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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여름 저녁,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버스정류장 앞으로 한 할머니가 노인용 전동스쿠터를 탄 채 지나가고 있었다. 스쿠터 뒤로는 대형 카트가 묶여 느릿느릿 끌려오고 있다. 대형카트는 점차 느려지며 스쿠터로부터 분리되더니, 카트 손잡이에 묶어놓은 큰 비닐자루가 풀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바람에 그 안에 있던 플라스틱 물통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할머니는 스쿠터에서 내려 플라스틱 재활용품 쓰레기를 비닐 자루에 담았다. 그리고 카트 손잡이에 비닐 자루를 묶고는 다시 스쿠터에 올라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비롯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은 할머니의 행동을 무심히 보고만 있었다. '스쿠터가 과연 잘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5미터도 채 못 가서 다시 내려야 했다. 대형 카트가 스쿠터에서 또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비닐자루는 또 힘없이 풀리며 그 안에 있던 플라스틱 물병, 음료수병이 거리에 나뒹굴었다.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재활용품 쓰레기를 주워서 봉투에 넣었다. 할머니는 비닐 자루를 겨우겨우 대형 카트 손잡이에 묶은 뒤 스쿠터에 올랐지만 출발하자마자 또 대형 카트는 스쿠터로부터 분리되었고 할머니 혼자 약 30여 미터를 운전해가다 다시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그 작업을 반복했다. 그 후로도 대여섯 차례 그 작업을 반복했지만 할머니는 10미터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형 카트 손잡이 부분과 스쿠터 뒷부분 어디쯤을 비닐 노끈으로 적당히 연결해놓아, 누가 봐도 참 어설프고 연약해 보였다. 대형 카트가 자꾸 분리되는 이유는 노끈 이음새가 헐겁기도 했거니와, 너무 많은 짐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문지, 박스, 종이류의 폐지가 내 허리 높이만큼 쌓여있었고 손잡이 양옆으로는 캔과 플라스틱을 담은 큰 비닐 자루까지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매달려있어서 무게가 상당했다. 노인용 전동 스쿠터로 그것을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아니, 거기까지 끌고 왔다는 게 신기했다.

도시에서 가난한 노인으로 늙는다는 것

"할머니. 뭘 좀 놓고 가셔야할 것 같은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저기까지만 가면 돼', '다 왔어'라는 말만 반복하시며 다시 비닐자루를 스쿠터에 꾸역구역 묶었다. 거리에 뒹구는 폐지, 깡통을 줍느라 할머니는 거리로 뛰어들었고 그때마다 놀란 자동차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려댔다.

고물상까지만 가면 된다면서, 밤새 이고 지고라도 갈 기세로 노끈을 묶는 할머니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다행히 고물상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하다못해 내가 카트를 끌고 뒤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고마워하며, 짐을 벗어버려 한결 가벼워진 스쿠터를 타고 쌩 달려갔다.

갑자기 혼자 남겨진 나는 얼떨결에 요란하게 덜덜거리는 카트를 끌고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인도로 올라갈 수 없어서 차도 한쪽으로 걸어가는데 길은 왜 이렇게 울퉁불퉁한지. 덜컹거릴 때마다 폐지가 쓰러지고 비닐 자루가 또 풀어질까 봐 나는 그것들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며 조심조심 가야만 했다.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젊은 사람이 웬 폐지 욕심이 저리도 많을까...'라는 표정이었다.

순간, 나는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할머니는 이미 눈앞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카트를 아무 데나 내동댕이치고 사라질 수도 없었다. 일단 고물상까지 무사히 배달 완료해야 했다. 고물상이 가깝다고 생각한 건 순전 내 착각이었다. 나의 형편없는 거리감각을 원망하며 고물상이 문 닫기 10분 전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을 때, 온몸이 땀에 흠뻑 적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 할머니는 왜 그렇게까지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폐지와 재활용품에 집착(?)해야 했을까. 무슨 용기(?)로 그걸 다 끌고 가겠다고 한 걸까. 그리고 당신의 무게를 훨씬 넘어선 그 재활용품의 부피에 얼마나 제대로 된 가격을 받았을까 궁금했다. 그 후로 가끔 그 거리를 지나며 할머니를 떠올리긴 했지만 며칠 지나고 곧 잊었다.  
 
책 <가난의 문법>
 책 <가난의 문법>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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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서 나는 작년의 그 할머니가 떠올랐다. <가난의 문법>은 사회학자인 작가가 서울시 북아현동 고지대에 사는,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관찰하고 취재한 기록물이자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도시노인의 생태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노인, 그 중에서도 도시의 여성 노인에게 주목한다.

윤영자라는 재활용품 수집 여성노인의 하루

1945년대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윤영자'라는,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의 삶의 하루를 나누어 살피며, 아울러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현실과 상황,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그들이 왜 재활용품 수집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지, 왜 도시의 '가난한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가난의 문법'을 밝히고 있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이 그런 일과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p.13
 
윤영자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우리 주위에 충분히 있음직한 현실의 인물이기도 하다. 40년대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한 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 서울에서 화장품 판매원, 부녀회장 등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하며 가계를 꾸려간다.

자녀들을 다 출가시키고 살 만하다 싶었을 때 IMF 등으로 사업난을 겪은 자녀들에게 사업비를 대주느라 본인들의 단독주택도 팔아버린다. 늙어버린 지금, 하루하루 살기 벅찬 자녀들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도 없고,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고, 이렇다 할 재산도 없다. 윤영자는 그렇게 재활용품 수집을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된다. 이게 가난의 문법이다. 자,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물론 모든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삶이 이런 경로를 밟았다고 볼 수 없다. 모두가 이런 인생을 산 것도 아니고, 이 가난의 문법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노인들의 '가난'은 우리 사회, 역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 가난은 더 이상 한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
 
'국가 및 사회와 간접적 영향을 주고받은 한 사람의 생애 역시 지금의 역사다...(중략)...다르게 보면 우리가 '가난한 삶으로 이끈 책임'이라며 낙인찍었던 그녀의 결정과 행동은 각 시대의 처지에 대한 영자 씨 나름의 생존법칙이었던 것이다.' p. 128
 
재활용품 수집이 쉬엄쉬엄 운동 삼아 하는 일이라고?

쉬엄쉬엄, 노느니, 운동 삼아 일한다는 재활용품 쓰레기 수집이 왜 노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걸까?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에 대해 그리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간혹 길거리에서 커다란 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들을 보면 '힘들겠다' '위험하겠다'는 생각만 단편적으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작년 여름, 그 할머니의 덜덜거리는 대형 카트를 끌면서 직접 체험한 노동의 수고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 건, 이 일은 노인의 일자리로는 너무 가혹하다는 사실이었다. 절대 '노느니 운동 삼아' 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저자는 재활용품 수집으로 '노인들이 일시적인 금전을 취할 수는 있겠으나, 그들의 생활 자체가 개선되지는 않는다'며 '거칠게 말하자면 노인은 젊은 세대와 부유한 계층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증가한 플라스틱, 재활용품 쓰레기는 노인을 착취하는 일을 심화시킨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재활용품 수집이 제도의 바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교통사고, 폭행 등)가 발생했을 때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재활용품 쓰레기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노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 그리고 잘못된 정보로 인한 공동체의 와해, 노인들에게 가해지는 육체적인 고통과 위험, 폐지 값을 정하는 경제 원리, 고물상이라는 비공식적 공간의 모순, 노인의 신체 속도나 형편에 맞지 않는 도시의 설계 등 나로서는 미처 생각지도 하지 못했던 여러 문젯거리들도 함께 제기해놓았다. 도시 노인의 빈곤이 결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회 문제가 얽히고설키어 있는 유기체였던 것이다.
 
<가난의 문법>에서 저자는 도시 노인의 빈곤, 그 중에서도 여성 노인의 빈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가난의 문법>에서 저자는 도시 노인의 빈곤, 그 중에서도 여성 노인의 빈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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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노인'에 대한 밋밋한 규정도 바뀌어야 하며,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는 은퇴연령 폐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산업은 노인을 은퇴자로 이해하지만 복지 정책은 노인을 복지사업의 참여자로 이해하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고민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는 별개의 담론이다.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수익을 기대하며, 게다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일한다는 것은 많은 토론과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그리고 과연 그러한 이상적인 일자리가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 책에는 가난한 노인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애정이 담겨있다. 아마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을 것이다. 단순히 사회학적인 연구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한 시대를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는.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고 그 누군가 될 수도 있는 가난한 도시 노인을 위해 이제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거리의 노인들이 달리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무게도 다르게 느껴진다.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은이), 푸른숲(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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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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