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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지만, 행정복지센터를 찾는 이들 중 누구도 제대로 부른 적이 없는 이름. 나는 재난기본소득 민원을 위해 고용된 단기 아르바이트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가 속수무책인 재난 덕에 프리랜서인 내 삶은 잠시 안정기를 맞이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할 때 보게 되는 안내문과 신청서 양식.
 행정복지센터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할 때 보게 되는 안내문과 신청서 양식.
ⓒ 은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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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 돈 주는 거 받으러 왔는데."


'돈 주는 거' '이십만 원' 등으로 불리고 가끔 '이재명이 준다고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재난기본소득'을 받으러 오셨냐고 물어도 대번에 알아듣지 못한다. 고유명사를 쓰느니 차라리 '어쩌구저쩌구 돈'이라고 말하는 게 더 뜻이 통할 것 같다. 그 돈 때문에 행정복지센터(이하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인 걸 잊었는지 종종 타인과 일정 간격을 유지하는 것도 마스크를 쓰는 것도 잊어버린다.

여기는 다이내믹 코리아 일번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이사 온 건 4년 전쯤이다. 이 동네 월세는 당시 직장에서 도보로 다닐 수 있는 오피스텔의 삼분의 일이었다. 영화 <인셉션>을 연상케 하는 오르막길과 1980년대에 멈춰 있는 풍경은 덤으로 얻었다. 테이프로 전단지를 붙였다 뗀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은 전신주가 비뚜름히 박혀있고, 전깃줄에는 까마귀처럼 보이는 비닐봉지가 수개월 째 매달려있는 동네. 여름이면 동그란 부채를 들고 우두커니 앉아있던, 지나가는 나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노인들이 나를 먹여 살리게 될 줄이야.

1층 민원실에는 자리가 없어서 센터 3층에 재난기본소득 지원 창구를 따로 마련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데도, 몇몇 노인은 숨이 차거나 무릎이 아파 창구 앞 의자에서 한참 숨을 고르다 일어난다. 그 사이 집 나간 자식과 연락이 두절된 사연이나 캐리어 가방을 들고 가던 외국인과 부딪혀 다리를 다쳤는데 상대방이 돈이 없다고 사정하는 통에 8만 원에 치료비를 눙친 이야기 등이 밭은 숨 사이사이 끼어들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자기 사연을 줄줄이 뱉는 이들의 이름을 나는 조금 더 오래 눈에 담는다.

칠천여 세대가 사는 이 동네에서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그들 중 대다수는 노년층. 자꾸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이유다. "저쪽에 신청서가 있으니 작성해오세요!" 마스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을까봐 목청을 높이고 손짓도 하지만, 엉뚱한 소상공인 지원 서류를 들고 와 "사업자가 아니면 지원 안 해줘요?"하고 까칠하게 물을 때면 나 역시 퉁명스럽게 "거 서류 제목 좀 읽어보시죠?"라고 대꾸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같은 신청서로 어찌나 다양한 버전이 나올 수 있는지. 주민등록주소란에 주민등록번호를, 카드 발급자 서명란에 자기 이름을 적는 건 예삿일이다. 엄지손톱만 한 서명란에 휴대전화번호 11자리를 작게 구겨 쓴 사람도 있고, 신청자 본인과 위임자의 이름을 뒤바꿔 써오는 일도 부지기수다. 신청서 작성이 덜 되어있어 이름이나 주소를 써달라고 하면 창구마다 따로 펜을 비치해 뒀는데도 꼭 팔을 길게 뻗어 내 손에 있는 펜을 뺏어간다. 순식간에 빼앗긴 펜을 볼 때마다 어찌나 황망한지...

예시로 붙여 놓은 신청서에 적힌 '심청'이라는 이름을 가족들 이름 사이에 그대로 적어낸 사람도 있었다. "등본 상엔 없는데 심청이란 분은 선생님이랑 어떤 관계예요?"하고 물으면 "그래, 나 돈 신청하러 왔다니까!"라는 고함이 돌아왔다. 같은 질문과 대답이 영어 회화 스크립트처럼 다섯 번쯤 오가고 나서야 사태가 파악됐다. 허탈한 마음에 마스크 안엔 한숨이 가득차고 어르신은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이런 건 잘 모르지. 나는 저기서 쓰란 대로 썼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잘못 써 온 신청서 예시. 틀린 부분을 찾아보시라.(정답은 아래에)
 잘못 써 온 신청서 예시. 틀린 부분을 찾아보시라.(정답은 아래에)
ⓒ 은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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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개성을 지워내고 통일된 서류로 만들기 위해 회색 갱지에는 검은 줄이 죽죽 그어지고, 위아래 줄을 바꾸겠다는 화살표 표시도 난무한다. 아무튼 종이 한 장을 제출하고 나면 누구나 손에 파란 카드 한 장을 쥐게 된다. 카드를 받아든 이들에겐 분실하지 말라, 문자가 오면 그 이후에 써라, 문자를 못 읽으면 열흘 후에 한 번 써 봐라 등등 고지사항과 팁 아닌 팁을 수 번 반복해 말해준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내가 말할 때면 고개를 돌려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말을 할 때마다 마스크를 내리던 한 어르신은 내 말을 경청하더니 "아유, 고마워. 고생이 많아"하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내 손을 쓰다듬었다. 속으로 '지금 시국에 굳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얇디얇은 종이 한 장을 채워오는 게 녹록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마음이 짠했다.

마스크 너머 드러나는 우리들의 민낯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본인 명의 휴대전화와 지역화폐카드(또는 신용카드)만 있으면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현재는 오프라인 신청만 가능). 방식도 간단하다. 긴급재난문자로 온 주소를 클릭해 거주지를 선택한 뒤, 카드번호 16자리를 입력하고 휴대전화 인증을 거치면 끝난다. 채 3분이 걸리지 않는데, '온라인'이라는 말에 그런 건 못한다며 바로 울상을 짓는 장년층을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분명 나도 저렇게 늙어갈 텐데. 머지않은 미래에 내게 닥칠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부모님이 인터넷 뱅킹이나 온라인 구매가 어렵다며 나를 찾을 땐 외면하거나 온갖 불평을 내 뱉으며 마지못해 도와드렸는데, 이곳에선 그러기가 어렵다.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라서가 아니라 나 역시 나이가 들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땐 타인의 호의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다. "1인 가구는 5월에 신청하라니! 일단 신청서부터 받고 나중에 돈을 주면 될 거 아니야! 이럴 거면 문자는 왜 보냈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아가씨들이 뭘 안다고!" (온라인 신청이 가능한 신용카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돈이 없는데 외상으로 쓰는 카드가 세상에 어디 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다른 시는 외국인도 준다는데 여기는 왜 안 줘?" 그리고는 하나 같이 숫자 열여덟을 덧붙인다.

      
 재난기본소득 신청서 빨간펜 선생님ver. Hㅏ…
 재난기본소득 신청서 빨간펜 선생님ver. Hㅏ…
ⓒ 은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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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은 정상가족이 아닙니다?

"이 분 좀 조회해 줘요."

하루 최대 400명이 몰리는 평일에 비해 한가로운 주말 오후. 센터 직원분이 무지개의 색을 훔쳐 만든 것 같은 티셔츠를 입은 노인과 함께 나타났다. 가뜩이나 화려한 셔츠에는 반짝이는 비즈도 빽빽이 달려있었다. 노인의 신분증을 받아들고 생년월일 여섯 자리와 이름을 검색하니 정보가 뜬다. 본인이 세대주인 1인 가구다. 이미 선불카드로 재난기본소득을 받아갔다고 전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직원은 투덜거렸다. "어머니, 받아 가셨다잖아." 노인은 벌써 일주일 째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에 노인의 깡마른 주먹이 직원의 등을 내리친다. 

이유 없이 울컥하게 되는 날도 있다. 그 날은 확연히 다른 두 개의 필체로 적힌 신청서가 그랬다. 이름과 주소, 휴대전화번호는 직원이 대신 써줘서 글씨가 반듯한데, 서명만큼은 갓 한글을 배운 것처럼 삐뚤빼뚤했다. 카드를 건네며 "알려주신 휴대전화번호로 일주일 안에 문자가 가니 그 이후에 사용하세요"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주름진 손으로 입가를 수줍게 가린 노인은, "나가 문자는 못 보는디 전화로 해주면 안 된당가?"라고 소곤거렸다. 모니터에 뜬 노인의 생년을 다시 살폈다. 1935년 생.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처럼 굵직하고 험난한 근현대사를 살아낸 후에도 세상에 여전히 어려운 일이 남아있다니.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이들에게 진짜 재난은 마스크 한 장으로 예방할 수 있는 전염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아프게 부딪히게 되는 정보 격차의 벽이었다.

재난기본소득은 직계가족에 한해 대리 신청이 가능하지만, 등본 상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대리 신청이 어렵다. 특히 재혼 가정인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배우자의 자녀가 동거인으로 뜬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가정사를 말해야하는 신청자의 껄끄러움만큼은 아니겠지만, 당신들은 등본 상 가족이 아니라 대리 신청이 어렵다고 말해야하는 나 역시 참 난처하다. 동거인 대리 신청을 막은 것은 부정수급을 피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다양한 가족형태가 생겨나고 있는 요즘 '정상가족'의 정의는 여전히 견고하기만 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편견으로 빚어진 해프닝도 있다. 젊은 남성이 혼자 와서 배우자와 자녀 몫의 기본소득까지 받아간 직후였다. 신청서를 바라보던 아르바이트생이 "배우자 이름이 남자 같아요"라고 말을 꺼냈다. 신청서에 적힌 '배우자 김동철(가명)'을 흘낏 본 내가 덧붙였다. "동성혼일 수도 있잖아요. 젊은 사람이 왜 그래~" 그리고 잠시 정적 후에 터진 머쓱한 웃음. 한국은 아직 동성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다. 동성혼은 되고 여자 이름, 남자 이름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슨 시대역행일까. 말로만 듣던 '편견 없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였다니 행여나 당사자 앞에서 실수라도 저지를까봐 늘 조심스럽다.

센터와 계약한 기간의 절반이 흘렀다. 4월 28일 기준(현지 시각),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베트남 전쟁으로 죽은 사망자 수를 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약 없는 혼돈 가운데, 당신의 재난을 빌어다가 나는 오늘도 배를 채웠다.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겠다. 대신, 당신이 나를 마주치는 3분 남짓의 시간동안 내가 뱉는 기계적인 말들에 당신이 공격당하지 않도록, 폭격 없는 전쟁과 같은 시대에 나마저 당신을 주먹질하지 않도록 마스크로 내 야만을 반쯤 가린 채 당신을 맞이해야지. 그래서, "재난기본소득 신청하러 오셨어요?"

코로나19와 관련된 여러분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아래 메일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투고메일: seouljobs1@gmail.com
주제: 코로나19와 나
형식: 인터뷰/에세이/취재기사 등 텍스트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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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전화: 02-6358-0645

덧붙이는 글 | 서울잡스 플랫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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