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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쌤정도 나이라면 굳이 매번 번거롭게 염색을 하지 않을 거 같아요. 굳이 흰 머리를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게 어울릴 나이가 아닐까요?" 저보다 나이가 몇 살 어린 지인의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너는 젊은데 뭐가 문제니? 내가 몇 살만 더 젊었어도 여기 저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겠다"라고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님은 제게 말씀하십니다. 

누군가에게는 흰 머리를 숨길 필요가 없는 나이, 또 누군가에게는 아직 한참 젊은 나이, 그게 제 나이입니다.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돌아보면 인생은 늘 그랬던 거 같습니다. 요즘 주변에 마흔 줄에 접어든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마흔이 되었다는 사실에, 혹은 마흔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에 한숨을 포옥 내쉽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공자님 말씀 '불혹(不惑)'을 들먹이며 이제는 세상에 혹할 것도 없다며 인생 다 산 듯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그 시절을 돌아보니, 웬걸요. 어머님 말씀처럼 '한창 젊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경험해보지 못한 마흔이라는 나이에 지레 짖눌려 다 산 척 했었지요. 어디 마흔만 그랬나요? 이제는 초등학교가 된 국민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늘 그 시절의 '인생'이라는 무게는 녹록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100 인생 그림책
 100 인생 그림책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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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100장면 

바로 그 우리가 살아가는 '나이', 아니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 바로 하이케 팔러와 발레리오 비달리의 <100 인생 그림책>입니다. 제목이 '100 인생 그림책'인만큼 그 시작은 탄생입니다. 아빠, 엄마와 마주 웃음을 나누는 아기, 그렇게 아기는 세상으로 들어옵니다. 

이 그림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가 하이케 팔러가 갓 태어난 조카를 보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 앞에 펼쳐진 무궁무진한 삶의 여행, 하지만 동시에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지요.

삶이 흐르는 동안 겪어내야 할 일들은 많습니다. 그래서 하이케 팔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었대요. '살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라고. 초등학생에서부터 아흔 살의 할머니와 나눈 삶을 통한 배움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100세 이르는 여러 사람들의 길고 긴 여정, 놀이터에서 여자 아이의 머리 끄댕이를 잡던 아이는 어느 틈에 자라 여자 아이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또 처음으로 마음아픈 이별을 맞이하기도 하지요. 어머니도 어찌 도와줄 수 없는 이별에 아파하던 청년은 다시 사랑을 하고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예요. 
 
 100 인생 그림책
 100 인생 그림책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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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에릭슨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발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각 단계마다 이루어야 할 '발달 과제'를 제시했지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100세 인생의 장면 장면을 넘기다보면 인생 전반에 걸쳐 '발달'을 이루어야 한다는 에릭슨의 말이 떠오릅니다. 

엄마를 보며 손을 흔들던 소녀는 그림책이 끝날 무렵 할머니가 되어 엄마가 손을 흔들어주던 그 자리에서 손녀뻘이 되는 유치원생들을 바라봅니다. 100세라고 하면 무척 긴 듯하지요. 그런데 이 책을 덮을 무렵 여전히 자신의 손 안에 애벌레를 보며 처음 애벌레를 보았던 그 어린 시절을 떠올려요. '인생이  찰라(刹那 1/75초')라는 단어가 떠올려지네요. 

그 길지 않은 인생 여정의 끝에서  에릭슨은 '나는 내 평생에 한 일과 역할에 대해 만족하는가'라고 묻습니다. 노년기의 숙제, 그런데 그건 노년기만으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인생을 살아오며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가가 결국 노년에 이르러 삶을 만족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일테니까요.  
   
살면서 무엇을 배웠나요?   
 100 인생 그림책
 100 인생 그림책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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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00 인생 그림책>의 관점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살 짜리 공중제비를 넘으며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 다음 장에서 그림책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지는가 싶었는데 바로 그 사람에게 작별 선물을 받게 됩니다.

어른이 되었는가 싶지만 여전히 철딱서니없는 행동을 하고, 함께 하는 삶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합니다. 하늘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의욕을 잃은 듯하지만 뒤늦게 생전 처음 나랑 딱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지요. 그런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이젠 놓은 법을 배우라고 권합니다. 

즉, 삶이 주는 양면성, 아이러니를 그림책은 인생 전반에 걸쳐 보여줍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우슈비츠라는 곳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 세상이듯, 기쁨과 슬픔, 행복과 상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림책은 100이라는 나이에 빗대어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인생 그림책'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정의내릴 수 없는 인생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삶이 주는 괴로움을 힘들어 하지만 부처님은 즐거움도 괴로움의 다른 한 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것이 윤회이고, 그 삶의 수레바퀴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하시지요. 하지만 세속의 삶을 사는 우리가 그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대신, 에릭슨의 주장처럼, 삶이 주는 다양한 모습, 기쁨도, 슬픔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삶이 내게 주는 '배움'에 마음도, 몸도 열어놓는 것, 그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러기에 작가 하이케 팔러는 모든 이들에게 '살면서 무엇을 배웠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나 봅니다. 초등학생도, 이십대의 청년도, 구십대의 노인도 여전히 삶에 대해 열려있는 한 무언가를 배웁니다. 

책이 너무 좋아 두 아이들에게 일독을 '강권'했더니 돌아오는 반응이 재밌습니다. 처음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신의 나이 무렵을 찾아보나 봅니다. 그래서 이건 공감된다, 저건 안 된다 하는데, 대부분 지나온 시간들의 일들에 대해서는 공감이 된다 하면서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는 '글쎄요'라는 물음표를 붙입니다.

사는 게 그런 거 같습니다. 여전히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이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온 날들을 그린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해서는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아마도 삶이 마무리되는 그 날까지도 그럴 거 같습니다. 여전히 열려있는 삶, 아는가 싶지만 여전히 배울 게 남아있는 삶, 그게 우리들의 인생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 지음,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사계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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