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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헹씨가 기숙사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2020년 12월 말부터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열악한 현실이 연일 보도된다. <경향신문> 2020년 12월 23일 '한파경보에 난방고장 비닐하우스 숙소서 이주노동자 숨져'라는 단독보도 이후 80여 일 동안 관련 보도가 600건 이상 확인될 만큼 여러 언론사에서 이주노동자 숙소를 앞다퉈 보도했다.

엄동설한에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주노동자 사망 소식에 많은 시민이 애도했다. 열악한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지어놓고 한 달에 20여만 원을 급여에서 공제하는 현실을 고용노동부가 알면서도 방치한 사실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 등 외신보도 줄이어
 
BBC 보도 중 일부
 BBC 보도 중 일부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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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도 이 사안에 대해 취재와 보도를 하고 있다. 지난 4일 'Migrant workers face dire conditions at South Korean farms(남한 농장 이주노동자들이 끔찍한 환경에 놓이다)'라는 제목의 AP통신 기사가 나간 이후 전 세계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고 있다. 한 달 앞선 지난 2월 4일 영국 공영방송 BBC는 'South Korea's 'hidden' migrant workers(남한의 숨겨진 이주노동자)'라는 보도로 열악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환경을 알렸다.

BBC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 등 취재팀은 비닐하우스 숙소 현장에 가서 한파에 꽁꽁 언 물탱크를 녹이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사업장변경의 자유가 없는 이주노동자 현실은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다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목소리, 국회증언에서 잔혹한 노동계약의 실태를 알려 현재는 미역농장에서 만족하며 일하는 동티모르 출신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3분 12초라는 짧은 시간에 모두 담았다.

한국 공영방송 KBS의 관련 보도는?

속헹씨가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2020년 12월 23일, KBS는 '한파 속 갑작스러운 외국인노동자의 죽음... 숨진 캄보디아 여성 살았던 숙소구조는?'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올렸다. 인터넷으로만 보도되고 메인 뉴스에 관련 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반면 같은 날 MBC는 메인뉴스 시간에 '3주 뒤면 고향 가는데... 한파에 홀로 숨졌다'라는 제목으로 3분 5초 분량의 기사를 내보냈다. SBS도 '한파 속 비닐하우스서 자던 이주노동자 사망'이라는 제목의 1분 44초 기사를 내보냈다. 

2020년 12월은 코로나19 감염이 기승을 부렸던 때라 국가재난 주관방송사인 KBS가 관련 내용을 인터넷 기사로만 올리고 메인 뉴스에 담지 못한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일 9시 뉴스에 보도된 '비닐하우스 숙소 금지에 농가 발 동동... 양성화 절실'이라는 기사는 어떨까. 
 
KBS 9시뉴스 영상 캡쳐
 KBS 9시뉴스 영상 캡쳐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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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는 아래와 같은 앵커멘트로 시작된다.

"정부가 올해부터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가건물 등을 숙소로 제공하면 고용허가를 아예 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숙소를 제공하라는 취지인데, 어찌 된 일인지 현장에서는 농촌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아예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지적이 나온다고 합니다."

3분 24초의 영상에는 농장주와 이주노동자의 인터뷰가 담겼다. 수천만 원을 들여 만든 이 숙소가 정부방침으로 무용지물이 됐다며 "작년(2020년)까지는 그렇게 다 인정해 놓고 갑자기 채용불가, 이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안 맞는 말씀이다"라는 농장주의 하소연과 "200만 원 버는데 50~60만 원 돈을 외부 숙소에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라는 이주노동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함께 실었다. 

이 보도대로라면 정부가 내놓은 개선책은 농장주와 이주노동자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대책으로 읽힌다. 그러나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만 확인하면 인터뷰에 담긴 이주노동자의 걱정은 농장주가 만들어 낸 공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BS 보도에 담긴 것처럼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기숙사는 99%가량 농장주가 제공하기에 근로계약서에 대부분 농장주가 기숙사를 제공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배포한 '외국인근로자 비용징수지침'에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제공할 때도 숙소비로 통상임금의 15%까지만 징수하도록 돼 있기에 월 200만 원 급여라면 공제 당하는 돈은 최대 30만 원이다.

그럼에도 농장주들은 이주노동자에게 "정부 대책대로라면 월 5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이주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실제 경기도 여주에서 이렇게 윽박지르는 농장주가 있었다. 

"계약하면 한 달에 방세를 30만 원씩 내야 한다. 계약금(보증금)도 보통 1000만 원 정도 든다. 그 방에는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어 다 사야 한다"라며 기숙사와 관련한 일체의 비용을 이주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기숙사 제공을 거부했지만, 여주고용센터는 계약조건 위반이라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신청을 허가했다.   

계약서에 기재된 '숙박시설 제공'이라는 건 그 시설을 위한 계약금(보증금)은 농장주가 부담하고,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기본 설비도 포함한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탄원서는 자의로 쓴 것일까?

KBS 보도에는 이주노동자 200여 명이 작성해 제출했다는 탄원서가 나온다. 그러나 그 탄원서를 과연 이주노동자가 자의로 쓴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2020년 12월 속헹씨의 기숙사사망 사건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포천이주노동센터 김달성 목사는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주가 서류를 제시하며 사인을 요구하면 몇 명이나 거절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농장주와 이주노동자가 철저히 주종관계에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농장주로부터 제대로 된 기숙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고, 그런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더 좋은 기숙사가 있는 사업장으로 변경이 가능하며 비용징수 또한 상한이 있어 더 많은 비용부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면 그런 탄원서에 서명, 날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반론은 KBS 뉴스에 담겨 있지 않다.  

공영방송 KBS... 수신료의 가치는?

KBS는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올리는 수신료 현실화(인상) 정책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지난 8일 KBS 양승동 사장은 사보를 통해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여 간다면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수신료 현실화(인상)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지난 2월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서 KBS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은 7.1%에 그쳤다. 오히려 수신료 폐지의견이 44.2%로 가장 많았다. 

정부가 폐지시킨 불법기숙사 '양성화'가 절실하다는 제목의 KBS 보도를 보며, 속헹씨 사망 이후에도 이주노동자의 기숙사가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은 영국 공영방송 BBC의 보도를 떠올린 시민들이 많다.

왜 국민들이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해 "월 2500원도 아까운데"라는 입장을 고수하는지 KBS가 한 번쯤 돌이켜 봐야 하지 않을까. 

태그:#이주노동자 기숙사, #공영방송 KBS 수신료, #비닐하우스 숙소 양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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