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최근 아홉 살 아동이 부모의 상습적 학대를 견디다 못해 4층 높이의 집 테라스에서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지붕을 통해 옆집으로 건너가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아홉 살 아동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 있다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습니다(언론에서 이 두 사건을 보도 하면서 지역 이름을 함께 쓰는데, 해당 지역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면 지역 이름은 빼는 게 좋을 듯 하여 여기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크게 보도가 되고, 법무부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 법안을 제출하기로 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안타까움을 표하며 조치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위 두 건의 사례 이전에는 아동학대가 별로 없었을까요?
 
 연도별 아동학대 신고접수 건수
 연도별 아동학대 신고접수 건수
ⓒ 보건복지부

관련사진보기

 
2017년에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2017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 된 사례가 연도별 그래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아동학대 의심 사례로 분류되는 건수가 3만923건입니다.

2001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계속 증가 추세입니다. 은밀히 이루어지는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계속되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정부는 2016년을 '아동학대 근절의 원년'으로 삼고 아동학대방지 대책을 논의, 확정한 바 있습니다. 아동 권리 및 안전 교육 강화와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 개선, 정부합동발굴 시스템을 구축해 의무교육 미취학과 장기결석 아이들을 전수조사하고, '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란 빅데이터를 구성활용하여, 위험아동을 조기에 발견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동학대는 어딘가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가정 경제 사정이 나빠진 지금 아동학대 사례는 더 늘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제가 사는 싱가포르 이야길 해야겠습니다. 지난해인 2019년 1월, 싱가포르 버스정류장의 광고판에 특별한 광고가 하나 걸렸습니다. 밝은 표정의 아이가 있고, 그 위로 아이가 하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싱가포르 버스 정류장에 특이한 광고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싱가포르 버스 정류장에 특이한 광고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 sanrakshan.org

관련사진보기

 
"I AM UNDER MY BLANKET IN MY ROOM. IT'S BEDTIME. HE KISSES ME ON MY FOREHEAD. HE SWITCHES OFF THE LIGHT AND SAYS I LOVE YOU DARLING."
"나는 내 방에서 담요를 덮고 있습니다. 잘 시간입니다.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그는 불을 끄고 '아가야, 사랑해' 라고 말합니다."

별도의 제품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상품 광고는 아닌 것 같은데, 이 광고는 무엇에 관한 걸까요? 답은 기사 말미에 알려 드리기로 하고, 싱가포르 언론에서 다룬 아동폭력 이야기를 먼저 알려드릴게요.

싱가포르 아동학대가 2015년 크게 증가한 이유

지난 4월 18일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즈(Straights Times)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Child abuse cases dipped last year, but more kids physically abused). 아동 학대가 작년에 비해 조금 줄었으나 물리적인 폭력은 더 많아졌다는 내용입니다.

싱가포르에서 2018년에 접수된 아동학대 건수는 모두 1163건으로 지난 10년 간 최대치였습니다. 2019년에는 1088건으로 6% 정도 줄었지만 이는 방치 사례와 성추행 사례가 조금 줄었기 때문이고 물리적인 폭력은 오히려 늘었다고 합니다. 해가 갈수록 아동학대 건수가 늘어난다는 소식에 안 좋은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내려가는데 특이한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싱가포르 사회가족부(MSF)에서 작성한 그래프를 보면 2015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아동학대 건수가 늘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그 이유를 2015년부터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에 대한 공교육을 강화했고, 드러나지 않는 사례를 감지하기 위해 해당 기관 담당자의 전문성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싱가포르의 아동학대 사례 표
 싱가포르의 아동학대 사례 표
ⓒ MSF.GOV.SG

관련사진보기

 
물리적 폭력의 경우 겉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학교나 공동체에서 학대 징후를 잘 감지해서 신고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했다는 겁니다. 또 성적 학대의 경우는 피해 아동이 먼저 이야기 하지 않으면 밝혀내기 어렵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징후에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으로 방법을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사에는 그렇게 양성한 전문가들이 자살 관련 상담 중에 외상중심 인지행동치료(Trauma focused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TF-CBT) 요법을 사용해 어릴 적에 할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소녀의 사례를 밝혀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동 학대 사례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사례를 더 많이 밝혀내고 조치를 취한 게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다행이라고 안도하기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4월 8일에 보도한 스트레이츠 타임즈의 또 다른 기사(Rise in domestic abuse cases as families forced to stay home)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강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내 폭력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한 여성단체(The Association of Women for Action and Research)의 지난 달 가정폭력 상담 건수가 61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길고,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그게 가정 내 폭력으로 표출이 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평소보다도 더 가까이 있어야 하는 반면, 외출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제때 신고하거나 상담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주위 사람들이 폭력의 징후를 발견하고 신고를 하기도 했지만, 코로나 이후 모두가 격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게 어려운 겁니다.

"가정폭력 상담 건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나 증가했다"면 실제로 벌어지는 가정폭력은 더 많을 거라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 겁니다. 가정 내에서 학대 당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수는 많아지는데 그걸 밝혀내는 건 더 어려워진 최악의 상황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펴야 아이를 구할 수 있다

최근 가정폭력에 대한 기사는 암울하지만,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으로 2015년 이후 더 많은 사례의 아동학대가 발견되었다는 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정부도 더 나아져야 합니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에 대한 문제를 교육 과정에 추가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아동학대 사례를 찾아 내려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요? 이미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빈 틈이 없는지 더 적극적으로 살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제가 맨 처음 보여 드린 광고 이야기를 마저 할까 합니다. 이 광고는 싱가포르 아동보호단체 SANRAKSHAN에서 의뢰하여 광고대행사 DENTSU SINGAPORE가 아동학대를 막자는 취지로 제작한 공익 캠페인 광고입니다. 2019년 아시아태평양 광고제 (ADFEST)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QR코드를 읽으면 아동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QR코드를 읽으면 아동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 dentsu singapore

관련사진보기

 
해당 광고판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당신이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닙니다."(Just because you don't see it, doesn't mean it's not happening)

그리고 그 옆에는 QR코드가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읽으면 휴대폰에는 아이가 하고 싶었지만 숨기고만 있어야 했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이 끔찍해서 굳이 다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요약하면 "밤마다 그가 내 방에 들어 와서 성추행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고, 또 그걸 이야기 하고자 해도 우리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그걸 알아차릴 수 없다는 걸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위해 한 번만 더 관심을 기울이자는 겁니다.

아이들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구해 달라고.

태그:#아동학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