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국회 정론관 내부 모습.
 민주당은 미래통합당 계열 인사들의 성폭력 의혹이 나올 때마다 공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왔다.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 2014년 9월 14일, 박희태 새누리당 상임고문(전 국회의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남인순) 논평
= "박희태 전 의장은 궁색한 변명과 책임 전가 대신,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경찰조사에 책임 있게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대표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는 것이다. 새누리당 또한 당헌·당규에 따른 가장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성희롱 예방교육 등 재발방지대책을 강화함으로써 다시는 지도부가 대를 이어 성희롱 사건을 일으키는 부끄러운 역사를 이제는 끝내주길 당부한다."

○ 2013년 10월 2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성추행 의혹에 대한 이언주 민주당 대변인 논평
= "김무성 의원의 '성추행' 보도가 나온 지 반나절이 넘었는데 새누리당은 여전히 조용하다. (중략) 민주당은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그 어떤 행위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김무성 의원은 해당 여기자와 충격을 받은 국민께 사죄하고, 그에 따른 응당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다."

○ 2013년 5월 10일,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에 대한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 논평
= "대통령 첫 해외순방이라는 중요 국가행사 과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중략)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필요하다."

○ 2012년 4월 10일, 김형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 성추행 의혹에 대한 황창화 민주통합당 선대위 대변인 논평
= "패륜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외치는 김 후보는 포항시민, 울릉군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다시 한 번 묻겠다. 박근혜 위원장은 김형태 후보의 성폭행 미수 의혹에 대해 답하고 사과해야 한다."

○ 2006년 2월 27일, 최연희 새누리당 의원 기자 성추행 사건에 대한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 논평
= "한나라당은 국민 앞에 반성하고 즉각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한다. 박근혜 대표는 성추행이 벌어진 바로 그 현장에 동석했던 사람으로서 다시는 이런 추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며, 국민들에게 진정한 사과는 물론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한 한나라당의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박희태·김무성·윤창중·김형태·최연희 등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 인사들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즉각 내놨던 논평들이다. 이 논평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당 차원의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한 것이었다.

민주당의 침묵 나흘

반면, 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비서로부터 성폭력 혐의로 피소된 다음날인 9일 사망한 뒤, 민주당은 줄곧 침묵을 지켜왔다. 지난 13일까지 나흘이 지나도록 그 어떤 공식 사과나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명시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신 추모만 이어졌다. 박 시장 사망 직후인 10일 오전 최고위원회의 때 일성으로 "오랜 친구였다"는 개인적 애도사를 읊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장례식장 조문 때도 "19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40년을 함께해 온 오랜 친구"라며 개인적 인연만 거듭 술회했다. 이 대표는 심지어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의 성폭력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이 있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호통을 치며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욕설을 했다. 한동안 기자를 노골적으로 노려보다 자리를 뜬 이 대표는 현재까지도 이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 순간 이 대표는 '사적인 추모'와 공당의 대표에게 마땅히 부여된 '공적 책임'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근 10년간 치러진 세 번의 선거에서 1000만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박 시장을 서울시장으로 뽑아달라고 호소했던 공당이다. 176석의 거대 집권여당이다.

공당으로서 민주당의 모습이 부재했던 지난 나흘간, 시민들의 분열과 갈등만 더 가속화됐다. 광장의 한편에선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맹목적인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한쪽에선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못하게 됐는데 박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 기관장(葬)의 5일장으로 치르는 게 맞냐"고 항의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흘 만에 무려 57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고소인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 등 2차 가해가 횡행했다.

13일에야 '공당' 민주당의 공백 상태가 가까스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여론이 계속 악화하자 뒤늦게 민주당 쪽에서 침묵을 깨고 첫 번째 사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당 대표 발언이나 공식 논평이 아닌, 원외 비주류 최고위원인 김해영의 입을 통해서였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13일 오전 회의에서 "당의 일원으로서 서울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다"라며 "향후 당 소속 고위공직자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 차원의 깊은 성찰과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몇 시간 후인 오후 2시, 장례 절차가 끝난 뒤 고소인 쪽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했다. 민주당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박 시장 장례위원회는 기자회견 진행을 재고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부랴부랴 대책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5시 20분, 이해찬 대표의 사과 메시지가 나왔다. 그러나 이 대표의 직접 사과 방식이 아니라 수석대변인을 앞세운 '대리 사과'였다.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예기치 못한 일로 (서울시의)시정 공백이 생긴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사과 드린다. 당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이 대표 대신 전했다.

이 짧은 '대리 사과'를 듣기까지 시민들은 나흘을 기다려야 했다.

"당 차원 진상조사 가능성 없어"
  
 10일 오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조정식 정책위의장, 김성환 의원이 조문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참 늦었고 그 형식도 불성실했지만, 어쨌든 사과와 책임을 표명한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이제 민주당이 할 일은 무엇인가. 13일 오후 2시, 고소인 쪽이 기자회견에서 호소한 내용을 보자.

"서울시는 본 사건의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던 직장입니다. 규정에 의해 서울시는 사건 진실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 정당은 인간이길 원했던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고 책임 있는 행보를 위한 계획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진상조사다.

고소인뿐 아니라 갑작스레 서울시장을 잃은 시민들과 유권자들은 이 같은 사태가 어떻게 벌어진 건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근거 없이 난무하는 의혹들을 막을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 시장의 성폭력 혐의 피소 사건은 박 시장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사법절차를 통한 진상 규명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상대 당의 성폭력 사건에 '책임있는 조치'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민주당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13일 당의 진상 조사 계획을 묻는 질문에 "(고소인 쪽이) 다음주에 추가 입장을 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까지 보고 필요하면 더 얘기하겠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유력 차기 당권 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도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진상조사에 대한 입장을 묻자 "아직은 조금 이른 질문이다", "고인의 명예와도 관계되는 문제라 예단해서 답하기 어렵다"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내며 박 시장과 가까웠던 윤준병 의원(전북 정읍·고창)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소인 쪽이 제기한 내용 중) '침실'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가 2차 가해 논란이 일자 해당 글을 삭제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진성준 의원(서울 강서을)은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분의 피해를 기정사실화 하고 박 시장이 가해자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 시장 사건에 대한 사법 처리가 자동 종결되는 상황에서 당 차원에서 별도로 진상조사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라고 했다. "박 시장 사망으로 한 쪽의 자기 변호권이 아예 사라졌는데 진상조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앞으로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요원할 거라는 고백이다.

정말인가.

'퍼블릭 마인드'는 어디갔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이낙연 당선인 등이 27일 오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 모습.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한 가지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결국 여러분들은 '공인'이다. 굉장한 공인이기 때문에 공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이다. 퍼블릭 마인드가 있어야만 모든 일을 잘 판단하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공후사, 선당후사하는 자세로 임해주시고 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경중 완급을 잘 가릴 줄 아는 공인의 마인드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 이해찬 대표, 5월 27일 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

그간 민주당과 이해찬 대표가 줄곧 강조해온 게 있다. '퍼블릭 마인드', 즉 공인으로서의 태도다.

민주당은 박 시장 사망 후 나흘이 지나서야 겨우 대국민 사과 정도를 했을 뿐이다. 진상조사를 비롯한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선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원론적으로나마 '당이 나서서 사실관계부터 파악해보겠다'는 언약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민주당 분위기론 진상조사는커녕 추가적인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요 며칠간의 민주당은 과연 '퍼블릭 마인드'에 부합했는가. 

게다가 민주당은 이미 앞서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불과 석달 전인 2020년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에 따른 자치단체장의 낙마와 뒤이은 행정 공백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다. 정치권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당의 책임 있는 대책과 진상조사를 강조해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고소인의 외침에 아직 응답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