠 있는' 불안의 시기에 이러한 혜택을 받는 것은 놓칠 수 없는 혜택이다. 코로나 재확산의 시기에 두 번에 걸쳐 받은 재난기본소득 역시, 코로나로 불안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던 내게 도움이 된 바 있다. 

과연 서울시민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역사다. 스무 살 이후의 나는 이익을 좇아 경기도에 남았고, 서울시민이 되기를 택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이번 보궐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민으로서, 한국 정치에서 복지에 가장 호의적인 두 정치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사이에 두고 고민했던 지난 시간의 경험은 소중했다. 박 시장이 고인이 되며 그 고민이 잠시 멈추고 유예되었지만, 나는 언제든 다시 이익을 좇아 도시로, 다른 도시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내가 박영선 후보의 발언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20대들의 짧은 삶마저도 하나의 역사로 인정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이야기한 '역사적 경험치'는 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 같은 것에 참여를 해보았냐-너희는 그렇지 않지 않았냐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역사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어 어른이 되었고, 유권자가 되어 박근혜 탄핵을 경험했다.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투표용지에 내가 아는 최선의 이름들을 적어 낸 경험들이 있다. 역사적 경험치란 높고 낮은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1년짜리 임기를 두고 치러지지만, 후보들은 그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1년 안에 서울에서 대변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나의 20대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으며, 다음 주부터 서울로 통근을 시작한다. 청년기가 다 가기 전에 나는 서울시민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누가 시장이 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태그:#박영선 오세훈 서울시장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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