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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길을 가라. 남들이 무엇이라 하든지 내버려 두라.
- A. 단테

통계청에는 대한민국 국민 평균 수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은 79.7세이고, 여자는 85.7세다. 그러므로 국민 평균 기대 수명은 82.7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셈이다.

과거와 오늘의 수치는 계속 달라지고 있으며, 의학의 발달로 인해 10년마다 2~3년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나와 동갑내기였던 남녀는 각각 사고와 질병으로 올해 세상을 떠났다. 

소숫점까지 찍은 세밀한 숫자를 아무리 늘어놓아도 이는 그저 통계일 뿐, 모든 사람이 통계에 맞춰 세상을 살다 가지 않는다. 사실 우린 모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인생은 통계 숫자에 맞춰 살아지는 것이 아니며, 저마다 고유한 속도와 인생 이야기가 있음을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숫자도 명확하지 않은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거론하는 통계가 존재한다. 게다가 그 기준에 자기 삶을 끼워 맞추지 못하면 스스로 뒤처졌다고 생각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심하면 서로에게 우월감과 열패감을 느끼며 손가락질을 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그토록 지겹게 들어왔던 몇 살에는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몇 살에는 취업해야 하며, 몇 살에는 결혼해야 하고, 몇 살에는 아이를 낳아야 하며, 몇 살에는 은퇴해서, 다시 이 패러다임을 자식에게 강요하며, 몇 살에는 죽는다는 '적령기'다.

그것도 모자라 몇 살에는 어디에 위치한 몇 평의 집과 몇 cc의 차량을 소유해야 성공한 인생이라는 '인생 매뉴얼'까지 등장한다. 어째서 우주선을 만들어 달도 탐험하게 된 시대의 우리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서로를 가두고 흔들어대는 것일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하는 내사

심리학 용어 중에 내사(내적 투사, 투입)라는 말이 있다. 이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의 한 유형으로, 타인의 생각과 신념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특히 이런 행동은 어린 시절 부모나 선생님처럼 외부 권력자의 신념을 내면화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중요한 타인의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자기를 상실(loss of self)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외부의 목소리를 집어삼키고, 소화하고, 배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행동의 원천인 동기(motivation)를 만든다.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린 시절의 우리는 생존을 위해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원하게 되고, 그것이 곧 자기 욕망이라고 믿고 행동하게 된다.

조금 더 성장하면 함께 어울리는 친구나 지인 또는 미디어 등, 자주 노출되는 환경에서 보고 듣는 정보들이 자신의 욕망이 된다. 그 기준에 도달할 때는 우월감을, 도달하지 못할 때는 열패감을 느낀다. 사실 두 개의 감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영역에 속한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성경에는 이런 금언이 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복음서 1, 1. 3.14)' 

입력된 말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다시 나의 말이 되어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평소 서로에게 어떤 생각과 말을 주고받는지에 따라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행동을 유발하며, 그 결과물들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따라서 꾸준하게 자아 성찰을 하며, 건강한 삶의 태도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건강한 정신과 높은 자존감은 주체적인 삶이 주는 선물

자존감을 30년간 연구한 너새니얼 브랜든이 말하기를,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평생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그리고 어느 수준의 자존감을 성취할지 스스로 선택한다고 했다. 높은 자존감의 성취는 세상 잣대에 휘둘려 살아갈 때가 아닌,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때 선물처럼 주어진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경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서로를 받아들인다. 모두가 같은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여도, 저마다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인생의 한 번쯤은 내사된 목소리를 의심해 보고, 쳇바퀴에서 멈춰 서서 내려오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는 순간, 혜민 스님이 말씀하시던 '비로소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야 비로소 체감하게 된다. 

노벨 문학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먼 깡패들이 총이나 막대기를 두드리는 소리로 다른 눈먼 자들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온다. 눈먼 자들은 그 소리에 두려움을 느끼고 눈먼 깡패들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작가는 그러한 사회를 꼬집으며, 눈먼 사람에게 해가 언제 뜨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청각이 얼마나 예민하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비유한다.

세상의 소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업고 '적령기', '인생 매뉴얼'을 쏟아 놓으며 우리의 정신을 두드리려 한다면, 이렇게 말해주자. "네 신념 잘 들었어. 그러나 그건 네 계획이고~! 내 인생 시나리오는 내가 쓴다."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눈먼 깡패들은 쉬운 먹잇감을 찾으러 우리 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 인생의 한 번쯤은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봐야 죽음도 편히 맞을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개인 브런치와 책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


태그:#자존감, #내사, #심리학, #눈먼자들의도시, #내면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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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를 알기 전보다 알고 난 후, 더 좋은 삶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씁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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