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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뉴스를 비집고,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애를 낳겠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혹은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는지 등 출산에 대한 각계각층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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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 나는 어릴 때 이 문자가 부부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니까,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결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2세를 낳기 위해, 노쇠한 부모님을 함께 모시기 위해, 노후생활이 외롭지 않기 위해. 그것이 사람의 순리라 생각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부모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얘기했다. 사람 인(人), 그것은 두 발로 당당하게 서 있는 주체적 인간이라고.

우리 부모님은 결혼 반대파다. 맘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면 굳이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연애나 많이 하라고 했다. 나이 들면 혼자 외로워서 어쩌냐고 되물었다. 부모님은 답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혼자야."

하나뿐인 딸을 강하게 키운 부모님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나는 외동이라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다. 어미새가 새끼새를 둥지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부모님은 틈만 나면 하나뿐인 딸을 집 밖으로 내몰았다.

엄마 말을 까먹고 아람단에 가입하지 않은 날, 겨우 집에 도착한 나에게 가입 신청서를 쥐어 다시 학교로 돌려보냈다. 지역 행사장에서 학생을 대표해 연설하기로 한 날, 덜컥 겁이 나 눈물을 흘리며 안 하겠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단호하게 내 등을 밀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리스 산토리니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는 이유로 비행기 표 한 장을 끊어 나를 유럽으로 보내 버렸다.

이쯤 되니 나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했다. 혼자 울산에 있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가기도 하고,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나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혼자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연애도 틈틈이 했지만, 때때로 혼자 돌아다녀 남자친구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사람은 원래부터 혼자인 것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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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굳이 결혼 안 해도 될 것 같아. 일도 재밌고, 운전도 할 줄 알고, 혼자 잘 놀기도 하니까."

엄마는 웃었다.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엄마는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다. 당신은 어릴 적 무용 선생님께 발레를 배워 보라고 권유도 받았고, 모델의 꿈을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며,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꿈도 제대로 못 펼쳐 보고, 집에서는 하루 종일 4남매와 싸워야 하고, 그러다 아빠를 만났다.

그때는 결혼이 탈출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정을 꾸려 보니, 자신은 여전히 어리숙한 아가씨였고 사랑하는 남편도 완전한 보호자가 되어주진 못 했다. 엄마는 생각했다. '몇 십 년 동안 쌓여온 내 체증은 내가 풀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했다.

엄마는 다짐했단다. 그렇다면 내 아이에게는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줘야지. 외로움도 인생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혼자는 고독이 아니라 자유임을 깨닫게 해줘야지. 결혼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 해결책은 아님을 알려줘야지. 그 염원의 조각이 모여 내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내게 결혼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최근엔 사회 분위기도 이처럼 변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이를 낳는 일을 '생산'의 개념이 아닌 '인권과 삶의 존중' 시각에서 보자는 차원에서 저출산(低出産)이라는 용어를 저출생(低出生)이라는 말로 바꿔 쓰자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90년대 이전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율이 저조했으므로 업무 및 가사 분담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지만, 성별 간 사회 진출 격차가 줄어들면서 부부는 '일과 육아' 중 양자 택일의 기로에 놓였다. 개인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터의 업무 시스템 개편 및 기존의 관념적인 가사 분담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단순히 결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자녀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일찍부터 기회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문득 어릴 적 엄마 아빠에게 결혼을 선언한 날이 생각난다. "나 지우랑 결혼할래!" 지우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이름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이 단순한 소꿉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과 함께 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마음에서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밥을 함께 먹고 싶고, 거실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결국 소꿉장난에서 시작하는 것뿐이라고. 다만 이런 감정이 사회의 무게에 눌려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거대한 짐처럼 느껴졌던 '결혼'은 나를 비추는 일부의 조각일 뿐이었다.

 
 사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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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人). 사실 이 문자는 옆으로 서서 손을 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 한다. 나는 이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다. 무조건 타인에게 기대서 사는 삶도, 혼자만 우뚝 서서 갈 길 가는 사람도 아닌, 항상 옆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스쳐 가는 수많은 인연에게 손을 건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날이 오면, 우리 부모님도 기쁜 마음으로 내 한쪽 손을 잡아 주시겠지. 오늘은 조금 알 것 같다.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 그 누구보다 결혼을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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