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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후위기는 서점가에도 등장하고 가끔 공중파 방송도 타는 주제이다. 그렇지만 위기에 대한 실감은 여전히 떨어진다. 그보다 더 급한 문제가, 일단은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사회 문제들의 해결보다 '나중에'를 외치는 나라이니 기후위기도 쉽게 미뤄진다. 아니,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면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발전소를 짓고 수출하는 나라이니, 온실가스 감축을 외치면서 공항을 더 짓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북극곰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피해가 없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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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정의 표지 표지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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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재각의 <기후정의>(한티재, 2020년)는 북극곰이 아니라 가뭄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기후위기에 따른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이로 인한 식량가격 폭등과 정치적, 사회적 불안, 갈등, 전쟁, 살기 위해 국경을 넘는 '기후난민'. 그래서 기후위기를 다루는 세미나에 군인들이 등장하고 이렇게 기후는 국가안보의 주제가 된다.

그래서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변화가 아니라 그로 인해 증폭될 사회적 불평등이다. 그렇다. 위기는 절대로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힘없고 가난할수록 위기는 더욱더 가혹하고, 그런 사람들의 미래가 더 어둡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의 결과이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들을 거론하며 기후나 지구와 함께 불평등에 관해 설명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불평등, 한 국가 내의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의 불평등 등. 그렇지만 기후위기가 불평등의 결과라는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142~143쪽의 그림이다. 그림에서 드러나듯 소득불평등과 온실가스 배출량 그래프는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전세계 소득불평등과 온실가스 배출의 불평등
 전세계 소득불평등과 온실가스 배출의 불평등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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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선진국과 부자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느껴야 한다. 그러나 힘을 가진 그들은 책임을 회피할 뿐 아니라 위기조차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로 위기를 포장하며 불평등을 은폐한다. 현재의 위기는 미래의 더 큰 위기로 증폭된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정의운동이 "시장에 대한 의존, 장기 위협을 다루는 데 실패한 국가, 사회 보호의 부재, 생명과 지구보다 투자를 보호하는 전반적인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145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책임지는 정치가 없다

저자는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제안한다.
 
"하나는 탈동조화decoupling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탈성장de-growth의 길이다. 탈동조화의 길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혹은 미련을 놓지 못한 채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일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며 IT 기술을 이용한 경제의 탈물질화를 자주 언급한다.

탈성장의 길은 한정된 지구 생태계 안에서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며 성장을 포기해야만 목표로 하는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전자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길처럼 보이며, 후자는 환영받기 힘든 길로 보인다." (128~129쪽)

인용한 글의 문투에서 느껴지듯 저자는 한국의 길을 예감한 것 같다. "현대 한국 사회를 주조한 '개발주의'는 정치적 좌/우 혹은 진보/보수를 떠나 엘리트들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156~157쪽)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탈성장의 길보다 탈동조화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는 세웠지만 다른 정책들은 대부분 성장과 건설에 맞춰져 있다.

그 방향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이상하게도 대안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외려 다른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대안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듯, 이미 대안은 충분히 있다. 대안을 대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대안 없음'이 아니라 그 대안을 구체화시킬 '정치 없음'이다.

특히 시민들의 노력에 비해 국가와 기업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간단한 예로 시민들이 텀블러와 손수건을 싸고 쓰레기를 줄이며 자동차 대신 걷기를 택해도, 삼척과 강릉에 건설되는 석탄발전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책에 따르면 두 곳의 석탄발전소는 "무려 1억 2000만여 명이 하이파이브 약속에 동참했을 때 감축할 수 있는 온실가스양을 한꺼번에 배출한다."(194쪽) '아이고, 의미 없다'는 냉소가 아니다. 우리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정부와 기업을 움직여야 한다.

기후침묵에서 기후행동, 기후정치로
 
이 책의 '나오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강의를 갈 때마다 종종 질문을 받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지금은 '데모'할 때라고 답한다."(193쪽)

실제로 '멸종저항서울'의 활동가이기도 한 저자는 지난 3월 15일 "기후파괴당 민주당, 가덕도 신공항 철회하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민주당사로 진입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말과 행동의 일치이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들의 행동만으로 한국사회가 다른 길을 갈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와 기업의 방향을 전환시키려는 집요한 사람들과 운동이 필요하다. '이미' 그런 사람들과 운동은 존재한다. 그 힘을 모아 기후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길이 불평등을 줄이고 함께 살 방법은 찾는 길이다.

기후정의 -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에서

한재각 (지은이), 한티재(2021)


태그:#한재각, #기후정의, #한티재, #불평등,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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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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