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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문화가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아파트들과 다른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한국과 프랑스의 아파트문화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그는 오랜기간 서울에 머물며 연구를 진행했고, 도시유형과 사회적 견고성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그의 연구는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제3자의 눈으로 본 한국의 아파트문화는 정작 한국의 아파트를 가까이서 접하거나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다. 낯설게 보기, 외부자의 시선으로 사물 보기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자칫 간과하고 지냈던 문제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좋은 도서관을 마을에 만들고 가꾸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좋은 도서관을 마을에 만들고 가꾸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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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도시의 민간도서관에서 주로 일하다가 서울의 구립도서관 관장으로 오면서 나는 외부자이자 낯선 사람의 시각으로 서울시 구립도서관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서울시 구립도서관 협의체의 공동대표를 2년 남짓 지내면서 여러 자치구 사례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낯설게 보기, 심리적 거리두기 방식으로 구립도서관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인 행정기관, 위탁주체, 관장과 직원들을 관찰하면서 대한민국 대표도시 서울의 초라한 공공도서관 운영 실태를 목격하였다.

정부가 도서관 건립과 운영의 주체를 기초자치단체로 못박은 이후 서울시에서는 각 구별로 구립도서관들이 속도를 달리하여 건립되기 시작했다. 커다란 열람실이 공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보도서관 같은 것들이 초기에 세워진 구립도서관들이다.

그 뒤에는 작은도서관 바람을 타고 간신히 공공도서관의 법적 기준을 넘는 규모의 도서관들이 구립으로 지어졌다. 도서관의 역할이 커지고 이용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중대규모의 도서관들이 지어지고 있다.

모범으로 알려진 몇몇 구의 사례

좋은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일까? 건축이 아름다우며, 시설이 좋고 이용이 편리한 도서관, 장서를 다양하게 갖추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신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도서관, 직원들이 친절하고 마을사람들이 언제든 편안하게 이용하며,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의논하고 의제를 이끌어가는 도서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지고 서로 연결되며 함께 토론하는 마을민주주의의 산실. 언뜻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갖춘 도서관을 마을에 만들고 가꾸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뭄의 단비처럼 도서관 운영의 모범을 제대로 만들어낸 자치구들이 있다. 서울시 A구는 도서관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구청장의 의지로 시설관리공단 산하에 있던 도서관을 구에서 만든 문화재단으로 모으고, 도서관 본부장을 두어 구립도서관 전체를 총괄관리하게 했다.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던 도서관에는 유료 좌석이 있는 열람실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열람실을 전부 없애고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민원이 있었지만, 구청장이 확고한 의지를 갖고 막아주어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이 구에서는 크고 작은 도서관을 여럿 지어 주민 누구나 집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규모가 작은 도서관이라도 꼭 관장을 두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했다. 마을과 만나는 협력 사업을 다양하게 기획하였고, 마을의제를 논의하고 함께 해결을 모색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B구는 구청장이 지역에 중대규모의 도서관들을 새로 건립하고, 대학에 위탁하던 도서관을 포함하여 구립도서관에 대한 운영권을 지역복지재단에 맡겼다. 도서관 본부를 두어 도서관 전체를 총괄 관리하도록 했고, 재단은 도서관운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아 도서관을 소신껏 운영할 수 있게 했다.

도서관 본부장은 관장들과 협력하여 도서관이 마을 속에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공들여 주민사업을 진행하였다. 도서관이 마을민주주의 실현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하여 도서관을 운영했다.

서울에서 비교적 모범사례로 알려진 A, B구의 공통점은 규모가 크지 않은 구립도서관이라도 꼭 관장을 두어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한 점이다. 전체 도서관을 하나의 재단에 포함시켜 도서관 본부장이 관리하였고, 본부장이 소신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무엇보다 구청장이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소신이 있었고, 도서관 전문가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었다.

C구는 도서관은 많지만 종교 법인들이 도서관을 나누어서 위탁운영하고 있는 상태였다. 개별 도서관들의 규모가 크고 자치구 도서관으로서는 역사도 비교적 오래된 편이었다. C구는 도서관들을 공공재단으로 모으는 대신, 특색 있는 도서관을 건립했다. 행정과 마을과 건축이 협치로 건립한 그 도서관은 화제를 모았고 전국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하는 도서관이 되었다. 주민협동조합이 위탁 운영하는 방식도 화제를 모았다.

A, B, C 3구는 전 구청장 재임 8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모범사례를 일구어왔으나, 정치지형이 바뀌면서 도서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일군 변화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업적이 되기 어려우면 기존의 긍정적인 성과라도 애써 무시하고 축소하려는 정치인들 때문에 좋은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손실이다.

D구는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관장이 정규직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안정적인 도서관 모델을 일구었다. 도서관 규모도 비교적 크고 도서관 운영평가에서 대통령상도 여러 번 수상하는 성과를 내어 구에서도 인정받고, 관장이 소신있게 운영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되었다.

매우 열악한 도서관도 많다. 도서관장 한 명이 구립도서관 전체를 총괄 관리하는 곳도 꽤 있는데,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도서관이 대개 그렇다. 아무리 능력자라도 도서관 여러 곳의 관장을 겸임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거나 현안들을 해결하느라 새로운 사업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이런 조직은 사서수도 적어서 겉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늘 제자리걸음만 할 뿐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혁신과 변화를 가져올 시간과 인력이 절대 부족한 것이다.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의 관장은 팀장이라 불리며, 도서관 운영재단에 있는 여러 부서의 팀장이자, 시설 책임자에 불과하다. 도서관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시민들의 기대에 걸맞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관장은 계약직으로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교체되는 반면, 중간 관리자는 정규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다보니 10년도 채 안 된 조직인데도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기 어려워진다. 몇 개 안 되는 구립도서관 내부에서만 인사이동이 이루어지거나, 그마저 막히다 보니 곳곳에서 정체가 일어난다.

전문가다운 소신과 능력이 부족한 관장들이 잠깐씩 머물다 간 자리는 더 그렇다. 직원들은 조직을 신뢰하지 않고, 중간 관리자는 변화를 두려워 한다. 구립도서관 직원들도 공무원처럼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인사이동을 하고, 관장을 공정하게 채용한 후에는 추진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힘을 실어줄 때 도서관의 혁신과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경기도는 일부 시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자체에서 직접 도서관을 운영한다. 비교적 모범사례로 꼽히는 도서관들은 대부분 관장이 전문직의 소신과 철학을 갖추고 도서관을 책임 경영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서 수의 부족과 관료체계의 경직성 때문에 변화를 일구고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혁신은 어떻게 가능한가

도서관을 건립운영하는 것은 자치단체의 책임이다. 지자체가 직접 운영할 경우에는 대체로 행정직 공무원을 도서관장으로 발령낸다. 행정조직에 사서직 공무원이 별로 없는 탓도 있겠지만, 도서관 관장을 꼭 사서로 임명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도 한몫 할 것이다. 행정직 관장이라도 의욕이 있으면 뭔가 일을 해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자리만 지키다 떠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구립도서관을 위탁운영하는 서울시의 경우 위탁주체가 시설관리공단에서 문화재단으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일부 구는 민간법인과 사회단체 등에 도서관 운영을 위탁하고 있다. 특히 구립도서관들을 4~6개의 민간법인과 단체에서 나누어 운영하는 구도 있는데, 시민단체를 포함한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도서관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도서관 운영에서도 서로 다른 위탁체들이 경쟁을 해야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여전히 있다.

도서관을 위탁받은 기관은 공정하게 관장과 직원을 채용하고, 소신껏 운영하도록 관장에게 권한을 주면된다. 그러면 도서관장은 직원들과 최상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구청장의 치적과 공무원의 성과를 위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행정 오만과 도서관을 잘 모르는 수탁기관 관리자들의 전횡과 간섭 속에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해 보려는 관장과 직원들의 의욕과 용기는 물거품처럼 스러진다. 장기적으로 지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근시안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에 매몰되다보면 도서관의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의욕있는 직원들이 즐겁게 배우고 일하는 도서관, 마을의제를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마을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 지역민 모두가 주인처럼 이용하고 사랑하며 아끼는 도서관. 그런 도서관을 만드는 일은 단체장의 의지와 방향만 뚜렷하면 어렵지 않다. 이제 우리도 그런 도서관을 갖는 복쯤은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서초구대표도서관장 겸 서초구립반포도서관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기획회의>(2020.7.5)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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