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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1일 오후 5시 35분]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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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가 끝났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잘 가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강제전역처분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이야기한 그를 영정사진으로 만날지 몰랐다. 황망하다는 느낌을 몸소 깨닫는 시간이었다. 눈물이 메말라버린 것인지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침묵 속에서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화장터로 가기 전 유품을 유가족과 함께 확인했다. 소송기록지가 있었고, 지갑 속엔 성전환 수술을 하고 남았을 태국 화폐 몇 장과 다시는 쓰지 못할 카드, 활동을 하며 만났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명함 몇 장이 남아 있었다.

눈에 띄었던 것은 지역 경찰서에서 온 변사자에 대한 기록이다. 검시를 마치고 유족에게 인도해도 된다는 검시필증엔 변희수라는 이름, 여성이라는 성별이 적혀 있었다. 주민등록 뒤 번호는 숫자 2로 시작되어 있었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숫자로 변경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을 텐데, 그 결과는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직업을 잃었다.

국방부는 '성기훼손'을 했다고 말하며 더 이상 군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검시필증 직업란에도 무직이라고 적혀 있었다. 끝까지 군인이고 싶었고, 그 누구보다 소명을 다하고자 했지만 그는 국가에 의해 버림받은 '직업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난 며칠간 그를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추모행동이 이어졌다. 또 다른 누군가를 잃지 않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모아졌고, 서로에게 힘이 되자고 다짐했다. 또한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정치를 향해 분노했고,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규탄했다. 동시에 그가 남긴 숙제를 곱씹어보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피는 시간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괴롭게 느껴지고..."

변희수 하사 상담기록을 다시 꺼내 보았다. 혹시 그를 지원하며 놓치고 있던 것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업도 잃고, 거처도 불안정한 상태에서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제안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무기력과 불안이 짙게 배어 있는 상담내용을 읽다 보니, 그의 부고 소식이 다시 무겁게 다가온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일자리가 잘 구해지지 않아 걱정했던 기록, 강제전역 처리 과정을 회상할 때는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은 2017년 7월,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던 그와 첫 인연을 맺었다. 밝은 표정으로 군 관련한 고민과 기대를 나누기도 하였고, 거리이동상담 현장에선 종종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곤 했다. 군 매점(PX)에서 사 온 간식을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 나눠먹은 기억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후 한참 소식이 없는 그를 다시 만난 건 2020년 1월 첫 번째 기자회견 자리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트랜지션 시기를 저울질하던 그가 부당한 전역 결정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이 반갑기도 했지만, 쉽지 않은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깝기도 하였다.

2020년 5월부터 변희수 하사와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건 지원을 담당하던 군인권센터의 요청이기도 했지만,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괴롭게 느껴지고, 일자리가 안 구해져 조바심이 날 것 같다"는 그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영상이나 경비 관련 알바를 하고 싶어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없었다. 경력이 단절된 트랜스젠더 여성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코로나19까지 겹치니 좌절은 일상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이력서를 쓰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취업성공 패키지도 신청해보았다.

말이 좋아 자립지원이지, 업무지원을 하면 일부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였다.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기 위해 생필품을 포장하기도 하고 음식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없던 일을 만들어서라도 그가 해야 할 일을 챙겨야 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한시적인 지원이었지만 이 마저도 오래 가진 못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 변희수 하사를 함께 기억하는 추모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고인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 변희수 하사를 함께 기억하는 추모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고인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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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일할 자리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은 변희수 하사만 겪었던 문제도 아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의하면 구직활동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57.1%가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직장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했다.

또한 37.0%의 응답자는 주민등록번호에 제시된 성별과 성별표현이 일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48.2%는 구직 및 채용과정에서 남자 또는 여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입사취소나 채용거부를 당한 경우도 15.9%에 달한다. 트랜스젠더 대부분 겪고 있는 노동현장에서의 차별은 먹고사는 문제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변희수 하사는 군인이라는 신분을 부당하게 잃었지만, 계속 싸우고 싶어 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그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선 또 다른 일자리가 필요했고 생존해야 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이 감당해야 할 벽은 너무 높았다. 재취업의 문턱에서 계속 좌절했을 그가 무기력감에 빠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순서였다. 만약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죽음이라는 끝을 마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그가 끝내지 못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변희수 하사의 명예회복과 트랜스젠더의 일할 권리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트랜스젠더 또한 존중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해야 한다. 그때 우리 상담도 끝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태그:#변희수, #트랜스젠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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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 사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무지개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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