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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댁에 인사가던 날 밥상에 콩밥이 있었다. 나는 콩을 싫어한다. 콩뿐만 아니라 두부, 콩국수, 두유 등도 즐기지 않는다. 그날, 남편은 어머님에게 "우리 은경이는 콩 안 먹는데"라고 말했고, 그 짧은 순간 나는 수많은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지금껏 내가 만나본 어른들은 콩을 먹지 않는 나에게 "콩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나도 안다)", "먹기 힘든 음식도 아닌데 그걸 못 먹어?(난 먹기 힘들다)" 등등 열이면 열 다 타박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아이고, 어쩐다니" 하시면서 콩을 걷어내고 내 밥을 푸셨다. 그 순간 나는 시어머니가 아닌 또 한 명의 엄마가 생긴 것 같았다.

식사 준비 때마다 난 '잉여 며느리'가 된다. 집에서 직장에서 내 몫은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시댁 주방에만 가면 난 꿔다 논 보리자루가 된다. 가끔 거나하게 술을 드신 아버님이 "어여 주방에 들어가서 엄마 하는 거 배워야지" 하실 때마다 어머님은 "할 때 되면 다 해먹어. 저그집에 가서 잘 하면 된다"라고 내편에 서주신다.

결혼한 지 채 일 년도 안 지났을 무렵 아버님이 위암 판정을 받으셨다. 놀란 마음에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마 아버님에게 전화도 하지 못하는 남편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는 일을 마치고 바로 시댁으로 갔다.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명절이 아닌 주말에 남편과 내가 시댁에 간 건 처음이었다. 아버님은 평소보다 더 살갑게 맞아주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의 예전 젊었던 시절, 군대 이야기 등을 재미나게 해주셨다.

아버님은 군복무를 약 8개월 정도 하셨는데, 월남 참전용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아마도 아버님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해주신 것 같았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마음속으로는 아버님 병을 부정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 : "아빠가 평소보다 이야기를 더 하시네."
나 :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이었는데..."


둘 다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나 : "부모님은 어떤 경우라도 우리에게 버팀목이 되 주시는 것 같아. 앞으로도 자주 오자."
남편 : "나야 좋지."


다행히 아버님은 완쾌되시고 우리는 그 다짐을 잊어갔다. 나는 쌍둥이 아기를 낳았다. 예민한 아기들은 신혼 시절의 나처럼 식구 많아 북적대는 할아버지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덩달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낯설어했다. 부모가 된 후라서 그런지 서운해 하시는 아버님, 어머님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할아버지와 눈맞춤하는 아기강물이 아기강물이를 바라보는 아버님의 표정이 느껴집니다.
▲ 할아버지와 눈맞춤하는 아기강물이 아기강물이를 바라보는 아버님의 표정이 느껴집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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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활에 전혀 불편함 없이 살던 나와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자 마당이 있는 집이 부럽고 필요했다. 시댁엔 넓은 마당이 있다. 서운해 하시던 부모님들, 넓은 마당, 잊고 있던 옛 다짐. 주말에 시댁에 가기로 결정했다.

한가로운 시댁, 넓은 마당, 아가들은 신나게 뛰어 놀고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도 놀았다. 자주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 일요일에는 시댁에 갔다.

봄, 가을엔 격포항, 채석강으로 나들이를 했다. 여름이 환상적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빨간 고무대야에서 물놀이, 물총 놀이를 마음껏 했고, 좀 자라자 커다란 풀장에 어릴 때 놀던 미끄럼틀을 장착해 '변산워터파크'를 개장했다.
 
변산워터파크 마당이 없는 우리에겐 꿈의 공간입니다.
▲ 변산워터파크 마당이 없는 우리에겐 꿈의 공간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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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메뚜기, 잠자리 등을 잡으며 아이들은 점점 새까매져갔다. 겨울엔 처마에 매달린 아이들 절반만한 혹은 그 이상이 되는 긴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넓은 마당에 아무도 손대지 않은 엄청난 양의 눈으로 신나게 놀았다. 그땐 그냥 하루하루가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물총놀이하는 강물이와 마이산 넓은 마당,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 물총놀이를 위한 완벽한 무대입니다.
▲ 물총놀이하는 강물이와 마이산 넓은 마당,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 물총놀이를 위한 완벽한 무대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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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리를 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걸음마를 간신히 뗀 아가들, 뽀로로 세 발 자전거에서 네 발 자전거로 다시 두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 곁에 어머님, 아버님도 계셨다. 아이들이 어릴 땐 정정하시던 부모님이, 아이들이 커가자 주름도 늘고 더 약해지신 부모님이 사진이 담겨있었다. 나 역시 주말마다 부모님을 뵈니 거리감도 없어지고 할 얘기도 더 많아졌다.

나 : "오늘은 아버님 회관에 안 가시고 집에 계시네요?"
어머님 : "술병 나셨다."
나 : "어머님 머리가 예뻐지셨어요."
어머님 : "어제 건강 검진하면서 영정사진 찍어주는 봉사단이 와서 머리도 해줬어."
나 : "예쁘세요. 그 스타일이 잘 어울리세요."


주말마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제철 음식을 맛있게 먹고, 그 때문에 내 몸무게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며칠 전 잠자리에서의 대화이다.

마이산 : "엄마, 우리는 여행을 자주 가네."
나 : "그래?"
마이산 : "주말마다 변산으로 여행가잖아."


'아! 아이들도 할머니집에 가는 걸 좋아하는구나. 또 내가 좋아하는 걸 아는구나. 그러니까 여행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거기에 아이는 토핑을 얹어준다.

마이산 : "나도 크면 엄마, 아빠 만나러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올게."
강물 : "나는 엄마, 아빠 치매 걸리면 안 되니까 수학 시험지도 챙겨 올게."


자라나는 아이들과 점점 연로해지는 부모님, 중간에 있는 남편과 나. 삼대가 함께하는 여행은 종착지가 없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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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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