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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 그림책은 작은 것들을 통해 진짜 보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노란 들판 가운데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따라 빨간 트럭이 달린다. 빨간 트럭이 다다른 곳은 노란길이 끝나는 벼랑 끝이다.

보통 때와는 다른 날들이 있습니다.

어떤 다른 일이 펼쳐질지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기면 아저씨가 트럭에서 내려 짐칸 문을 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3장에 걸쳐서 글 없이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서로 다른 크기와 생김새, 화려한 색을 가진 새들이 날아가는 걸 보면서 '동물원이 문을 닫아서 새를 풀어주나?'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작은 새, 제르마노 쥘로(글), 알베르틴(그림)
 작은 새, 제르마노 쥘로(글), 알베르틴(그림)
ⓒ 리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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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멀리 날아가고 아저씨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하늘을 바라본다. 트럭 짐칸 문을 닫는 아저씨의 뒷 모습 다음 장에 트럭 안에서 아저씨를 바라보는 앵글이 잡힌다. 동그래진 눈에 오므린 입이 '오잉?' 하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날
그런 날에도 무언가 숨어 있습니다.


트럭 짐칸에 까만 작은 새가 남아 있다. 이미 날아간 새들에 비하면 작고 생김새나 색도 볼품 없는 작은 새다. 아저씨가 날아가라고 손짓을 해 보지만 작은 새는 날지 못한다. 아저씨는 기다려준다.

같이 샌드위치도 먹고 몸소 날아가는 흉내도 내주고... 아저씨의 노력 덕분일까? 작은 새가 날기 시작한다. 멀리 멀리 날아간 작은 새는 새들의 무리에 낀다. 다시 트럭을 몰고 돌아가던 아저씨에게 돌아온 새들. 작은 새가 아저씨를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서 책은 끝난다.

책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작은 것을 잘 보지 못하지만 작은 것들은 발견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한다. 누군가 발견해 주기 시작하면 작은 것들은 점점 커지고 작은 것들 때문에 우리는 풍요로워지고 세상이 바뀐다고. 

그러니까 보통 때와 달랐던 건 아저씨가 작은 새를 발견한 거였다. 작고 보잘 것 없어서 눈에 띄지 않은 작은 새를 알아봐 주고 기다려준 아저씨. 작은 새는 돌아와 아저씨가 하늘을 날 수 있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줬다.

<작은 새> 그림책이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판되지 않았을 때 불어판으로 보았다. 글을 모르고 그림만 보았을 때는 작은 새가 아이 같고 아저씨가 양육자라 생각했다. 아이가 무언가 시도하기 주저하고 다른 이들을 따라 가지 못하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로 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1일, '장애인 편의 증진법 개정을 촉구'하며 장애인이 출입하는 데 문제가 되는 커피숍 앞 턱을 뿅망치로 내리치는 플래시몹에 관한 기사를 보고 번역된 <작은 새>를 읽었더니 다른 게 보인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식당, 편의점, 커피숍, 호텔 등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어렵다. 출입구에 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나 생각하고 떠올려 보니 경사로가 있는 건물은 대부분 대형 건물 혹은 관공서였다.

1997년 제정된 장애인 등 편의법에서 건축물에 경사로, 점자 표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의무로 설치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외가 있다. 법 설치 이전인 1998년 4월 11일 이전 건물과 바닥 면적 약 90평 이하 건물은 장애인 편의 시설 설치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90평이라 하면 어느 정도 면적일까? 33평 아파트 3개 정도니까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커피숍 뿐만 아니라 유명 브랜드 커피숍도 90평은 안 되는 것 같다.

기사에 따르면, 1998년 4월 11일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 바닥 면적이 90평 이하인 건물은 전체 생활편의시설 중 약 90%라고 한다. 즉, 장애인편의시설 증진법에 따라 경사로와 점자를 설치하라고 했지만 설치한 건물은 전체 건물의 10% 밖에 안 된다는 거다. 현실성없는 무용지물인 법이다.

왜 90평이라는 예외 조건을 걸었을까 생각해봤다. 90평이란 예외 기준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혹 90평 이하 건물은 경사로와 점자설치 비용까지 부담하기에 무리라 생각한 걸까?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90평 이상의 대형건물에 들어갈 일보다 작은 건물에 들어갈 일이 많다는 건 하루 일과를 상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실제 건물 상황을 조사하지 않고 막연히 경제적인 논리만 따져서 기준을 마련하다보니 장애인을 위한 법이 장애인에겐 쓸모없는 법이 됐다.

휄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나 점자설치와 같은 장애인 편의시설은 옵션이 아니라 디폴트여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지고 있다. 비장애인들에게 당연한 일이 장애인들에게는 '법개정'을 촉구하며 플래시몹을 해야 하는 일이라니 무언가 잘못됐다.

10센치의 작은 턱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다. <작은 새>에서 아저씨가 검은 작은 새를 알아봐 준 것처럼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가로 막는 작은 턱을 알아봐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저씨가 하늘을 난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20대 국회에서 바닥 면적 기준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 만료로 폐기되었다. 11일,장애인들은 커피숍 앞에 있는 턱을 뿅 망치로 내리치는 플래시몹을 했다. 21대 국회에선 법 개정이 이뤄어져 뿅망치가 진짜 망치가 되어 문턱없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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