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여성학자 이효재 선생(사진은 2010년 12월, 뜨래질 하는 모습).
 여성학자 이효재 선생(사진은 2010년 12월, 뜨래질 하는 모습).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여성학‧사회학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이효재 선생이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효재 선생은 한국의 '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여성학자, 사회학자로서 한국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왔다.

선생은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수료하고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1958년 귀국해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창설, 교수로 재직했다.

선생은 한국사회학회장, 한국가족학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항쟁 때에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시국선언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교수직에서 해직되었으나, 이후 복직해 1990년 퇴임했다.

이효재 선생은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에 힘써,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하였고,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 학자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했다.

또 고인은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례대표제 도입, 50% 여성할당, 차별호봉 철폐 운동 등을 이끌며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효재 선생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구성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효재 선생은 분단이 여성과 가족,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에 천착해 분단사회학을 개척하였고 수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겼다.

또 고인은 1990년대 초 북한 방문으로 남북한 여성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었으며 이후 여성들이 주도하는 통일 논의의 토대를 만들었고, 군축과 통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도 매진했다.

1997년 창원진해로 귀향했던 이효재 선생은 가족 연구에 매진하는 한편, 그곳의 여성들과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 지역의 문화운동을 이끌었다.

이효재 선생은 비추미여성대상 해리상,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평화공로상, 제4회 유관순상, 제1회 허황옥평등상, 제1회 진해김달진문학제 특별상, 제19회 향기로운 시민불교문화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장례는 '여성장(葬)'으로 치르며 빈소는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에 마련되었다.

여성단체들은 온라인 추모페이지(http://www.wsri.or.kr/)와 추모 동영상(https://youtu.be/tr9W8F_Kpbs)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학자 이효재 선생이 벌세했다.
ⓒ 경남여성단체연합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