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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은 함께하며 나누는 삶이었다면, 코로나19 이후는 사람들 간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언택트(untact)의 시대다.

언택트라는 말은 영어에는 없는 말인데 2017년 처음 등장했다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새롭게 부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거리두기가 우리에게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해외에서는 언택트라는 말을 안 쓰고 'no-contact'(노택트)나 'zero contact'(제로 컨택트)라고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untact'(언택트)라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또, 이제는 황사가 없어도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다.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가면 왠지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뭔가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닐 듯하다. 

시원한 가을바람 불 땐, 바베큐를 할 수밖에

최근, 코로나19와 함께 추석을 맞이 했다. 추석 연휴기간 고향 방문과 외출, 모임, 여행 자제를 안내하는 재난 문자가 연일 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향에 가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를 대신했다. 고향을 가지 않기에 긴 연휴 기간 푹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연휴가 시작되니 할 일이 태산이다.

한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창고를 정리하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두 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손을 대기 시작하니 안 보이던 많은 일거리들이 몰려나왔다.

손바닥만 한 창고지만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은 꺼내도 꺼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부 꺼내 놓으니 뒷마당 데크 위에 한가득이다. 다시 사용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나눠서 쓸 것은 창고로 들여 정리하고, 안 쓰는 가구는 대형 쓰레기 배출 스티커를 붙여 내놓고, 부피가 작은 쓰레기들은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놓았다. 허리가 아프다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어둠이 이미 발밑을 점령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저녁의 기분을 만끽하려고 파티 등에 불을 켰다. 불 밝힌 마당에 아들이 나와 바비큐 파티를 하자고 조른다. 둘째는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를 먹자고 한다. 가위바위보를 하라고 했더니 동생이 이겼다. 소고기로 결정이 나자 구이보다는 스테이크를 먹자고 결정했다.
 
고기 양념하기
 고기 양념하기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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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장을 봐와서 먼저 고기에 양념을 한다. 올리브유를 살짝 둘러놓고 후추와 소금, 마늘 가루, 향신료 등으로 잡내를 잡는다. 고기에 양념이 스며들 동안 그릴에 숯을 올리고 불을 붙인다. 옆지기는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고구마를 포일에 싼다. 먼저 고기를 구워야 하기에 석쇠를 올려 고기를 굽는다.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그만 고기가 너무 익어 버렸다. 오늘은 실패다. 그래도 양념이 잘 돼서 맛은 있었다. 아이들도 각자 할당량을 무리 없이 먹는 걸 봐서는 나쁘지 않은 눈치다.

 
그릴에 구워지는 스테이크
 그릴에 구워지는 스테이크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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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한 끼 때우자고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는 기분이 든다. 옆지기가 집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마당 불 피웠으니 불멍(불 피워 놓고 멍 때리는 걸 불멍이라고 부른다고 한다)하러 오라고 한다. 기다렸다는 듯 밤을 구워 먹자면서 옆지기 친구는 밤을 한 봉지 들고 찾아왔다. 이미 고구마가 그릴에 한가득 올려져 있는데 군밤을 먹겠다며 밤에 칼집을 넣는 두 사람을 보니 오늘이 치팅데이(Cheating Day, 다이어트 중 하루를 정해 마음껏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날)다 싶다.

이미 저녁을 거하게 먹었고, 군고구마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거기에 밤을 굽겠단다. 오랜만에 불 피웠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 내버려 두니 열심히 작업한다. 갓 구운, 잘 익은 군고구마가 입에서 사르르 녹으며 단맛이 퍼져 나온다. 그 맛이 기가 막혀서 그릴에 불 피울 때면 으레 고구마를 굽곤 했었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며 두 여자들은 군고구마와 군밤을 쉬지 않고 먹는다. 분명히 배부르다고 했는데 군고구마와 군밤을 어찌 그리 잘 먹는지 참 대단하다. 지켜보는 내가 배부를 정도로 먹으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쉬지 않고 수다를 떤다. 테이블 옆에 그릴에는 숯이 빨갛게 익어가고 두 사람의 얼굴도 덩달아 물들어간다.
 
밤이 익어가는 시간
 밤이 익어가는 시간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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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갈 즈음 바람이 차가워졌는지 숯을 더 지펴달라기에 다시 커다란 숯 3개를 더 올렸다. 숯에 불이 붙자 친구가 불이 아깝다며 뭐라도 구워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옆지기가 냉동실을 뒤져 양미리를 꺼내 온다. 한 두름(20마리)을 석쇠에 올리고 간장과 고추냉이로 양념을 준비한다. 불이 강하다 보니 양미리는 노릇노릇 금세 익어갔다.

잘 익은 양미리를 잡아 머리만 떼어낸 후 소금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양이 많다며 조금만 구우라던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양미리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렇게 맛나게 먹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던 두 사람은 12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든 걱정 없이 만날 날이 돌아오기를 
 
양미리가 맛있게 익어간다
 양미리가 맛있게 익어간다
ⓒ 이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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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에는 역시 따스한 화롯불 앞에서 맛나게 구워 먹는 음식이 최고다. 군고구마도, 군밤도, 숯불에 구운 양미리도 어느 것 하나 맛없는 음식이 없다. 매년 봄가을에는 이웃들과 마당에서 고기도 굽고 음식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로 이웃과 함께한 기억이 별로 없어 많이 아쉽고 그리웠었다.

오랜만에 이렇게라도 마당에서 거리를 두고 앉아 이야기하며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걱정 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빨리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깊어가는 가을밤, 그릴에는 맛있는 가을이 익어간다.

태그:#가을, #그릴에 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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