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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말하는가?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 된 지 75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왜 <반일 종족주의>가 하나의 담론으로 생뚱맞게 재현되는가? 우리에게 역사는 진보인가 퇴보인가, 헷갈리기조차 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에드워드 사이드(E. Seid; 1935~2003)의 <오리엔탈리즘>(1978)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식민화는 과정에서 서양인에 의해 구성되고 재생산된 일련의 담론(discourse) 스타일이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지식과 권력(식민통치)의 합작품이다. 그것은 19세기~20세기 초반까지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해 왔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이 그 패권을 장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여전히 지배담론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3세계에서 지식인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는 아직도 자기성찰(주의력)이 부족한 지식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의 길드적인 전통이 영향을 미칠 여지는 얼마든지 잠재해 있다는 걸 경고했다.

사이드는 동양의 지식인이 자신의 연구를 열어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재귀적으로 끊임없이 비판적인 도마에 올려놓는 것"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노자의 "되돌아보는 것이 도의 움직임"(반자 도지동 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박홍규 옮김, 1999) 책 표지 <오리엔탈리즘>(1978)은  1980년 불어로 번역된 이래로 약 30종의 언어로 전세계에 두루 알려진  고전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박홍규 옮김, 1999) 책 표지 <오리엔탈리즘>(1978)은 1980년 불어로 번역된 이래로 약 30종의 언어로 전세계에 두루 알려진 고전이다.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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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유럽이 아닌 이웃 일본에 의해 더 지독한 식민정책으로 <오리엔탈리즘>이 이식됐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우리에게 <오리엔탈리즘>의 폐해는 중층적이면서 심대하다. 왜 그런가? 일본은 <오리엔탈리즘> 중심부가 아닌 반주변부이면서 우리보다 불과 50년 전에 명치유신으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추진한 끝에 한반도를 대륙침략 교두보로 삼고자 식민화했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민족 동화(同化) 수단'으로 강화됐기에 그 잔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대하다. 게다가 미국의 극동정책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을 그 교두보로 삼아 그 불모로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케 했다. 한국전쟁은 그 분단을 고착시키는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 분단 상황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자기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는 갈등요인으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자기 정체성 정립을 위한 엄중한 성찰을 요구한다. 사이드는 "우리가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지식인이 자칫 외적인 유혹에 의해 타락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필경 지금이 과거이상으로 지식의 유혹을 경계해야 할 시대라고 경고했다.

이영훈이 펴낸 '반일종족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유사성

이런 형국에서 2019년 7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중심이 돼 <반일 종족주의>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을 출간해 파장을 일으켰다. '반일 종족주의 신드롬'이라 할 만한 상황이 한국 극우 정치세력과 일본 집권세력을 비롯한 혐한집단 중심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최근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가 이에 대응해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2020, 한겨레출판사)은 경제사 서술을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있어 이목을 끈다.

저자 전강수 교수는 부동산 정책 전문가로 두루 알려져 있지만, 본래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전공하고 그 분야의 학위논문을 쓴 학자다. 게다가 이영훈 교수와 그는 안병직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기도 하다.

이영훈 교수는 안병직 사단에서 수제자라 불리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데, 2000년대 중반 역사 교과서 개정운동과 2016년 이후 이승만 학당을 근거지로 한 극우세력에 발을 담그지 않았더라면 한국경제사 분야에서 발군의 자리를 굳혔을 거라고 전 교수는 아쉬워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유튜브 방송 '이승만TV'에 출연한 모습
 <반일 종족주의>를 펴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자료사진).
ⓒ 이승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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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교수는 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내어 굳이 '혐한 종족주의'의 표상이 되고자 하는가? 일찍이 조지훈 교수가 지식인의 '지조론'(志操論)을 말했는데, 잘 나가던 지식인일수록 곡학아세 함정에 빠져들기 쉬운지 모를 일이다. 사이드가 그처럼 경계하여 마지않던 지식인의 '외적 유혹'에 시나브로 빠져버린 탓일 터.

그래서 유명세를 타는 지식인일수록 사이드가 경고한 것처럼 "자신을 재귀적으로 끊임없이 성찰하고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아 겸허히 스스로를 되짚어 봐야 할 게다.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에서 이 교수가 펼친 <반일 종족주의> 논지를 이렇게 비판한다.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이 반일 종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말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한국 국민은 물론이고, 한국 정치인, 한국 학자, 심지어 한국 재판관까지 거짓말 문화에 물들어 있다고 단언합니다. 거짓말 문화의 근본 원인으로는 물질주의를 지목합니다.

물질주의는 "돈과 지위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 원리"를 뜻하는데, 그 근원을 추구해 들어가면 오래된 샤머니즘을 만나게 된답니다. 이영훈 교수에 따르면 이 오래된 샤머니즘의 정체가 바로 반일 종족주의입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 문화, 물질주의, 샤머니즘의 실재를 제대로 입증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국 사회에서 반일 종족주의라는 샤머니즘이 어떻게 물질주의를 초래하고, 물질주의는 어떻게 거짓말 문화를 만들어 내는지 그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일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강수, 2020, pp.298-299)

오래된 샤머니즘이 바로 '반일 종족주의' 원천이라는 그의 주장은 어디선가 익히 들어온 논조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이 동양을 지배·통치하기 위해 일관되게 기획하고 재구성해온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담론 스타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참 신통하게도 <오리엔탈리즘>과 <반일 종족주의>가 만나는 지점이다.

서양 오리엔탈리스트들은 본래 동양인은 미개하고 야만적이어서 일종의 '기능회복훈련'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교수의 말 또한, 한국인은 본래 거짓말 문화에 물들어 있고 그 근원은 오래된 샤머니즘에 있는데 그 샤머니즘 실체가 바로 '반일 종족주의'라는 게다. 어처구니없는 논리비약이다. 탈식민지시대에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는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형적으로 <오리엔탈리즘> 상속자가 돼 버린 셈이다.

이영훈의 동문 전강수 "내가 알던 그가 맞나"
 
전강수 교수가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2020) 책 표지 전강수 교수(대구카돌릭대)는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등 부동산정책 전문가이지만, 이번에 맘먹고 <반일 종족주의>를 체계적으로 비판하는 책을 기필했다.
▲ 전강수 교수가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2020) 책 표지 전강수 교수(대구카돌릭대)는 <부동산공화국 경제사> 등 부동산정책 전문가이지만, 이번에 맘먹고 <반일 종족주의>를 체계적으로 비판하는 책을 기필했다.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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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샤머니즘은 외래사상에 때 묻지 않은 전통(고유)문화의 원형이다. 유동식 교수는 일찍이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1975)에서 우리에게 무교(巫敎; 샤머니즘)는 민중문화의 저변을 흐르는 '지핵'(地核)이라고 했다. 여기 '지핵'은 지층의 심층에서 강한 에너지를 발하고 있어, 우리에게 창조적 문화의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원천(즉, 한류의 원류)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책의 말미에서 "<반일 종족주의>와 그에 이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 너무 자가당착적이고, 사료왜곡과 억측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알던 이영훈, 김낙연, 주익종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고 평가했다. 

이 세 사람이 말하는 한국인은 온통 반일 종족주의에 빠져 있다. "토지 수탈은 없었다, 쌀 수탈도 없었다, 한일협정으로 한국인의 대일 청구권은 모두 소멸되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등 주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 사실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우익세력이 이들의 책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는 것은 자기들이 할 말을 책까지 써서 대신해 주니 고마워 그럴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결과적으로 '혐한 종족주의자'가 돼버린 꼴이다. 필자가 보기에 전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은 비교적 성실하게 객관적 사료를 적절히 동원해가면서 <반일 종족주의>의 논리적 모순을 구명하고자 했다.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의 함정에 걸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흠뻑 젖은 책 <반일 종족주의>가 버젓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진정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내미는 친일과 친미의 장막부터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전강수 (지은이), 한겨레출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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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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